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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성과 음악으로 빚어낸 영상리듬
2001-09-05

제2강 - 허문영의 미조구치 겐지와 <오하루의 일생>

미조구치 겐지는 샘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1950년 후배 구로사와 아키라가 <라쇼몽>으로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을 때, “위대한 예술은 나이 50은 넘어야 하는 건데 까마득하게 어린 사람이 상을 받다니” 하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고 합니다. 그때가 미조구치의 나이 52살 때입니다. 그래서 자기도 상을 받기 위해 착수한 게 <오하루의 일생>입니다. 이 영화는 결국 1952년 베니스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하게 되지요. 그리고 미조구치는 연속해서 <우게츠> <산쇼다이유>를 베니스 출품, 3년 연속 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룹니다.

미조구치 겐지는 오즈 야스지로, 구로사와 아키라와 함께 일본영화를 대표하는 거장입니다. 그런데도 다른 두사람보다 덜 언급되고 덜 연구돼 온 편인데, 그 이유는 그가 서구학자들에겐 유용한 틀이었을 일본 ‘내셔널 시네마’의 범주로 쉽게 포착이 안됐기 때문일 것으로 짐작됩니다. 일본영화와 거의 동의어로 취급됐으며 일본 영화미학의 완성자인 오즈 야스지로, 그 반대편에 서구적 서사기법에 통달한 구로사와 아키라라는 구도에선 미조구치의 자리가 마땅치 않았던 겁니다. 실제로 미조구치 겐지에 대한 서구 영화학자들의 본격적 연구는 1980년대 이후에야 시작됩니다. 이 시기부터 일본 내셔널의 틀을 뛰어넘는 독창적인 영화세계를 이룩한 거장으로 자리매김됩니다.

<오하루의 일생>은 미조구치 겐지라는 이름을 서구에 처음 알린 영화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영화가 소개되자 당시 누벨바그 평론가들 사이에선 구로사와를 폄하하고 미조구치를 숭배하는 경향이 나타났다는 겁니다. 구로사와는 내러티브 의존도가 높고 논리성이 강했기 때문에 덜 영화적이라고 생각했던 거지요. 반면 미조구치는 회화성과 독특한 음악의 사용으로 독창적인 오케스트레이션을 빚어냈습니다. 자크 리베트는 자신의 <수녀>가 <오하루의 일생>에 감화받아 만든 영화라고 자랑스럽게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미조구치 영화를 말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게 여성 캐릭터입니다. 그의 영화에는 두가지 여성상이 공존합니다. 하나는 30년대 영화들에서 주로 나타나는 독립적이지만 반항적이고 공격적인 여인들입니다. 다른 하나는 50년대 영화들 특히 <오하루의 일생>이나 <우게츠>에서처럼 희생적이고 숭고한 여성상입니다. 얼핏보면 상반돼 보이지만, 미조구치의 편력을 살펴보면 이 두 여성상이 공존하는 이유를 짐작하게 됩니다. 미조구치의 아버지는 중소사업가였고 사업에 실패해서 아들을 초등학교밖에 보내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의 진학을 책임진 건 한때 기생이었다가 부잣집에 시집간 누나였습니다. 이후로도 그 누나는 미조구치에게 용돈도 주고 직업도 알선해줍니다. 말하자면 희생적이며 든든한 후견이었죠.

미조구치에게 또다른 여성상은 유곽에서 발견됩니다. 미조구치의 술과 여성 애호는 유명합니다. 두달 정도 같이 살던 기생을 버린 뒤 그 여자에게 칼을 찔리는 사건 때문에 신문에 보도된 적도 있습니다. 실질적인 첫 아내는 어느 댄스홀의 무희였는데, 미조구치가 너무나 바람을 피우는 통에 정신병에 걸립니다. 그런 와중에 처제의 남편이 죽자 그는 처제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상상불허의 행각을 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결혼도 안정적이지 못해 <오하루의 일생>의 여배우인 다나카 기누요한테 또 청혼을 합니다. 거절당한 미조구치는 이후 다나카 기누요의 감독 데뷔를 적극적으로 방해했다는 후일담도 있습니다. 여하간 58살에 죽기까지 여성편력이 끊이지 않았다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증언입니다.

이 특수한 체험들이 미조구치에게 모호하고 복합적인 여성상을 심어준 것으로 짐작됩니다. 많은 미조구치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는 이야기를 주도하지만, 자연주의적인 필치로 극히 냉정하게 묘사돼 즉각적인 동정이나 쉬운 동일시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의 중기 걸작 <오사카 엘레지>의 다소 충격적인 마지막 장면은 집안의 빚을 갚느라 창녀로 전락한 딸의 분노한 얼굴로 채워지는데, 그 표정이 비극의 주인공으로 보기엔 너무 도전적이고 공격적이어서 감독이 과연 그녀의 편에 서있는지조차 약간은 의심스럽습니다. <기욘의 자매들>에서 동생의 이미지도 이와 비슷합니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전락하는 여인의 일대기를 거대한 벽화의 스케일과 톤으로 그려낸 영화가 바로 <오하루의 일생>이며, 오하루라는 캐릭터엔 희생적이면도 공격적이고 속되면서도 숭고한 미조구치의 여주인공이 집약돼 있습니다.

뒤이은 <우게츠>도 그렇지만 <오하루의 일생>의 감동은 여성 캐릭터나 이야기 자체가 아니라 이 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요소들의 시적인 합주의 아름다움에서 옵니다. 이야기나 인물에의 몰입을 방해하면서 새로운 리듬과 화음의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를 들려주고 있는 겁니다. 이건 이야기체 영화의 독창적 경지였고, 미조구치의 작가성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점이지요. 미조구치 롱테이크와 원신 원숏(플랑 세캉스) 촬영이 영화교과서에 올라 있는 것도 그것 자체가 새로와서가 아니라 그것으로 자기만의 새로운 리듬을 만들어내고 때문이겠지요.

그러보 보면 미조구치도 스탠리 큐브릭처럼 끊임없이 재촬영을 요구하면서도 그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던 이유를 짐작할만 합니다. 그가 원하는 건 정교한 연기가 아니라 배우와 공간의 에너지가 합일하는 찰나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건 편집의 영화를 추구했던 오즈 야스지로의 자로 잰듯한 연출방식과는 대조되는 점이기도 하지요. 이 때문에 <오하루의 일생>은 빠른 호흡에 편집에 익숙한 사람들한테는 고통스러울지 모르지만, 머리와 감각을 열어놓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영화체험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정리 최수임 기자

▶ 모두가 아는 영화, 그러나 알지 못했던 이야기 - 제1강

▶ 회화성과 음악으로 빚어낸 영상리듬 - 제2강

▶ 영화사를 뒤흔든 걸작, 그 작용과 반작용 - 제3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