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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시대 충무로 3인방 [2]

시장함수의 변수들: 자본과 인터넷, 그리고 해외시장

우노필름-로커스의 합병 조인식

그러나 최근 상황이 시네마서비스, 삼성, 대우 3강체제나 시네마서비스, 삼성, 일신창투 3국시대와 동일한 배경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첫째 자본의 성격이 다르다는 점, 둘째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매체가 변화를 끌고 간다는 점, 셋째 국내시장에 국한된 경쟁이 아니라는 점이 큰 차이다. 돌이켜보면 지금 영상사업에서 손을 뗀 대기업들도 타임워너나 디즈니 같은 콘텐츠 그룹을 목표로 했다. 영화, 비디오, 음반, 매니지먼트 등 각 사업부문에 현장과 무관한 대기업 인력들이 포진했고 결과적으로 인력에 드는 비용도 건지기 힘들었다. 반면 금융자본은 최소의 인력으로 가벼운 몸놀림을 보여주며 비교적 수업료를 조금 내고 영화산업에 끼어들었고, 시네마서비스는 극장에서 들어오는 자본을 재투자하는 자생적 모델을 제시했다. 현재 영화자본의 주축은 금융자본 중에서도 벤처자본이다. 성장가능성 높은 정보통신 관련주에 집중하며 분산투자하는 벤처투자의 원칙은 영화산업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편이라 최근엔 전액투자 방식으로 만들어진 영화를 찾기 힘들 지경이다. 투자자 입장이 위험부담은 줄이고 수익률을 높이는 포트폴리오를 짜는 펀드매니저와 비슷해지며 영화 한편 흥행결과에 따라 사업을 접느냐 계속하느냐가 결정되는 대기업 투자방식과는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인터넷을 대표선수로 한 새로운 시장에 대한 진단은 영화사마다 다르지만, 영화가 강력한 힘을 가진 콘텐츠라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고부가가치 산업이라는 진단이 이미 오래 전에 나온 것이지만 최근 기술발전 속도는 이를 실감나게 한다. DVD, 인터넷영화관, 인터넷방송 등이 과거에 없던 새로운 부가가치 품목으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에 없던 시장이 등장한다는 사실이 투자자들의 흥미를 돋구고 있고, 실제로 콘텐츠산업에서 중요한 한축인 영화에 자본이 몰리고 있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영토를 선점하려는 치열한 개척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기술발전의 결과로 가시화하고 있는 인터넷시장 외에 한국영화에 또다른 희망을 주는 것은 해외시장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 <쉬리> <텔미썸딩> <유령> 등이 일본, 홍콩, 대만 등 아시아시장에서 과거에 상상치 못한 돈을 벌어들이자 기획단계부터 해외시장을 염두에 둔 영화가 나오고 있다.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 김성수 감독의 <무사>, 이재용 감독의 <유린네이션> 등이 명실상부한 합작 영화로 준비중이며, 한석규, 심은하, 장동건 등이 아시아지역에서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다. 차승재씨는 “이제는 영화 한두편이 외국에 팔리느냐가 아니라 해외시장을 염두에 둔 손익분기점 계산이 이뤄질 시점”이라고 지적한다. 강제규 감독은 “투자대상을 국내에서만 찾지 않는다”며 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한다. 한국, 일본, 홍콩이 합작 영화 한두편 만드는 수준을 너머 장기적인 파트너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견해다.

자산가치는 0원에서 1500억원까지

이런 세 가지가 낙관의 근거라면 똑같은 지점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먼저 벤처자본은 날렵한 만큼 하시라도 영화에서 발을 뺄 수 있다. 현재 영화에 몰려 있는 벤처자본에 상당한 거품이 있다는 지적. 극단적인 예지만 코스닥에 등록해서 주가차익만 챙기고 빠지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비단 영화에 한정된 문제는 아니지만 지금 전국을 뒤흔드는 벤처열풍에는 실질적인 기술개발은 뒷전에 놓고 주가차익만 노리는 머니게임이 대단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시네마서비스, 싸이더스, 강제규필름 정도 인지도와 유명세라면 투자액의 수십배를 코스닥시장에서 챙길 수도 있다. 어느 정도 양질의 자본이냐는 문제는 관련 당사자들이 판단할 문제지만, 잿밥에만 관심있는 투자자가 나올 가능성은 다분하다.

이런 자본이 갖는 또다른 문제는 영화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환상’이다. 먼 미래에 황금알을 낳긴 하겠지만 타임워너, 디즈니가 하루아침에 생길 수는 없다. 타임워너, 디즈니를 모델로 삼았던 삼성, 대우 등의 대기업이 어느 날 갑자기 영화업에서 손뗀 사건은 요즘 같은 때 반드시 되새겨볼 일이다. 인터넷이 만병통치약이 될 리도 만무하다. 디지털매체의 발전속도가 아무리 빨라도 영화나 드라마 만드는 일은 어차피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이뤄진다. 카메라 없이, 감독없이, 배우없이, 조명없이 찍는 영화란 100% 디지털 애니메이션이라도 불가능하다. 돈으로 스튜디오를 짓는 건 쉽지만 스튜디오를 놀리지 않고 활용하는 건 어렵다. 단적인 예로 강제규 감독이 1년에 연출할 수 있는 영화는 많아야 1편이고 그것이 <쉬리> 같은 흥행작일지 아닐지는 아무도 장담 못한다.

한 투자사 관계자는 “강제규필름의 자산가치가 지금 1500억원으로 평가된다지만 다음 영화가 실패하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인터넷이 동영상을 실시간으로 전송할 만큼 발전시키는 것은 좋은 영화를 만드는 일과 사실상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영화의 부가가치가 늘어난다고 한국영화의 경쟁력이 갑자기 커지는 일은 없을 것이란 얘기다. 한국영화가 국내시장을 벗어나 아시아시장에서 자리잡는 문제도 아직은 장밋빛 그림에 담기 이른 문제다. <8월의 크리스마스>나 <쉬리> 같은 영화는 국내에서도 1년에 한두편 발견되는 예에 불과하다.

다시 문제는 좋은 영화

돈은 넘치는데 영화가 없는 지금 상황은 이런 우려를 근거있게 만든다. 올해 제작편수와 관객점유율이 지난해보다 획기적으로 나아지리란 징조는 전혀 감지할 수 없다. 차라리 <쉬리> 같은 흥행작이 없는 한 관객점유율이 하락하리라 예상하는 게 당연하다. 지극히 당연한 결론이지만 역시 문제는 좋은 영화를 얼마나 많이 만들어낼 수 있느냐다. 자본이 콘텐츠를 실어나를 네트워크을 만드는 일은 해도, 영화는 결국 감독, 제작자, 배우, 스탭들의 땀에서 나온다. 시장이 급변하고 있지만 한석규급 배우가 어느 날 10명씩 나오는 게 아닌 이상 제작현장의 현실은 여전히 느리게 변할 것이다. 급속히 늘어난 자본규모에 비해 시장이 커지는 속도가 뒤진다는 걸 감안하면 전사자가 속출할 가능성도 높다.

한국영화시장이 1천억원을 조금 넘는 현재 수준에서 투자되는 돈이 2천억원이라면 공급과잉된 물량이 제대로 된 배급망도 타보지 못한 채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런 일은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강우석, 차승재, 강제규 세 사람이 모두 이런 이치를 잘 알고 있는 영화인이라는 점이다. 자본의 논리에 끌려다니는 게 아니라 자본을 영화의 논리에 적응시켜 적절히 활용하는 3인의 지혜가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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