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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앨리스는 더 이상 여기에 살지 않는다>
2001-08-02

슬퍼도 다시 한번

Alice Doesn’t Live Here Any More 1974년, 감독 마틴 스코시즈 출연 엘렌 버스틴 <EBS> 8월4일(토) 밤 10시10분

“이것은 어떻게 사람들이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 저지르는가에 관한 영화다.” 마틴 스코시즈는 <앨리스는 더 이상 여기에 살지 않는다>에 관해 이렇게 설명한 바 있다. 영화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멜로드라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남편을 잃은 여성이 방황을 하다가 다른 남자를 만나 새로운 가정을 꾸미게 되는 것이다. 슬픔은 잠시, 그리고 행복이 다시 시작되는 것만 같다. 외형적으로 보건대 영화는 더글러스 서크 같은 멜로드라마의 거장이 1950년대에 확립해놓은 장르의 관습을 고스란히 반복하는 듯하다. 결말 역시 해피엔딩에 가깝다. 그런데 <앨리스…>에서 마틴 스코시즈 감독은 여느 작업에서 그렇듯 미국 장르영화 전통에 관한 재고(再考)의 시선을 견지한다. 전작 <비열한 거리>(1973)가 감독 자신의 체험담을 바탕으로 한, 남성적인 세계에 관한 매혹을 담은 작품이라면 <앨리스…>는 앨리스라는 여성의 인생사에 초점을 맞추면서 멜로드라마라는 장르를 연출자의 독특한 스타일로 해체하면서 매력을 발하는 영화다.

<앨리스…>에서 주인공 앨리스는 정말 대책없는 아줌마다. 남편이 죽자 아들 토미와 길을 떠나는데 목적은 단 한 가지, 자신의 어렸을 적 꿈을 이루기 위함이다. 가수가 되고 싶다는 거다. 먹고살기 위해 당분간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게 된 앨리스는 목장주인 데이빗이라는 남성과 교제한다. 안정적이고, 소박한 데이빗은 앨리스의 마음에 쏙 드는 남자. 그녀는 재차 꿈을 접고 가정에 안주해야 할 것인지 고민한다. <앨리스…>에서 앨리스와 12살짜리 아들 토미는 거의 친구 사이로 보인다. 그만큼 앨리스라는 캐릭터는 청승맞은 구석도 있고, 푼수끼가 다분한 편이다. 자신이 맡고 있는 ‘책임’이라는 문제에 대해 거의 현실적인 감각이 없다. 그녀는 마초적인 근성을 지닌 남편과 사별한 뒤에도 여전히 비슷한 유형의 사람을 만나 상처입는다.

그런데 영화는 별로 심각하거나 슬픈 기색이 없다. 오히려 경쾌하다. 고전기 할리우드 코미디물을 연상케 하는 낙관주의를 은근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마틴 스코시즈 감독은 <앨리스…>에서 멜로드라마의 형식을 가져오되, 지나친 감상은 배제한다. 요컨대 이런 식이다. 결말에서 앨리스는 길을 걸으면서 아들과 대화를 나눈다. 그녀는 아들 토미를 품안에 꼬옥 안아준다. 카메라는 다정하기 이를 데 없는 모자의 풍경을 뒤에서 묵묵히 지켜본다. 여느 멜로드라마라면 정서적인 흡인력이 최고조에 달할 장면이다. 그런데 잠시 뒤 아들이 캑캑거리면서 말한다. “엄마, 나 숨을 못 쉬겠어.” 이렇듯 감독은 멜로드라마의 낭만적 속성이나 장르적인 테크닉을 영화에서 슬그머니 무력화시킨다.

<앨리스…>는 배우들 연기를 눈여겨볼 만하다. <엑소시스트>(1973)의 엘렌 버스틴이 이번에도 자식문제에 속수무책인 모성을 연기하고 있는데 그녀는 이 영화로 같은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바 있다. 아역배우 알프레드 루터는 토미 역을 천연덕스럽게 소화해낸다. 거울을 보면서 서부영화 총잡이 흉내를 내는 토미는 스코시즈 감독의 체험이 녹아든 캐릭터가 아닌가 싶다. 어느 인터뷰에선가 스코시즈 감독은 자기 영화의 ‘거울’ 모티브, 즉 캐릭터들이 거울 앞에서 무엇인가 증명하려고 애쓰는 장면이 곧잘 나오는 것은 자전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 밝힌 바 있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sozinh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