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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대박치나여? 죽는 줄 알았슴다
2001-09-07

캐스팅에서 개봉 이후까지,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승부한 <엽기적인 그녀>의 흥행전략

<엽기적인 그녀>가 개봉 33일 만인 지난 8월28일, 전국 관객 400만명을 돌파했다. “안 잡으면 죽어!” 하던 ‘그녀’의 대사가 안 보면 안 된다는 주문이라도 된 듯 말이다. PC통신 소설로 네티즌들 사이에서 대단한 인기를 누린 원작에다 전지현, 차태현이란 스타들의 캐스팅으로 관객을 유인하는 기본 주문은 이미 갖추고 출발한 터. 하지만 <쥬라기 공원3> <슈렉> <A.I.> 같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틈새에서 이같은 흥행성적을 올린 한국영화는 흔치 않다. 태생에 걸맞게 젊은 관객을 겨냥한 청춘스타와 코믹한 멜로드라마의 아기자기함이 눈에 보이는 이유라면, 배후의 힘은 그러한 관객의 의표를 가늠하며 구미가 당길 만한 상품으로 포장해내는 마케팅일 것이다. <결혼 이야기> <편지> <약속> 등으로 멜로드라마의 유행을 한발 앞서 끌어온 제작사 신씨네의 기획과 마케팅은 이번에도 영화시장에서 합격점을 받은 셈이다. <엽기적인 그녀>가 관객과 만나기까지, 꾸준하고도 적극적인 애정공세를 펼쳐온 마케팅의 속내를 들어보기 위해 신씨네를 찾아갔다.

미션1 엽기커플을 잡아라 악전고투 캐스팅

아무데서나 토하고 뻗어도 예쁜 ‘엽기녀’와 얻어맞고 하이힐 신고 뛰면서 망가질 대로 망가져도 넉넉하고 귀여운 남자 견우. “전지현이지.”“차태현이야.” <엽기적인 그녀> 원작에 동감한 이후 두 번째 만장일치였다. 시나리오가 나오고, ‘견우’와 ‘엽기녀’에 관한 캐스팅 회의가 열린 2000년 5월. 신씨네 기획팀은 다들 질세라 차태현과 전지현을 서로 입에 올리고 있었다. 안방극장에서 거부감 없이 코믹한 이미지로 폭넓은 인기를 누리는 차태현과 테크노댄스를 추는 CF 이후 아이돌스타로 떠오른 전지현. 영화의 주관객층으로 삼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이른바 N세대에게 구애하는 데 이보다 더 좋은 조합이 있을까. 알음알음으로 주위의 예비관객에게 원작과 시나리오 모니터를 해본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막상 접선을 해보니 ‘미션 임파서블’. 전지현의 경우 12월쯤이면 가능하다고 했지만, 차태현쪽은 가수활동과 드라마 <줄리엣의 남자>, 또다른 영화를 맘에 두고 있어 출연이 어렵다는 입장을 명확하게 전해왔다. 8개월의 난항을 예고하는 시점이었다. 신철 사장을 필두로 최수영 기획실장, 김수연, 문환이씨 등 기획팀은 머리를 맞대고 ‘견우’를 찾느라 죽을 맛이었다. 원빈과 송강호 등이 물망에 올랐으나 여의치 않았고, 차태현에 대한 미련만 커져갔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 했던가. 결국 해를 넘긴 올 1월, 싸이더스의 정훈탁 이사를 통해 차태현이 합류하면서 기획팀은 마케팅에 최고의 원군을 얻었다. 최근 충무로의 ‘비밀 프로젝트’식 홍보전략과는 정반대로, <엽기적인 그녀>의 마케팅 원칙은 ‘최대 노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스토리를 숨겨봤자고, 두 배우를 통해 영화의 인지도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게 최선의 마케팅이었다. 7월 초 10, 20대를 상대로 실시한 관객조사에서 <슈렉>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인지도를 기록하고, 개봉 1주 전 예매시장을 싹쓸이한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미션2 가슴 뽀사지는 문장을 찾아라 카피와의 전쟁

‘엽기’는 제목으로 충분했다. 마케팅 컨셉을 ‘엽기’로 밀어붙인다면 여성 캐릭터는 도드라질지 모르지만, 가장 두려운 경쟁작이자 미리 극장가를 선점할 <슈렉>과 차별점이 없어보일지 모른다는 게 기획팀의 생각이었다. 애니메이션이지만 올 여름 관객이 가장 보고 싶어하는 외화로 꼽히는 만큼 <슈렉>이 두려운 것은 사실. ‘엽기’보다는 ‘유쾌’로 마케팅 포인트를 옮긴 데는 그런 판단도 작용했다. 일단 방향을 정하자 최수영 실장이 두 배우의 시너지를 강조한 ‘전지현, 차태현의 절라유쾌 사랑이야기’라는 메인 슬로건을 뽑아냈다. 원작처럼 톡톡 튀는 통신용어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는 건 기본 양념. 그러나 카피만큼 유행을 타는 것도 없었다. 슬로건의 ‘절라유쾌’ 역시 극장에 깔 선재물 시한이 허락할 때까지는 유력 후보였을 뿐이다. <친구>가 흥행가도를 무한질주하자 심지어 회의 때 ‘엽기걸, 시다바리를 사랑하다’란 안이 나오기도 했고, 어떻게든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하나라도 더 짜내고자 신철 사장은 후배들을 ‘쪼아댔다’. 당시 기획팀은 그렇게, ‘대선을 앞둔 선거운동원들’의 심정이었다. 슬로건을 정한 뒤에도, 보이지 않는 훼방꾼 때문에 노심초사하길 며칠. 심의를 넣은 뒤 저속하다는 지적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을까 마음 졸이던 이들에게 우연히 발견한 광고 하나가 먼저 맘을 놓게 해줬다. 이미 개봉한 <팬티속의 개미>가 ‘졸라리’라는 대담한 용어를 인쇄광고물에 찍어넣은 것을 본 것이다. 카피를 뽑는 데는 사장이라고 열외가 아니었다. “생각만 나면 불러댔는데, 돌아오는 건 대부분 싸늘한 경멸의 시선뿐이더라고.” 신철 사장도 ‘지난 실력이 녹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자 고심하다가 한 인터넷 사이트의 인사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방문해주셔서 온몸이 뽀사지도록 감사합니다’라니. 어찌나 끌리던지, 그 길로 직접 운영자를 만나 그 표현을 사용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고, 그렇게 ‘온몸이 뽀사지도록 웃기는 영화’란 카피가 나왔다. 영화가 나온 직후 ‘절라유쾌 사랑이야기’를 ‘절라유쾌 가슴뭉클 사랑이야기’로 바꾼 건, ‘후반부의 복고풍 멜로’를 성공적으로 포장하기 위해 기획팀의 신범수씨의 아이디어였다.

