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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 캐서린 그레이엄
2001-07-25

도정일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70년대 초반의 몇년은 우리 언론사에 가히 ‘외신(外信)의 시대’라 불러야 할 정도로 해외 기사가 많았던 시절이다. 우주 탐사선들이 신기록을 세우며 연달아 외계로 날고, 미국 밀사 헨리 키신저가 금지의 땅 중국을 몰래 다녀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고, 한국군이 참전한 월남에서는 연일 전황이 쏟아지다가 어느날 거짓말처럼 사이공이 함락되고…. 그때만 해도 한국 특파원 취재망이 널리 깔렸던 시절이 아니어서 통신사 외신부는 밤사이 외국 통신들이 타전해오는 놀라운 뉴스들을 처리하느라 연일 중량급 기자들을 투입해서 야근으로 날밤을 새워야 했던 것이 그 70년대 초반이다. 야구공만한 활자로 제목을 뽑은 외신기사들이 거의 매일 신문 1면을 도배질하다시피 했던 것도 그 무렵이다. 그 분주했던 외신의 시대를 더욱 눈코 뜰 수 없게 한, 그러나 (이 대목에서 무성영화의 변사처럼 말하자) “오호라, 기자라면 그 시절을 결코 잊을 수 없게 하는 두개의 사건이 있었나니”, 하나는 71년 미 국방성 월남전 기밀문서의 신문 보도 사건이고 또 하나는 74년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의 사임이다.

내가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그 두 가지 사건 때문이다. 그 무렵 통신사 외신데스크 일각을 지키고 있던 나에게, 아니 당시의 젊은 외신기자들 모두에게, 그녀의 이름은 곧장 언론의 진실과 자유와 책임의 상징이었다고 말해야 한다. 국방성 기밀문서 보도에 나섰던 <뉴욕타임스>가 법원의 제지명령에 걸려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워싱턴포스트>도 그 문서를 입수한다. 보도할 것인가 말 것인가로 편집국과 신문사 법률고문들은 대립한다. 기자들은 보도해야 한다는 주장이었고 법률고문들은 <워싱턴포스트>와 그 산하 회사 모두가 존폐 위기에 직면하게 될 거라며 반대한다. 최종 결정은 발행인이었던 그녀의 몫으로 넘겨진다. 그녀는 크게 숨을 한번 들이쉰 다음 기자들에게 세 마디로 결단을 내린다. “하세요, 하기로 해요. 하는 겁니다.”(Go ahead, go ahead, go ahead.) 그리고 다시 확인한다. “합시다. 우리 보도합시다.”(Let’s go. Let’s publish.) 그렇게 해서 <워싱턴포스트>는 <뉴욕타임스>와 스크럼을 짜게 되고 결국 승리는 언론의 자유쪽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다음해인 72년, 세칭 ‘워터게이트’ 사건이 발생한다. 대선을 앞둔 그해, 민주당 워싱턴 워터게이트 사무실에 수명의 괴한들이 침입하려다 붙잡힌다. 괴한들은 ‘좀도둑’으로 처리되고 세상은 별로 주목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게 단순절도의 침입행위가 아닐지 모른다고 생각한 <워싱턴포스트>의 두 젊은 기자 칼 번스타인과 밥 우드워드는 집요하게 사건을 파고든다. 그들의 탐정소설 같은 추적 드라마가 결국 어떻게 결판났는가는 구태여 여기 기억할 필요가 없다. 닉슨을 재선 2년 만에 권좌에서 끌어내린 것이 그 결말이기 때문이다. 권력을 상대로 한 그 질긴 싸움에서 그녀가 한 일은? 그녀가 한 일은 간단하다면 간단하다. 편집국을 끝까지 신뢰하고, 진실 보도의 책임과 자유를 위해 ‘사운을 걸고’ 편집권의 독립을 지켜준 것이 그녀가 한 일의 전부이다. 그러나 그녀를 잊을 수 없는 존재이게 하는 것은 이 간단한 일의 비범성, 말하자면 ‘위대한 간단함’이다.

그녀의 이름은 캐서린 그레이엄이다. 지난 7월17일, 그녀가 84년의 생을 마감했을 때 미국 언론들은 깊은 애도에 잠긴다. 그녀가 완벽한 인간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언론의 책임이 무엇이며 언론의 자유가 어떻게 정의되어야 하는 것인지를 알고 있었던 사람이다. <워싱턴포스트> 발행인으로, 그리고 회장으로 재임한 27년 동안 “나는 단 한번도, 단 한건의 기사도 죽이라고 편집국에 주문한 적이 없다”고 그녀는 회고한 적이 있다. “신문은 재정적으로 튼튼해야 독립을 지킬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신문사 자체의 돈벌이와 이해관계를 위해 신문의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이용한 일이 없다”는 것도 그녀의 회고이다. 이런 회고가 진실이라는 것은 그녀의 ‘위대한 편집국장’이었던 벤자민 브래들리를 비롯한 <워싱턴포스트> 기자들이 증언한다. 그녀는 겸손했고, 신문 권력을 행사하지 않기 위해 각별히 노력한 사람이다. 30년간 그녀를 태우고 다녔던 운전사는 말한다. “회장님은 뒷좌석에 앉는 법이 없었어요. 언제나 내 옆에 앉아 조수 노릇을 해주었죠….”

가문 소유라는 점에서 <워싱턴포스트>는 우리 식으로 말하면 ‘족벌신문’이다. 그러나 신문은 그녀와 그녀 집안의 소유였지만, 신문을 만들고 ‘<워싱턴포스트>를 <워싱턴포스트>이게’ 하는 일은 기자들의 몫이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나라 언론 사주들이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일깨우는 대목이다.

도정일/ 경희대 영어학부 교수·문학평론가 jidoh@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