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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옴니버스영화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2001-08-23

사랑의 세 가지 색깔

Leri, Oggi, Domani 1963년, 감독 비토리오 데 시카 출연 소피아 로렌 <EBS> 8월25일(토) 밤 10시10분

“오늘날 데 시카 이상으로 채플린의 유산을 이어받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이는 없을 것이다.” 앙드레 바쟁은 언젠가 이렇게 일갈한 바 있다. 두 사람의 공통점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데 시카와 채플린 모두 영화인생을 연기자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이후 영화연출로 방향을 선회했다. 뿐만 아니라 데 시카 감독은 채플린에게서 몇 가지 중요한 영화적 영감을 얻기도 했다. 희극과 비극의 정서를 교묘하게 결합하는 테크닉, 그리고 세련된 언어의 조탁에 소질을 보인 점은 데 시카 감독이 채플린 영화에서 영향받은 흔적들이다.

1960년대의 데 시카 감독은 네오리얼리즘의 물결에서 멀리 벗어나 있었다. 시나리오 작가였던 세자르 자바티니와의 공동작업이 막을 내리고, 홀로 해외무대에서 활동하던 때다. 당시 감독은 네오리얼리즘 시기의 영화들, 즉 <자전거 도둑>이나 <구두닦이> 등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현실에 관한 세밀한 관찰 대신, 가볍고 쾌활한 드라마를 만드는 것에 몰두하고 있었다. 당시 데 시카 감독에겐 두명의 든든한 스타들이 있었다. 소피아 로렌과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가 그들이다. 두 스타가 나란히 등장하는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은 당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감독에게 안겨주었다.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은 세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된다. 그런데 배우는 똑같다. 소피아 로렌과 마르첼로 마스토로이안니가 각기 다른 역할을 소화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이탈리아의 도시들을 배경으로 삼으면서 세 가지 사랑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아델리나라는 여성에 관한 것. 아델리나는 밀수입 담배를 제조하는 일을 한다. 남편은 돈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사람이다. 형사들이 수사망을 좁혀올 때마다 아델리나는 한 가지 꾀를 쓴다. 당시 이탈리아에선 임신한 여성을 구금하는 일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그녀는 거의 쉴새없이 아이를 임신함으로서 법망을 피해간다. 두 번째 에피소드의 안나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지만 남편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한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선 매춘부 출신의 마라라는 여성이 한 신학도를 만나 정신적인 사랑에 빠져버린다.

이 영화에서 감독은 각각의 에피소드를 전혀 다른 스타일로 만들었다. 장르도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코미디를 기조로 하면서 때로 활력이 넘치는 뮤지컬, 황량하기 그지없는 로드무비의 양식을 조금씩 첨가하고 있다. 무엇보다 영화에서 인상적인 것은 배우들의 연기다. 소피아 로렌과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는 에피소드마다 상이한 캐릭터들을 자연스럽게 연기해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소피아 로렌은 하층민 여성에서 부유한 상류층, 그리고 매춘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페르소나를 얼굴에 걸치고 있다.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은 이탈리아식 스크루볼코미디의 진수라고 할수 있다.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은 모두 사랑이라는 감정을 희롱하고 있지만 결말이 늘 행복한 것은 아니다.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던 여성은 현실의 덫에 걸려 정신차리게 되고, 어느 매춘부는 신학도와의 정신적 교류 이후 자신이 어느새 변화했음을 발견한다. 데 시카 감독은 사랑의 패러독스를 시적인 정서와 결합해 한편의 진기한 코미디로 둔갑시켜놓았다. 사랑이라는, 논리적으로 해명할 길 없는 ‘감정’을 영상으로 표현하는 것에서 데 시카를 능가할 이는 영화사를 통틀어 그리 흔치 않은 것 같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sozinh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