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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죽음을 기억하라
2001-09-05

<아시안 블루> 제작자 이토 마사아키(伊藤 正昭)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1945년 8월24일 17시20분. 강제징용됐던 조선인 수천명을 태운 우키시마호는 목적지인 부산항이 아닌 마이즈루항 앞바다에서 돌연 침몰했다. 해방의 기쁨을 열흘도 채 누리지 못하고, 이국의 바다에 수장된 수천명의 조선인들. <아시안 블루>는 50년 전 미궁으로 빠져버린 우키시마호 사건을 일본인의 양심으로 끌어올려 진지하게 되묻는 영화다. 30대의 한 재일동포 2세 남자가 20대 후반의 한 일본인 여자와 함께 그녀의 아버지이자 유명한 시인이었던, 그러나 지금은 행방이 묘연한 하쿠운을 찾아나서게 되고, 그로부터 우키시마호 침몰이 일본의 폭침에 의한 것이었음을 듣게 된다는 줄거리. 당시 생존자와 유족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판결이 있던 지난 8월23일, 서울 아트선재센터에선 <아시안 블루>의 시사회가 있었다. 광주시민연대의 도움으로 광주를 거쳐 서울까지 프린트를 들고온 <아시안 블루>의 제작자 이토 마사아키(54)는 시종 어두운 표정이었다. 이날 교토 지방법원은 생존자 15명에게 4500만엔을 지급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지만, 9년 전 소송제기 때부터 공식사과와 진상규명을 요구했던 유족들을 외면한 일본 정부에 대한 따가운 시선을 그는 자신이라도 어떻게든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아시안 블루>는 교토 천도 1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됐지만, 이토 감독에겐 “종전 50주년을 기억하는, 아시아인들을 위한 영화”다. “후세들은 바른 역사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걸 제대로 전해야겠다는 마음이 컸다”는 그는 자신이 “모르고 저질렀던” 악행도 “언젠가 이 영화를 꼭 만들어야겠다”고 다그친 채찍 중 하나라고 털어놓는다. “초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 중에 조선인 친구가 있었는데, 일본 친구들과 어울려 괴롭혔다. 그런데 나이 먹어가면서 그때 참 못할 짓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러다 스물 넘어 선원 생활을 하면서, 마이즈루 근처 침몰현장을 보게 됐고, 수천명이 이곳에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건 개인의 불행이 아닌 인류의 불행이다 싶었고, 일본이 그 책임을 떠안기 전까지 역사는 항상 제자리이겠구나 싶었다.” 마지막에 그만큼 속죄했으면 됐다며 가족 품으로 돌아오라는 딸의 울먹임을 외면하는 노시인의 장면을 넣은 것도 “그 세대는 자신이 직접적인 가해자가 아니더라도 평생 죄의식을 안고 살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91년부터 제작에 들어가 4년 만에 완성한 <아시안 블루>는 ‘뜻있는 일본인’들이 만든 영화다. 마이즈루항에 누워 있는 장면에서 민단동포 100여명이 단역으로 출연해준 것을 빼면 감독, 스탭, 주연배우 포함 4천명의 엑스트라까지 모두 일본인. 대사가 어색한 것도 그 때문이다. 22년째 오키시마호 추모모임을 갖으면서, 자료집을 발행하고 있는 마이즈루시 순난수도회와 출발지였던 아오모리현 대학교수들의 자문도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당시 생존자들의 생생한 증언없이 영화를 완성할 수는 없었다. “처음에 그분들을 찾아가 협조를 구했다. 그런데 아무도 말을 안 하려고 하더라. 몇번을 설득했다. 왜 이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지. 그랬더니 결국 죽기 전에 진실을 알려야 한다며 그날의 참상과 일본에 대한 분노를 털어놓았다.”

시민단체에서 일하다 1961년부터 시네마테크를 운영하면서 영화와 인연을 맺은 그는 미국의 도쿄 공습을 배경으로 한 인형극영화 <고양이가 살아 있다>로 제작일을 맡은 뒤, 지난 89년부터는 시네마워크라는 제작사를 직접 차려 13편의 영화를 만들어왔다. “일본에서도 30만명 정도가 봤는데, 한국에서도 그만큼 성과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바람. “지난 6년 동안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한국 개봉이 늦춰져왔다”며, “무료 상영이라도 좋으니 많은 한국인들이 보았으면 한다”는 바람을 여러 번 내비쳤다.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 뒤 일본 내 그의 인기가 높아졌다는 것에 대한 우려의 질문에도 “언론이 주도한 통계일 따름이지 결과는 반대로 나올 수도 있다”며 “오히려 이번 불미스런 일을 계기로 역사에 무관심한 이들에게 진실을 알릴 수 있어 좋다”며 처음으로 웃었다.

글 이영진 기자 anti@hani.co.kr 사진 오계옥 기자 kla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