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한 개에서 네개까지 모두 가능
만약 평론가의 리뷰와 별점이 독자들에게 이 영화를 볼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정보로 작용한다면, <리틀 청>은 별 한개에서 네개 사이라고 적겠다.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술수’를 부리는 이유는 이렇다. 별 많이 달린 영화가 대체로 지루하다는 것, 평론가들이 적당한 험담과 함께 별을 두개에서 두개 반쯤 주었을 때 오락성이 가장 강하다는 사실을 관객은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 제작자들은 두개 반 정도의 별점을 받으면 시장성이 크다는 판정으로 받아들여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짓고 네개에 육박하면 불안감에 떤다. 영화에 대한 간편하고 실용적인 평가방식으로 정착된 별점 제도가 평론가와 대다수 관객 사이에 이질성을 심화하면서 도리어 우스꽝스러운 방식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리틀 청>은 시장성면에서 별 한개짜리다. 이 영화에 대한 권유를 유익하다고 받아들일 만한 사람은 열명 중에 한두명일 것으로 예상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주제의식의 진정성과 작품의 완성도면에서는 세개 반에서 네개를 호가한다. 별 한개짜리 시장성에 해당하는 영화를 기꺼이 보려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를 평이하고 재미있다고 여길 것이다. 이런 관객은 아마도 클로즈업과 반응숏을 빈번하게 사용하면서 내러티브와 인물의 감정을 친절하게 풀어가는 상업적인 코드 못지않게, 롱테이크와 풀숏을 선호하는 작가들의 의도에도 익숙할 것이다. 그렇다면 홍콩 거리를 가득 메운 간판들의 아우성으로부터 물질만능주의의 악취를 맡아내고 그것이 이 거리의 사람들을 어떻게 질식시키고 길들여가는지 등등에 관한 정보와 감독의 숨겨진 감정을 좀더 구체적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래도 굳이 한 가지 별점만을 매기라면, <리틀 청>은 두개 반에서 세개쯤 된다고 어처구니없는 ‘타협’을 저지르게 될 것 같다.
▶ 리틀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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