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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하게 써내려간 폭압의 역사, <의문의 실종>

EBS 5월13일(토) 밤 11시

실제로 일어났던 정치적인 사건을 영화화하는 작업, 다시 말해, 역사의 영화화는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과거에 대한 기억일까? 그 기억은 누구의 시선에 의한 것일까? 현재의 우리는 재현될 수 없는 과거의 그 사건을 주관적인 기억으로 그저 메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역사의 그 빈 공간, 알 수 없는 그 순간을 영화를 통해 반복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은폐되었던 사건의 진실을 폭로하는 것은 무조건 윤리적으로 정당한가? 그렇다면 누가 무엇을 ‘폭로’하는가? 질문은 끝없이 이어진다. 그리고 이 질문들은 실화를 허구화하는(영화화하는) 영화들에 대해 우리가 제기해야 할 최소한의 물음이다. <의문의 실종>은 <고백>, <계엄령>, <특별구역> 등 줄곧 정치적 색채가 강한 영화들을 만들어온 코스타 가브라스의 작품이다. 이 영화 역시 토머스 하우저의 실화소설을 바탕으로 한다.

칠레 군사정권의 폭압적 현실 속에서 젊은 미국인 부부 찰리와 베시가 살고 있다. 거리는 군인과 그들이 쏜 총에 쓰러진 사람들의 피로 가득하다. 위태로운 생활을 이어가던 어느 날, 남편 찰리가 실종된다. 베시는 미국에 사는 찰리의 아버지 애드에게 도움을 청하고 에드는 아들을 찾기 위해 칠레로 건너온다. 그리하여 애드와 베시는 찰리의 생사를 알아보기 위해 미국 대사관과 접촉하지만, 미국 쪽 인사들은 무기력한 대답으로 일관할 뿐이다. 애드와 베시는 찰리의 행방불명이 단순히 칠레 군부대의 소행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간다. 칠레 쿠데타의 배후에 미 정보부가 깊숙이 개입되어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이 지점이다.

비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순간들이 많은 영화임에도 감독은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기본 구도인 만큼 이야기의 흐름이 갈등과 화해에 의한 진한 눈물로 점철될 것 같지만 예상외로 영화의 시선은 차분하다. 그것은 역사의 잔혹성을 섣부른 감정이입의 대상으로 전환해버리지 않으려는 의지로 읽힌다. 그럼에도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 가장 극한 순간, 모든 것을 접고 미국으로 떠나는 아버지의 모습은 개운하지 않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개인적 범주로, 정확히 말하자면, 미국의 가족주의로 축소하고, 칠레 군부의 잔혹함 이면에서 지배력을 행사하는 미국 자신에 대한 고발은 여전히 적당한 수준에 멈추고 있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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