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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어깨에서 인생의 보물을 찾다, <인 굿 컴퍼니>

진급을 해도 모자랄 쉰이 넘은 나이에 갑자기 스물여덟살 새파란 상사를 맞이하여 밑으로 밀려나버린 광고 회사 중역 댄 포먼(데니스 퀘이드). 성질 같아선 그만두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아내는 늦둥이를 가졌다고 알려오고, 딸아이 알렉스(스칼렛 요한슨)는 유명 대학에 합격했으니 입학금만 있으면 된다고 좋아한다. 부아는 나지만 돈은 필요하다. 본의 아니게 댄 포먼을 궁지에 몰아넣은 젊은 사장 카터(토퍼 그레이스)도 고민이 많기는 마찬가지다. 집에 돌아온 어느 날, 아내는 이혼을 선언한 뒤 떠나버리고, 직장에서는 외톨이나 다름없다. 쾌속승진을 했어도 누구 하나 마음 터놓고 지낼 사람이 없는 그는 외롭다. 혼자 지내게 될 결혼기념일이 두려워 댄 포먼의 집에 억지로 초대 약속을 받아낼 정도다. 카터는 회사에서 마주쳤던 댄 포먼의 딸 알렉스를 그곳에서 다시 만나고, 이제부터 카터와 알렉스는 나이 많은 부하 직원, 또는 근심 많은 아버지를 속인 채 아슬아슬한 연애의 감정을 키워간다.

<인 굿 컴퍼니>는 아버지를 속이고 적에게 심장을 내어준 뉴욕판 (로미오와) 줄리엣의 절박한 연애담으로 곧장 뻗어갈 수도 있었다. 뭐든지 특별한 관심을 둘 것 같지 않은 무심한 표정의 스칼렛 요한슨과 어딘가 연약해 보이는 토퍼 그레이스의 이미지는 서로를 연인으로 보이게 하는 데 기이한 접착력이 있다. 그러므로 그 로맨스의 구도가 흥미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인 굿 컴퍼니>는 연애담의 정원으로 대뜸 들어가지 않는다. 망설이고 다시 출발하는 지점까지만 간다. 혹은 간절한 연애담이 아닌 경우 무진장한 코미디로 갈 수도 있었다. 마음에 안 드는 젊은 사장 카터에게서 딸을 지켜내려는 아버지 댄 포먼의 발광을 <미트 페어런츠>식 코미디 외전으로 펼쳤어도 흥미없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의 감독 폴 웨이츠가 파이의 백한 가지 방법을 몸소 보여준 <아메리칸 파이>의 감독임을 감안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폴 웨이츠는 유머러스하지만, 우스꽝스럽지 않은 느낌을 심어주고 싶어한다. 더 나아가는 것에 자신없기 때문에 적당한 지점에서 멈춘 것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이 지극히 잔인한 동네임을 유연한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한 목적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 생존 전략 속에서 시도때도 없이 잘려나가는 직원들을 보여주고, 그중 하나인 댄이 매몰찬 기업 윤리에 마지막 한방을 먹일 기회를 주고, 그 댄과 카터가 한편이 되도록 해주고, 또는 카터와 댄의 신변이 다시 뒤바뀌도록 풀어준다. <인 굿 컴퍼니>가 의외로 맞이하게 되는 결론은 험난한 생존의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이다. 그러므로 현실을 떠나지 않으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 현실의 냉기와 희망의 온기를 모두 짊어지고 있는 사람은 역시 댄이다. 반늙은이 댄은 지쳤으며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 그러나 숙련된 아버지 댄은 의젓하며 현실을 이해한다. <인 굿 컴퍼니>는 바로 그 특출하지 않은 아버지의 이야기이며, 그 아버지가 자식들을 상대로 상담해주는 이야기다. 이를테면, 폴 웨이츠는 <아메리칸 파이>와 <어바웃 어 보이>에서 선보였던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웃음을 섞어가며 부드럽지만 진지한 방식으로 끌어안으려고 한다. 아들의 자위로 뻥 뚫린 애플파이를 사이에 놓고 망연자실 쳐다보다가도 엄마가 오기 전에 치우자고 협력을 도모하던 <아메리칸 파이>의 아버지, 어떻게 하면 여자와 하룻밤을 자볼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이 인생의 낙이었던 바람둥이가 소년을 아들처럼 키우면서 자신조차 어른이 되어갔던 <어바웃 어 보이>의 독신남, 그 전작에서의 아버지상이 <인 굿 컴퍼니>에서는 전격적인 중심이 된다. 화장실 유머 <아메리칸 파이>와 워킹 타이틀 로맨스 코미디 <어바웃 어 보이>를 지나 세 번째 장편영화를 연출한 폴 웨이츠는 그 아버지상에 대해 좀더 진지하게 말해보고 싶어한다. 그래서 <인 굿 컴퍼니>는 딸을 위한 아름다운 연애담이나 아버지가 바보가 되는 막가파 코미디보다는 정열적인 육아일기를 쉰도 넘은 나이에 쓰고 싶어하는 댄 포먼의 행적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할리우드 엔딩치고는 의외로 덜 호들갑스러운 결말에 이를 때 그 점을 알게 된다. 이 영화가 딸을 시집보내는 이야기가 아니고, 결국 아들 하나를 더 키우는 이야기임을.

자신의 영화가 빌리 와일더 영화의 맥을 잇고자 한다는 폴 웨이츠의 말은 믿고 싶은 사람만 믿으면 된다. 그러나 손쉬운 방식으로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파이 구멍 뚫기식 코미디나 이제는 얼마간 감동의 기본 요소가 되어버린 철없는 아버지와 철든 소년의 이야기를 뒤로 하고, 아버지의 밋밋한 어깨에서 인생의 보물을 찾아내려고 노력한 것은 감동의 요점이다. 그래서 <인 굿 컴퍼니>는 값지다 할 만큼 훌륭하지 않지만, 나쁘지 않다고 격려할 만큼은 된다. 영화 <헤드윅>의 음악감독이었던 스티븐 트래스크의 단조롭지만 우아한 음악이 인물들을 묶어주는 데 크게 한몫을 하고 있으며, 스칼렛 요한슨이니 토퍼 그레이스니 말들은 많아도 역시 감동을 주는 건, 이제 중년에서 노년으로 가는 길목에 들어선 데니스 퀘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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