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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스릴러의 형식을 뒤집어쓴 정치영화, <괴물>
김도훈 2006-07-26

한강에 괴물이 나타났다. 봉준호의 <괴물>에서 양서류의 모습을 닮은 괴물과 맞서 싸우는 것은 정부도 군대도 경찰도 아닌 한 가족이다. 아버지 희봉(변희봉)과 함께 한강 둔치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박강두(송강호)는 하루종일 졸다가 손님의 음식이나 훔쳐 먹으며 소일하는 한심한 남자다. 그에게 하루하루는 그저 따분한 일상의 연속이고, 오직 외동딸인 현서(고아성)만이 삶의 목적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강두의 따분한 일상이 송두리째 뒤흔들린다. 한강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괴물이 현서를 산 채로 잡아 물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강두와 두 동생, 대학 시절 운동쫌 했다는 실업청춘 남일(박해일)과 천재적인 양궁 실력에도 참을 수 없을 만큼 굼뜬 성격의 남주(배두나) 등 강두네 가족은 현서를 찾기 위한 생명을 건 탐색전에 나선다.

닮은꼴 괴물영화들

그간 비평가들이 봉준호의 <괴물>과 비슷한 영화로 지목해온 괴물영화는 <엘리게이터>(Alligator, 1980), <피라냐>(Piranha, 1978), <플라잉 킬러>(Q-The Winged Serpent, 1983) 등이다. <엘리게이터>와 <피라냐>는 거대 기업의 실험물질을 먹고 흉포해진 악어와 피라냐가 살육을 벌인다는 내용이고, <플라잉 킬러>는 아스텍 종교를 숭배하는 광신도들로 말미암아 날아다니는 거대 괴물이 뉴욕의 크라이슬러 빌딩에 나타나 둥지를 튼다는 내용의 컬트영화. 세 작품은 괴물의 살육과 인간의 대처에 포커스를 맞춘 전통적인 괴물영화가 아니라, 괴물을 통해 인간의 삶을 풍자해낸다는 점에서 봉준호의 <괴물>과 닮은 데가 많다. 장르적인 비틀기와 정치적인 풍자가 절묘하게 혼합된 괴물영화의 괴작들.

<괴물>의 진짜 ‘괴물’은?

<괴물>은 보통의 할리우드 괴물영화들과는 다른 길을 걷는 영화다. <살인의 추억>의 봉준호 감독은 바이러스의 숙주인 괴물과 접촉했다는 이유로 병원에 갇히는 가족, 구청 직원이나 흥신소 업자들처럼 곳곳에서 튀어나와 가족을 참담하게 몰아가는 인물 등, 일상적인 삽화를 통해 괴물보다도 더 괴물 같은 한국의 현실을 스크린에 비추인다. 한국에서 괴물을 잡기 위해 갖추어야 할 것은 최신 무기가 아니라 나태한 공권력의 복지부동 행태를 극복할 만한 배짱이라는 이야기다. 미군부대에서 배출된 독극물 포름알데히드로 말미암아 괴물이 태어났다는 설정 역시 봉준호의 <괴물>이 SF 스릴러의 형식을 뒤집어쓴 정치영화라는 속내를 슬그머니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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