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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위해 준비된 옛날이야기, <키리쿠, 키리쿠>
김나형 2006-05-02

본연의 생명이 꿈틀대는 아프리카는 환상과 마법의 땅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아프리카 사람들은 아기가 죽으면 귀신 ‘아비쿠’의 소행이라 생각한다. 처음부터 아기는 없었다. 아비쿠가 인간을 상심시키려고 아기의 모습을 하고 태어나 죽어버린 것이다. 아프리카인들에게 아비쿠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하면 이런 상상은 자식의 죽음에서 오는 극렬한 통증을 조금이라도 덜어보려는 몸짓이다. 생명을 앗아가고 작물을 망쳐놓는 무심한 자연에 대한 일종의 방어인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프랑스 감독 미셸 오슬로는 자신의 첫 장편 <키리쿠와 마녀>를 통해 아프리카적 세계관과 객관적 사고방식을 사려깊게 섞어냈다. 아프리카 마을에 한뼘도 안 되는 아기가 태어난다. 그는 태어나기 전부터 말을 하더니 스스로 엄마 뱃속에서 나와 자신이 ‘키리쿠’라고 선언한다. 기개가 뛰어난 키리쿠는 마을에 불운을 가져오는 마녀 카라바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카라바는 왜 그렇게 못됐죠?” 사람들이 마법이 무서워 웅크리고 있을 때 키리쿠는 본원의 답을 찾아 마녀의 영지를 넘는다. 신성한 산에 사는 할아버지는 자신을 찾아 온 손자에게 진실을 들려준다. 카라바는 사람을 먹지도 샘을 말리지도 않았다. 그녀는 등에 가시가 박혀 아파하는 인간일 뿐이었다. 키리쿠가 카라바의 등에 박힌 가시를 뽑자 그녀는 자유로운 인간이 된다. 카라바의 키스를 받은 키리쿠는 멋진 성인남자로 변하여 그녀를 데리고 마을로 들어선다.

<키리쿠, 키리쿠>는 <키리쿠와 마녀>에서 잘라낸 한 자락 외전이다. 키리쿠가 할아버지를 찾아가기 전, 마녀의 심술로부터 마을을 구해낸 네개의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사람들은 키리쿠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고 늘 실수를 저지르며 일이 잘못되면 카라바를 탓한다. 그들이 절망하고 있을 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키리쿠다. 전편이 가진 극적인 전개와 철학적 면모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키리쿠, 키리쿠>는 아이들을 위해 준비된 옛날이야기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단순한 이야기는 또 다른 종류의 즐거움을 준다. 사람들은 바지런히 밭을 일구고, 키리쿠는 씩씩하게 뛰어다닌다. 회사도 인터넷도 없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아프리카의 정경은 복잡하고 논리적인 것들에 둘러싸여 사는 현대인에게 놀라운 위안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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