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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에 추앙받을 진정한 예술가
2001-07-19

“그는 나에게 살아가며 사랑하며 싸우는 예술에 대한 수업을 가르친 선생님이다!” 남아프리카 출신의 극작가 아톨 퓌갸르가 존 베리에게 바치는 추모사의 한 귀절이다. 평생을 영화와 연극을 넘나드는 예술적 열정으로 살았던 존 베리는 99년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삶을 마감했다. 당시 그는 88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아톨 퓌갸르 원작의 <보스만과 리나> 후반작업을 마친 상태였고, 그리고도 2편의 영화를 더 기획 중이었다. 이번 부천에서는 제2회 부천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기도 하였던 그에게 바치는 특별상영과 메가토크를 가졌다. 상영작은 그의 유작인 <보스만과 리나>. 백인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겨 홈리스로 거리를 배회하게 된 흑인 노부부의 하루를 추적한 작품이다.

메가토크 사회를 맡은 김홍준 집행위원작은, “당대에 추앙받는 예술가가 있고, 후대에야 뒤늦게 평가되고 추앙받는 감독이 있다. 아마도, 존 베리는 후자에 속하는 진정한 예술가이다”라는 코멘트로 행사를 시작하였다. 이 자리에는 <보스만과 리나>의 프로듀서를 맡은 피에르 리시앙과 평소 그와 친분을 나누었던 베르트낭 타베르니에 감독이 참여하였다. 김홍준 집행위원장은 “영화 <보스만과 리나>야 말로 원작의 핵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연극적인 것과 영화적인 것을 가장 훌륭하게 결합한 몇 안되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이에 타베르니에 감독은 “한정된 시공간을 이토록 긴장감 있고 세밀하게 묘사하는 작품은 드물 것”이라며 특히 유려한 촬영과 거의 무보수로 출연한 대니 글로버, 안젤라 바셋 등의 배우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존 베리의 작품세계를 이해함에 있어서 그의 정치적 진보성과 특히 흑인 사회에 대한 진지하고도 깊은 문제의식을 빼놓을 수 없다. 젊은 시절 공산당원이기도 하였던 그는 1950년대 미국의 메카시 선풍 당시, 블랙리스트에 올라 곤욕을 치뤘다. 이에 대해 타베르니에는 99년 기획하고 촬영한 <존 베리 헌정 다큐멘터리>에 대해 언급하였다. “존 베리와 줄스 다신(역시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감독)이 그들의 정치활동과 미국 50년대의 영화계, 그리고 이후 시대적 급변 속에서 자신의 정치의식과 예술세계가 어떻게 변모해갔는가를 토론한 것을 기록한 이 작품은 투자자가 나서지 않아 아직 미완의 상태로 남아있다”라며 조만간 이 작품을 완성하겠노라고 밝혔다.

객석에 앉아있던 노년의 한 시인이 “이 작품은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처럼 삶에 대해 명상하게 만든다. 한데 이 작품이 해외에서 흥행했는지 궁금하다“고 질문을 던지자, 피에르 리시앙은 “<버라이어티>를 비롯한 많은 저널에서 찬사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배급업자들이 시사회에 오는 것 조차 거부했다”고 답했다. 타베르니에는 그 원인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위시해 거대 다국적 미디어 기업이 장악한 이미지의 생산과 소유, 배급 즉 ‘세계화’에 대한 비판으로 연결시켰다. “치열한 시대의식이 지배했던 70년대였다라면 존 베리의 작품이 이렇게 외면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 자리에는 평소 존 베리의 영화세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배창호 감독을 비롯해, 이창동 감독, 그리고 배우 안성기씨가 객석에 앉아 토론을 경청하였다. 존 베리는 한국 관객에게는 그다지 친숙한 이름이 아니지만, 이 자리를 빌어 존 베리에 대한 재평가와 영화소개가 한국에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피에르 리시앙의 인사말로 메카토크는 마감되었다. 정지연/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