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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인조 펑크록 밴드 ‘줄리엣과 더 릭스’ 보컬로 내한한 줄리엣 루이스
김도훈 사진 서지형(스틸기사) 2005-08-12

“영화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라면 음악은 내 자신의 이야기다”

지난 8월2일 저녁의 홍익대 앞. 클럽 ‘롤링홀’ 앞 거리에는 서성거리는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옐로우나인에서 주최하는 ‘뉴 뮤직 긱’(New Music GIG)의 첫 번째 공연. 군데군데 붙은 포스터에는 5인조 펑크록 밴드 ‘줄리엣과 더 릭스’(Juliette & The Licks)의 사진이 선명하다. 여자보컬의 사진을 어디선가 본 듯하다면 줄리엣이라는 이름으로부터 아스라한 기억을 되짚어볼 요량이다. 악마에게 몸을 내맡기던 <케이프 피어>의 순결한 여고생, 살인을 예술로 여기던 <올리버 스톤의 킬러>의 살인마, 상처입은 소년들을 끌어안았던 <길버트 그레이프>의 소녀. 바로 그 줄리엣 루이스가 펑크록 밴드를 이끌고 한국을 찾아왔다.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줄리엣 루이스는 이미 2장의 앨범을 발표한 록가수다. 2003년에 밴드 ‘줄리엣과 더 릭스’를 결성한 그는 2003년에 EP <…Like A Bolt Of Lightning>을 내놓았고, 올해 5월에 본격적인 앨범 <You’re Speaking my Language>를 발표하며 세계 순회공연을 시작했다. 물론 줄리엣 루이스는 “할리우드 스타가 록밴드를 한다더군” 하는 일반적인 반응에 맞서 싸워야만 하는 새내기다. 키아누 리브스, 조니 뎁, 러셀 크로, (조금 성격은 다르지만) 브루스 윌리스까지, 할리우드 스타가 만든 록밴드란 얼마나 오랫동안 대중의 농담거리가 되어왔던가. 줄리엣 루이스의 밴드 역시 비평가들의 호의적이지 않은 평가와 록 마니아들의 선입견 속에서 분투하고 있지만, “스크린 아이돌이 록가수로 변신한 가장 흥미롭고 믿을 만한 사례”(콘택트 뮤직)처럼 따스한 환대도 슬그머니 늘어가고 있다. 어쨌거나 무대 위의 줄리엣 루이스는 이제 막 앨범을 출시한 신인 록가수이다.

인터뷰는 공연을 시작하기 두 시간 전 대기실에서 이루어졌다. “공연 전이라 약간 예민할지도 몰라요.” 공연기획팀의 말을 듣고 나니 손에 땀이 절로 밴다. 만나게 될 사람은 분장사의 두꺼운 메이크업을 거친 할리우드 스타가 아니라 혈혈단신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인디 록밴드의 보컬’ 줄리엣 루이스라는 사실을 다시 되새겼다. 그가 기다리고 있는 대기실로 들어가자 “배가 고프니 참치샐러드라도 좀 먹으면서 인터뷰할게”라는 말이 처음으로 날아왔다. 금발의 루이스는 자글자글한 잔주름을 감출 길이 없는 30대 중반의 나이가 되었건만, 보톡스로는 만들 수 없는 호탕한 만면의 미소는 예전과 다를 게 없다.

-최근 한국에서는 한 펑크록 밴드가 공중파 방송에서 옷을 벗어던지고 성기를 노출해 난리가 났다. 한국에 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하하하하하하. 나도 그 이야기 들었다. 오 마이 갓. 진짜 재미있다. 공공장소에서 옷을 벗는 행위(Public Nudity)를 보는 건 언제나 재미있다. 꽤 어이없는 일이긴 하지만 사회적 관례에 도전하는 행위니까. (밴드 멤버들이 시끄럽게 떠들자) 조용히 좀 해라. 너희가 조용히만 하면 우리도 금방 끝날 거야.

-(웃음) 기대했던 것과는 좀 다른 도시일 거라 생각되는데.

