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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에로틱한 페디큐어 <로리타>(Lolita)
2001-07-26

1962년, 감독 스탠리 큐브릭 출연 제임스 메이슨 장르 드라마 (워너)

영화사에 기록된 감독 중 스탠리 큐브릭만큼 편집증적이고 완벽주의를 추구했던 감독도 드물 것이다. 그러한 그가 <스팔타커스>를 연출하면서 할리우드 시스템의 온갖 간섭과 요구 그리고 결국 편집권까지 박탈당하는 참패를 겪었으니 그의 분노를 짐작할 만하다. 때문에 그 다음 그가 선택한 작품은 자신의 예술적 영감과 연출력을 증명하고 전작의 오명을 만회할 만한 것이어야 했다.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세간의 사람들이 입을 모아 ‘이 작품만은 아무도 영화화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던, 러시아 망명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로리타-한 백인 남자의 고백>이었다.

13살 어린 소녀를 사랑하는 40대 남자의 성적 집착과 그 주변인물을 둘러싼 심리적 긴장감이 밀도있게 전개되는 이 작품의 연출을 위해 스탠리 큐브릭은 원작자에게 직접 시나리오를 의뢰했다. 자신의 작품이 ‘영화화’한다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회의를 품었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애초, 스탠리 큐브릭의 제안을 거절하지만, 결국 영화작업에 참여하게 된다. 영화가 공개된 이후, 원작의 섹슈얼리티와 심리적 긴장감은 소멸된 블랙코미디라는 항간의 비판이 있었지만 오히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원작의 20%에 해당하는 내용만으로 채워진 영화에 대해 만족감을 표시했고 큐브릭은 자신의 작가적 가능성을 과시하였다.

영화 <로리타>는 프랑스 출신의 험버트 교수가 한 남자의 저택에 숨어들어 그를 살해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플래시백되는 다음 장면은 험버트의 심리적 행적들을 추적한다. 하숙집 주인의 어린 딸, 로리타를 사랑하게 된 험버트는 그녀의 곁에 남기 위해 그녀의 어머니 샤를롯과 결혼을 한다. 하지만 우연한 사고로 샤를롯이 죽게 되고, 의지할 곳이라곤 험버트밖에 없게 된 로리타는 그에게 강하게 매달린다. 법적인 자신의 딸을 사랑하는 험버트. 하지만 험버트는 누군가 자신들을 위협하고 있다는 강박증에 시달리게 되고, 어느날 로리타마저 실종되는 일이 벌어진다.

이 영화에서 주요한 사건은 미스터리하게 전개되는 실종, 살인이라기보다 각 등장인물의 얽혀 있는 듯한 심리적 긴장관계이다. 로리타와 그녀의 어머니인 샤를롯은 같은 남자를 사랑하고 경쟁하는 관계, 즉 엘렉트라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40대 중년의 험버트가 어린 소녀 로리타에게 성적인 집착과 애정을 느끼는 것은 이른바 ‘로리타 콤플렉스’라는 말을 파생시켰다. 그러면서 스탠리 큐브릭은 원작소설이 천착하던 이상심리의 섹슈얼리티적 감성보다는 한 남자의 자기파괴적 광기와 이상심리를 블랙코미디 방식으로 풍자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럼에도 한 남자의 손길이 소녀의 발가락에 패티큐어를 바르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의 오프닝은 가장 아름답게 에로틱한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힐 만하다. 더더구나 98년 에이드리언 라인이 리메이크한 <로리타>가 단지 등급논란을 일으키며 ‘중년남자의 타락한 섹슈얼리티’로만 묘사된 것에 비한다면 말이다. 이 작품 <로리타>가 큐브릭의 영화목록에서 상위를 차지할 만한 수작은 아니지만, 문학을 영화화해내는 그의 뛰어난 감수성과 비주얼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정지연/ 영화평론가 woodyalle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