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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가 가도 활자 공해는 남겠지?
2001-07-19

`강주` <슈렉>을 마지막으로 언론자유를 반납하며

● 아이즈너가 디즈니에서 카첸버그를 키웠고, 키우다 버렸고, 그 카첸버그가 아이즈너를 이겼다는 게 드림웍스 <슈렉>의 기록적 흥행에 대한 장외평 중 하나인 모양이다. 누가 이기든, 재능과 재능의 대결은 신나는 볼거리를 낳는다. 다 같은 우파지만, 골수 가족주의 이데올로기와 아메리칸 드림의 신화를 끊임없이 생산하고 전파하는 정통보수 디즈니와, <슈렉>에서처럼 사랑과 결혼을 찬미하는 가족주의의 틀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비틀 만한 건 다 비트는 보수 내부의 살짝 진보들이 자존심 싸움을 하는 모습은, 제3세계 막가좌파 아줌마가 보기에도 부러운 구석이 있다.

싸울 만한 적이 있다는 건 얼마나 큰 복인가. 적수없는 천재들은 늘 자신의 그림자와 싸우다가 허리가 꺾이고, 누구의 적수도 될 수 없는 약자들은 늘 자신에 대한 권태 속에 인생이 저문다. 제대로 된 영웅도 낳지 못하고, 악역에 매력이 있어야 영웅의 매력도 돋보이는 법이다.

예를 들어 가부장제 봉건잔재 남성우월주의 여전히 씩씩굳건한 한국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아줌마는 나날이 전의가 충천해지는 재미도 챙기고, 그 말싸움판 복판에서 끼닛거리도 줍는 꿩알의 동시혜택을 누리고 산다. 그러나 피와 아가 있는 싸움에는 어디나 게임의 룰이 있게 마련이다. 언론 싸움판의 법칙을 말하자면, 우는 우대로 나름의 진실을 말하고, 좌는 좌대로 나름의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21세기 대한민국의 혀투사들이 벌이는 설전 와중에 그 가장 기본적인 게임의 룰이 아작나고 있어서 아줌마 인내심까지 덩달아 아작나는 중이다. 이건 완전히 <투캅스>의 한 장면이다. 취조실 벽에다 제 머리 찧어가며, 이 형사가 사람치네, 사람잡네 하는 꼴이다.

한다 하는 독재 시절에는 정권과 부루스 추며 낮밤의 대통령 자리에 서로 사이좋게 발령장내고 흠냐흠냐 하다가 법 좀 지키라니까 뒤늦게 할말은 해야겠다고 언론자유 신봉하고 나서는 양아치 언론들과 설전을 주고받아야 하는 누군가들은 불행하다. 게임의 법칙이 없는 싸움판에 정신 제대로 박힌 누가 끌려들어가고 싶겠는가. 그 싸움의 들판에 울려퍼지는 목청 찢어지는 노래를 따라부르노라면 만화영화 속 아닌 진짜 파랑새라도 복장 터져 죽지 않고 배기겠는가.

<슈렉>을 닮은 어떤 시나리오가 아줌마의 머리를 스친다.

옛날 옛적 왕관에만 관심있는 신문 영주가 있었더랬다. 욕심 사납고 생각 짜리몽땅하기 이를 데 없는 그 영주는, “해가 지면”이라는 거울의 마지막 경고를 듣지 않고 왕관을 쥔 공주면 무조건 결혼부터 하려고 들었더랬다. 그러던 어느날 권력의 해가 지는 밤에 그 공주가 이제껏 본 일 없던 비주류의 얼굴을 하고 나타나자, 내 왕관 어디 갔어, 왕관만 쓰면 땡이야!, 라고 외치다가, 애니메이션 <슈렉>의 파콰드 영주 같은 종말을 맞고야 말았더랜다. 어떤 종말이냐면, 아줌마 가라사대 영화를 직접 참조하라고 하더랜다.

아니, 굳이 용의 소화기관을 빌릴 필요도 없겠다. 아줌마라면, 독재정권의 영양주사 덕분에 배불뚝이 떡두꺼비가 된 재벌언론들을 슈렉에게 던져주고 싶다. 풍선으로 불어서 엽기적인 그녀에게 선물로나 주게. 그 풍선은 배가 터질쯤에 해서야 자시의 진실을 털어놓을 것이다. “뻥이야!”라고. 슈렉은 디즈니 향기나는 동화책의 한장을 북 찢어 밑을 닦았지만, 아줌마는 더러운 잉크가 한강물 더럽힐까 <조선일보>를 밑닦개로도 못쓰고 있다.

<씨네 21>에서 원없이 언론자유를 누린 덕분인지 언론자유에 관한 한, 아줌마는 이 정권에 아무 불만이 없다. 이 잡지의 톨레랑스 덕분이라고 생각하면 할말 없지만, 아줌마 잘난 점도 한몫하지 않았는가 지 멋대로 착각해온 것도 사실이다. 처녀에서 아줌마로 진화하는 긴 여정동안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들, 자유를 갈구한 말들이 없었다면, 그 말들을 배우고 말문을 틔우기 위해 생의 가장 소중한 한 덩어리를 바치지 않았다면, 장삿속에 눈이 먼 누군가가 관객몰이용 멍석을 깔아주었다 해도, 어릿광대 곰 같은 얕은 말재주나 마 부릴 생각도 못했을 테니까. 세상에 태어날 때 그 정도 양심보는 달고 나와야 인간된 도리가 아닌가 몰라.

비록 스스로도 식상하고 역겨울 때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의 귀에 소화불량의 헤비메탈이었겠지만, 또 적지 않게 무식한 소리도 했지만, 아줌마는 자신을 속이는 거짓말은 해본 적 없다는 자랑이 되겠다.

거짓말이라고? ㅎㅎㅎ, 눈치채셨군. 그렇다면 이제부터 진실을 털어놔야지. 이제 자격없는 언론자유는 반납하게씀미다. 물귀신이라면 언론자유 말하는 아귀같은 입들 모조리 끌어다가 아줌마 반납할 때 “따라한다, 실시!” 외치고 싶지만, 가녀린 아낙의 몸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참고 혼자서만 반납함미다. 엽기적인 아줌마에게 시달려온 독자 여러분, 기분이 너무나 조케씀미다. 이상 끝. 최보은/아줌마 choi0909@hani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