=정말 한국에 대해서는 별생각이 없었다. 솔직히 이렇게 현대적인 도시인지도 몰랐고. 이러니 새로운 곳에 가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골수팬들이라면 당신이 <스트레인지 데이즈>나 <내추럴 본 킬러>의 사운드트랙에 참여한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음악활동에 대해서 수긍하겠지만, 당신처럼 성공적인 여배우가 왜 밴드를 만들어 이곳저곳 공연을 다니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원래 완전히 정신이 나간 여자라서 그렇다. (밴드 멤버들이 웃음을 터뜨리자) 웃지마, 이것들아. (밴드멤버 “인터뷰 시작부터 좋은 말만 하는군”.) 시끄러워. (웃음) 난 항상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다. 연기를 하면서도 항상 집에서 곡을 만들고 주말에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걸 꿈꿨다. 나는 언제나 독립적인 사람이었고 록의 DIY(Do It Yourself!)정신을 사랑했다. 그래서 2년 전부터 밴드를 만들어 지금처럼 강렬한 라이브 공연를 해온 거다. 라이브 공연이라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다. 나에게 음악이란 언제나 라이브 공연이고, 군중과 호흡하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그런 걸 찾지 못했단 말로 들리기도 한다.

=영화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음악은 내 자신의 이야기다.

-그래도 당신에게는 영화와 음악이 서로 깊은 영향을 주고받는 게 아닌가.

=분명히 영화와 음악은 서로 영향을 준다. <올리버 스톤의 킬러>에 출연할 당시에는 연기를 위해 지미 헨드릭스의 노래 <Voodo Child>를 항상 들었다. 말하자면 음악은, 내가 부르는 각 곡이 모두 각각의 영화 캐릭터와도 같다고 생각한다. 나는 라이브 공연을 할 때도 영화처럼 매우 드라마틱한 구성을 주려고 한다.

-영화 외에는 어떤 것에서 음악적 영감을 얻나.

-모든 것에서 영감을 얻는다. 특히 요즘 같은 경우는, 부시 정부 때문에 짜증이 확 난다거나 할 때 영감을 얻는다. (웃음) 나는 영감을 주는 로큰롤이 좋다. 사람들은 그런 음악에서 자연스러운 힘을 얻고 자신만의 목소리를 발견하며 굳건히 일어선다.

-연기자로 활동하는 것과 록밴드의 멤버로 활동하는 것의 가장 큰 차이점은 뭔가.

=영화는 연기자가 모든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하며, 오랫동안 같은 환경에서 일하지는 않는다. 아. 어쩌면 그런 점에서 록밴드로 활동하는 것과 비슷하기도 하겠다. 나는 게으른 사람이 아니고,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준비되어 있기만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모든 것은 내 손에 달려 있다. 나는 내 자신의 예술가적 부분을 표현하는 것을 즐기고, 그렇게 내가 창조한 것을 대중에게 보여주는 것을 좋아한다. 영화든, 음악이든, 당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모든 것은 달라진다.

-<스트레인지 데이즈>에서 ‘P. J. 하비’(영국의 여성 싱어송 라이터)의 곡을 부른 것이, 당신이 음악적 커리어를 선택하는 데 영향을 끼쳤을 것도 같은데.

=와우.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성인으로서 노래한 것은 그게 처음이었다. 물론 어릴 때야 다들 그렇듯이 어른들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그러지만. (웃음) <스트레인지 데이즈>를 찍었을 때가 20살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밴드를 만들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음악을 하는 것이란 쉬운 일이 아니지 않나. 강한 동기를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부여해야 하고, 언제나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20살 즈음의 나는 무너질 듯이 불안정했다. 하지만 지금은 건강하고 행복하다. 그런 안정감이 음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당신의 보컬을 들으면 패티 스미스처럼 강렬한 여성 록가수들의 영향력이 느껴진다.

=나는 군중을 압도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그래서 패티 스미스의 보컬 스타일에서도 큰 영향을 받았다. 참, 새 앨범의 <You Speaking My Language>라는 노래를 들으면 프리텐더스나 톰 패티가 생각날지도 모르겠다. <Got Love to Kill>이란 노래를 들으면 블론디도 떠오를 거다. <Call Me>나 <Atomic> 같은 노래 말이다.

-하도 많이 들어서 조금 귀찮은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왜 밴드 이름을 그냥 ‘더 릭스’라고 하지 않고 ‘줄리엣과 더 릭스’라고 지었나. 당신이 음악적 성공을 위해 영화배우로서의 명성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사람들이 오해할지도 모르는데.

=일부러 그랬다. 사람들이 “당신은 여배우인데 뭣 때문에 음악을 하려고 어쩌고저쩌고…” 떠들어댈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오히려 나는 내가 누구인지 숨기고 싶지 않았다. 줄리엣 루이스! 나는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것이 바로 밴드이며 나의 미래다. 예를 들자면, ‘톰 패티와 핫브레이커스’, ‘이기 팝과 스투지즈’ 같은 밴드명과도 비슷한 의미가 아닐까. 내가 왜 록가수로 활동하는 것을 숨겨야 하는가. 나는 내가 영화배우로서 활동했던 날들에 대해 자랑스럽게 여기며 음악활동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이제 관둔 건가.

