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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특한 국산애니, 왜 몰라주나
황혜림 1999-12-28

<붐이담이 부릉부릉> <마일로의 대모험> 국산 TV애니메이션

<마일로의 대모험>

주말도 아니고 평일, 출근 시간대인 아침 8시나 오후 5시 이후의 TV는 사실상 아이들 차지다. 세대에 따라 프로그램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화면조정이 끝나고 만화영화가 시작하길 기다렸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한두번쯤은 있을 것이다. 또 만화영화를 챙겨보지 않게 된 시점에 이르러서야 어릴 때 온통 마음을 빼앗겼던 TV만화들이 대부분 국산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약간은 씁쓸했던 기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현재 아이들의 시간대에 <붐이담이 부릉부릉>과 <마일로의 대모험>처럼, 나름의 매력이 분명한 국산애니메이션이 늘어났다는 사실은 틀림없이 성장의 흔적이다. 최근 한두달 사이 방영을 시작한 두 작품은 제각각 동심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시청자들에 이르는 쉽지 않은 여정에 나섰다.

<마일로의 대모험>, 기획 제작에만 2년 들여

우선 애니메이션제작사 곰무리의 <붐이담이 부릉부릉>은 10월22일부터 매주 금요일 아침 8시10분 MBC에서 방영되는 미취학 어린이를 위한 교육용 애니메이션. 부릉부릉 마을에서 살아가는 유치원생 소년 붐이와 소녀 담이, 그들의 다양한 자동차 친구들의 아기자기한 일상을 통해 아이들 눈높이에서 세상 체험을 그려낸다. 마을 이름이나 자동차 친구란 설정에서 감을 잡을 수 있듯, <붐이담이…>는 교통질서를 중심으로 인간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 여럿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기초교육을 담고 있다. 교육이라고 해서 지레 따분해하거나 설교조를 떠올릴 필요는 없다. 앙증맞은 두 아이와, 늘 함께 다니는 노란색 유치원 미니버스 두비두, 떠돌이 강아지 밍구, 말썽꾸러기지만 마음 착한 울퉁카와 불퉁카 등 깜찍한 캐릭터들은 어른들의 훈계 대신 서로에 대한 이해를 통해 ‘함께 사는 법’을 배워간다. 학사모를 쓴 도서관이나 주사기를 든 병원 등 상상력이 기발하고, 친근한 만화체 그림과 노랑, 분홍, 하늘 등 파스텔 색조가 펼쳐보이는 화사한 세계도 동심을 끌기에 부족해 보이지 않는다. 가수 윤도현, 이정렬이 부른 주제가를 비롯해 록, 레게, 삼바, 왈츠, 국악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 30여곡을 따로 만들어 각 에피소드의 내용을 음악으로 정리하는 형식도 눈여겨볼 만한 시도다.

11월26일부터 매주 금요일 6시15분 KBS2에서 방영되는 <마일로…>는 오랜 경력과 노하우로 애니메이션업계에서 비교적 안정된 명성을 쌓아온 선우엔터테인먼트의 야심작. 곤충계 암흑시대를 구원하려는 개미 마일로와 친구들의 모험담을 그린 코믹판타지물이다. 일개미 마일로와 여자친구인 무당벌레 대핀, 왕족개미 루퍼트 등이 암흑구슬로 곤충세계를 장악하려는 사마귀 머독의 음모에 맞선다. 아더왕의 전설을 연상시키는 마법의 칼이라든지, 마법사와 왕족 등 전체적으로 중세 기사담 분위기인 <마일로…>는 애초부터 세계시장을 염두에 두고 기획된 작품이다. 제1회 동아-LG 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캐릭터 부문 대상을 수상한 신동민의 <프프의 대모험>을 원안으로 기획 및 제작에 2년을 들였다. 캐릭터와 시나리오 설정에 꼼꼼한 노력을 쏟고, 650만달러에 이르는 제작비를 들인 결과 현재 해외시장에서는 괜찮은 반응을 얻고 있다. 세계적인 배급망을 가진 미국 프리멘틀사가 한국, 일본을 제외한 지역과 배급 계약을 맺었고, 일본과도 배급 계약을 추진중이다. 호주에서는 12월 초부터 TV 방영이 시작됐다고.

외국에선 호평, 국내에선 찬밥신세

<붐이담이 부릉부릉>

하지만 작품의 질적 향상에도 불구하고 국산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이 인색한 환경에서 두 작품이 시청자들을 사로잡기란 쉽지 않다. 금요일 아침 주 1회 방영인 <붐이담이…>의 경우, 어린 시청자들을 매주 끌어들이기에 충분치 않은 편성인지 시청률은 7∼8%를 맴도는 정도. 게다가 최근에는 크리스마스에 맞춰 방영될 예정이던 <산타를 만났어>편의 일부가 방영 취소되는 불운을 겪었다. 크리스마스나 연말에 특집 프로가 급편성되고 고정프로가 밀리는 일은 적지 않지만, 지난 12월17일 5개 에피소드 중 일부가 방영된 상태에서 24일 방영이 취소돼 이야기가 절반으로 잘린 셈. 31일 방영도 밀레니엄 특집 때문에 취소될 예정이어서 나머지 절반의 이야기를 보기는 힘들어질 것 같다. <붐이담이…>보다는 낫지만 <마일로…>의 여건도 좋지는 않다. 첫회 12.8%를 기록했던 시청률은 현재 10% 전후 수준. 선풍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포켓 몬스터> <카드캡터 체리> 등 일본애니메이션이 장악하는 시간대임을 감안하면 나쁘지는 않으나 만족스러운 성적은 아니다. <마일로…> 방영 개시 후 같은 시간대 SBS에서 편성돼 경쟁을 의식한 급편성이란 혐의를 남기는 <카드캡터 체리>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무조건적인 국산 옹호론을 펼칠 필요는 없지만, 국산애니메이션의 성장의 폭을 정확히 보고 그만큼 배려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 최소한 좋은 작품을 만나고 싶다는 시청자의 욕구에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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