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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급 종합게임세트가 온다
2001-09-06

컴퓨터 게임/ EA.com 국내 진출

어디나 다 그렇지만 게임산업도 거대기업이 지배하고 있다. 그 메이저들 중 메이저가 EA다. 미국은 물론, 유럽이나 동구권까지 훑고 다니면서 괜찮다 싶은 게임을 미리 선점하고 엄청난 자금력과 조직력을 배경으로 확실하게 배급한다. 한발 더 나아가 쓸 만하다 싶은 게임 제작사는 직접 인수하기도 한다. <울티마> 시리즈를 만들었던 ‘오리진’이 그랬고, <심즈>의 ‘맥시스’에 이어 <파퓰러스>로 유명한 ‘불프로그’ 역시 EA에 인수되었다.

그런데 EA는 이상하게 한국에서는 맥을 못 췄다. EA의 롤플레잉과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 간판주자는 ‘웨스트우드’다. 하지만 이들이 만든 <녹스>나 <C&C> 시리즈, 특히 최근에 나온 <레드 얼랏2>나 <> 등이 한국에서는 ‘블리자드’의 <디아블로>와 <스타크래프트>에 완패했다. 게임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른 한국 게이머의 스타일을 고려해서 빠른 진행 요소들까지 집어넣었기 때문에 실망은 더 컸다. 게다가 문제는 블리자드와 웨스트우드라는 제작사끼리의 문제만이 아니라, 게임시장의 오랜 맹주인 EA와 떠오르는 세력인 ‘비방디’(블리자드의 게임을 배급한다)의 대결국면으로까지 확대되기에 이르렀다. 절치부심하던 EA는 총공세에 나섰다. EA.com의 한국시장 진출이다.

EA.com은 이미 장악한 비디오게임기와 PC게임뿐 아니라 온라인시장에서 수위를 차지하기 위해 만든 회사다. 미국에선 벌써 성공을 거두었고 해외 진출 1호가 한국이다. EA.com은 온라인 패키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다른 회사의 온라인 서비스로는 한 가지 게임밖에 못하지만, EA.com에서는 한달에 일정액의 사용료를 내면 여러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종합 선물세트에는 안 팔리는 것들만 들어 있는 게 보통이지만 E.A.com은 얘기가 다르다. 온라인 롤플레잉게임의 고전 <울티마 온라인>, 국내에서도 인기있는 <심즈>의 온라인 버전인 <심즈 온라인>, 여기에 로봇시뮬레이션게임 <배틀테크 3025>와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온라인 롤플레잉게임 <어스 앤 비욘드>, 야구게임 <트리플 플레이 온라인>에 축구게임까지 쟁쟁한 게임들뿐이다.

이 정도 물량공세라면 솔직히 나부터도 마음이 동한다. 가격도 월 2만원 미만이라니 3만원 가까운 돈을 내고도 게임 하나밖에 못하는 국내 온라인게임과 비교가 안 된다. 개인이 아니라 PC방 입장에서 보면 더 그렇다. EA 제휴 PC방에서는 극단적으로 말해 IP 하나만 구입해서 일곱 자리에서 게임을 돌릴 수 있다. PC방 입장에서 귀가 솔깃하지 않을 리 없다.

국내 온라인게임은 너무 짧은 기간 동안 엄청난 규모로 성장했다. <리니지>의 ‘NC소프트’는 코스닥시장에서 가장 돋보이는 회사고, 아직 게임 하나 만든 적도 없는 회사가 사업계획서만으로도 10억, 20억원 정도 투자받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화려한 모습 뒤에는 그늘이 있다. 실제 수익을 올리고 있는 업체는 손으로 꼽을 정도고, 수십만의 회원을 자랑하는 업체가 유료화된 뒤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부실한 서버와 주먹구구식의 운영을 생각하면 더욱 암담하다. 특정 게임에만 의존하고 있는 기형적인 산업구조라는 좀더 본질적인 문제도 있다.

EA.com의 공격적인 마케팅은 국내 업체들에 통렬한 한방이 될 것이다. 좋은 게임을 만들려는 회사보다는 어떻게든 회원 수를 늘려 코스닥에 상장해 한몫 단단히 챙길 생각에만 여념이 없는 업체가 훨씬 많다. 맛은 쓰지만 효과는 좋은 약이 되기를 바란다. 살아남을 길은 좋은 게임을 만드는 것뿐이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SUGULMAN@cholli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