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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는 당신 등 뒤에!
2001-08-02

컴퓨터 게임/ <어둠 속에 나 홀로>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랑 모처럼 기분좋게 한잔 걸치고 막차 시간을 아슬아슬하게 맞춰 집으로 돌아온다. 마침 비도 내리고 골목엔 나 혼자밖에 없다. 가로등은 늘 그렇듯이 고장나 있지만 익숙한 길이라 문제는 되지 않는다.

그러다 갑자기 주위의 어두운 공간을 인식하게 된다. 캄캄한 등 뒤는 미지의 공간이라는 걸 깨닫는다. 지금까지 의식하지 못했기에 공포는 더욱 빠른 속도로 나를 덮쳐온다. 뒷목이 뻣뻣해지고 등에는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이런 불쾌한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고개를 돌려 등 뒤를 돌아보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등 뒤의 공포를 확인할 용기가 없다. 간신히 용기를 짜내 고개를 돌렸더라도 다시 앞을 보아야 할 일이 걱정이다. 잠을 자다가 왠지 무서워져서 이불을 뒤집어써놓고는 감히 다시 끌어내리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공포는 다른 어디가 아닌 바로 우리 몸 속에 숨어 있다. 평소에는 작게 움츠리고 있어 보잘것없지만, 어느 한순간 부풀어올라 몸 전부를 휘감고 넘쳐난다. 영화든 소설이든 게임이든, 호러 장르의 대가들은 우리 내면의 공포를 끌어내는 데 탁월한 솜씨를 보여준다.

<어둠 속에 나 홀로>(Alone in the Dark)는 92년 1편이 나온 호러게임의 고전이다. 3편이 95년에 나왔으니 4편은 자그마치 6년 만이다. 조잡한 그래픽으로도 충분히 무서웠지만 이번에는 3D 그래픽으로 무장했다. 3D 폴리곤의 입체감은 평면그림에서는 줄 수 없었던 새로운 공포를 제공한다.

에드워드 칸비는 심령현상 전문 탐정이다. 직업상 여러 기괴한 사건들과 마주치는데 그의 모험은 유별나게 독창적이지는 않다. 호러영화를 즐겨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익숙할 장치들, 익숙한 장면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별거 아닌 연출, 여기저기서 많이 본 장면들이 참기 어려울 정도로 무섭다.

영화와는 달리 <어둠 속에 나 홀로>에서 공포는 게이머 자신의 손으로 직접 끄집어내진다. 같은 호러게임이라도 호러소설에 뿌리박은 고전 어드벤처 방식에 뿌리를 둔 게임들, 예를 들어 <스크림>이나 <다크 시드>에서 공포는 텍스트와 장면들을 통해서 주어진다. 게이머가 공포 속으로 뛰어들게 되는 건, 주어진 장면의 수수께끼를 풀면서 장면들의 공백을 스스로의 머릿속에서 그려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황이 얼마나 정교하고 설득력 있게 제시되는가가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액션게임에 뿌리를 둔 <어둠 속에 나 홀로>에선 상상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권총을 사용해야 한다. 괴물이 눈앞에 다가온다. 너댓방 가지고는 죽지 않는다. 총알을 재장전해야 한다. 영화에서 이런 장면이 나오면 부들부들 떨면서 총알을 넣는 주인공의 어설픈 손동작에 안타까움과 초조함을 느낀다. 그리고 주인공이 느낄 긴장을 함께 경험한다.

게임에서 재장전하는 순간은 긴장의 공감을 넘어선다. 마우스를 허겁지겁 클릭하면서 재장전하는데 괴물은 사정없이 가까워지고, 당황하다보니까 제대로 재장전이 되지 않는다. 버벅대는 손동작에 대한 안타까움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공포와 미칠 것 같은 답답함이 게이머를 사로잡는다. 게이머의 동작 하나, 상황 하나가 없었던 공포를 만들어낸다. 왜 이리로 와서 이걸 건드렸는지, 후회에 또 후회하는 건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과는 다르다. 어둠 속에서 내 손으로 끄집어낸 공포는 남이 던져놓은 어떤 공포보다 강하게 나를 사로잡는다. <어둠 속의 나 홀로>는 놀라운 호러게임이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sugulman@cholli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