=그렇진 않다. 물론 나는 많은 영화에 출연하지는 않는다. 지금으로선 음악에 푹 묻혀서 산다. 사실 다시 영화작업을 시작하는 것도 그리 만만찮은 일은 아니다. 얼마 전에 제니퍼 가너, 케빈 스미스 감독과 함께 출연한 영화 <Catch and Release>의 촬영을 끝냈다. 사랑스럽고 멋진 영화가 될 거다. 또 조니 녹스빌과 함께 인디영화 <Daltry Calhoun>에 출연할 예정이다.

-조니 녹스빌? <잭 애스>의 그 미친 인간 말인가.

=하하하하. 미친 인간이 맞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는 진짜로 연기를 한다!

-당신은 젊고 재능있는 배우로 시작했으나, 정형화된 할리우드 여배우의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았다. 항상 조금은 비틀리고 상처입은 역할들을 연기해와서… 혹시 그런 것 때문에 요즘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당신을 캐스팅하기 두려워하는 건 아닐까.

=하하하. 아마도. 나는 항상 아웃사이더였다. 특정한 스테레오 타입 속에 갇혀서 연기하는 게 싫었고 복잡하면서도 진심이 담긴 역할이 좋았다. 그래서 인디영화감독들과 일하는 게 재미있다. 요즘 스튜디오영화들은 좀 지겹지 않나. 앞으로는 흥미있는 비전을 가진 감독들하고만 일하자고 다짐하는 중이다. 비록 최근에 찍은 영화는 스튜디오영화였지만. (웃음)

-당신 커리어에 대해서 꽤 낙천적인 편인가 보다.

=오. 나는 완전히 낙관론자다. 이 일을 제대로 하려면 당신은 반드시 낙관론자여야만 한다.

-이제 한국 공연 이후 계획은 뭔가.

=엄청난 세계 순회공연이 계속된다. 두달 동안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공연한다. 독일, 스웨덴, 스페인, 핀란드, 벨기에, 그리고 영국의 리즈페스티벌과 레딩페스티벌에서도 연주할 예정이다. 정말 흥분된다. 우리 웹사이트(www.julietteandthelicks.com)에 들러보면 우리가 언제 어디서 공연하는지 자세히 알 수 있다. 영화를 끝내자마자 딱 한달 쉬고 순회공연을 시작했고, 이게 끝나면 집에서 몇주간 쉰 다음에 또 전 미국 순회공연에 들어간다.

-세상에, 대체 그런 에너지를 어디서 얻나.

=내가 원하니까. 새로운 레코드를 만들고, 또 다른 팬들 앞에서 공연하고, 이렇게 밴드와 함께 세계를 돌아다니는 게 참 재미있다. 참, 항상 비타민을 빼놓지 않고 복용한다. (웃음) 지난 10년간 마약은 복용해본 적이 없다.

-오호, 정말인가.

=(웃음) 진짜다. 나는 그저 멋진 쇼를 만들고 싶은 마음뿐이다.

대기실에서 진행한 짧은 인터뷰가 끝나고 두 시간여가 흐른 뒤, 관객의 환호를 받으며 줄리엣 루이스와 밴드 멤버들이 무대에 올랐다. 마치 <킬 빌>의 우마 서먼처럼 몸에 착 달라붙는 노란색 옷을 입은 금발의 루이스는 신들린 듯한 무대 매너로 관중의 목을 꺾어댔다. 루이스가 관객을 향해 몸을 내던지며 스테이지 다이빙을 선보이는 순간은 이날 공연의 절정이었다. 관중이 루이스의 몸을 행복한 아틀라스처럼 받들어 올리는 순간, 배우 줄리엣 루이스는 온데간데없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록의 여신이 자신을 불태우고 있었다. “오, 코리아! 너희는 불보다 더 뜨거워!” 관중의 애끓는 ‘앙코르’ 요청에 다시 무대에 등장한 줄리엣 루이스는 밴드의 대표곡인 <You’re Speaking My Language>(넌 나와 통하는 녀석이야)를 마지막으로 열창했다. 그렇게 줄리엣 루이스는 처음 방문한 한국의 작은 클럽에 350여명의 ‘루이스와 통하는 녀석들’을 만들어놓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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