미션3 포털사이트와 연대하라 ‘값싸고 입심좋은’ 홍보기지 확보

“우린 전국 300만명은 가야 한다”고 못박아놓고 마련된 마케팅 예산은 고작 5억원. 최수영 기획실장은 일단 기가 질렸다. 요즘 충무로의 평균 마케팅 비용이 7억원을 웃돌고, 직배사의 여름 블록버스터들이 10억원가량의 뭉칫돈으로 각 매체에 융단폭격을 가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없는 돈을 뚝딱 만들어내라고 징징거릴 수는 없었다. 사실 문제는 간단했다. <슈렉>이 힘빠진 틈을 타 개봉 첫주 박스오피스의 승자가 되는 것. 그것만 해낸다면, 마케팅 비용은 따라붙고, 설령 뒤쫓아온 <A.I.>에 1위를 내준다 해도, 다시 원기회복할 수 있는 ‘총알’을 마련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개봉주를 목표로 잡은 이상, 최 실장은 ‘값싸고 입심좋은’ 인터넷을 공략할 방법을 고민해야 했다. 메인 타깃은 포털사이트. 어차피 개별 영화사이트들을 들락거리는 이들이 <엽기적인 그녀>를 모를 리 없었다. 관객층이 20대 초반이라는 한계점을 넘기 위해서라도 포털사이트를 공략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온라인 광고쪽에 책정된 비용은 애초 한푼도 없었다. 특히 외화들이 1주일에 500만원씩, 편당 1억원 이상을 쏟아붓는 상황에서 업체 관계자들의 콧대는 높았다. 콘텐츠가 아쉬워서 손쉽게 협찬을 할지 모른다는 애초 기대가 무너지던 순간이었다. 엔터테인먼트 전문 사이트로 거듭나려던 라이코스 관계자와 만난 것은 그 무렵. ‘절실함이 빚어낸 우연’이었다. 900만 회원을 거느린 라이코스의 협찬을 받아, 일단 모든 해당 사이트를 ‘엽기’로 도배했다. 메인창뿐 아니라 부속창들에도 각종 엽기 관련 이벤트 소식들을 매달았다. 그리고선 시사회를 무기로, 나머지 총 24개 인터넷 사이트에 50개 이상의 부속 배너 및 이벤트 고지를 마련했다. “눈만 뜨면 엽기였다.” 물론 이로 인해 기획실 업무는 배로 늘었다. 사이트별 네티즌들의 반응을 일일이 챙기는 것은 기본이고, 매주 창 사이즈에 맞게 볼거리를 직접 업데이트해야 하는 수고까지 감내했다. 고된 행군으로 눈은 시뻘게졌지만, 10대와 20대를 효과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미션4 지하철을 점령하라 아주 특별한 제작발표회

2001년 3월5일 2시, 전지현과 차태현이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원작의 판권 계약을 맺은 때부터 치자면 물밑작업만 1년여. 그새 신범수씨와 김정연씨가 입사해 5명으로 늘어난 기획팀은, 바야흐로 <엽기적인 그녀>를 수면 위로 띄울 제작발표회를 앞두고 또다시 머리를 싸맸다. 그럴싸한 호텔의 홀에서 하게 마련인 제작발표회말고, 시작부터 확실히 ‘엽기적인’ 방법이 뭐 없을까. 애초 우아함과는 거리가 먼 캐릭터들을 알리는 무대로, 아무래도 지하철이 제격이란 의견이 나왔다. 그들이 처음 만나는 장소이자 크랭크인의 무대기도 했으니까. “아예 장례식은 어때? 엽기적으로.” “에이, 그건 아니다. 결혼식이라면 몰라도.” 지하철에서 뭘 보여줘야 할지를 고민하던 기획팀의 막내 김정연씨와 신범수씨는 두 배우를 화사하게 소개할 결혼식 이벤트를 제안했다. 하지만 이내 “결혼식은 해피엔딩을 암시하는데, 그걸 알려주면 재미없다”는 신철 사장의 반대에 좌절했다. 폐기 직전의 아이디어가 살아난 건, 모 일간지에 지하철 이색 제작발표회 기사가 덜컥 실리면서 다시 내고를 거친 뒤. 가장 큰 난관은 장소 섭외였다. 도대체 지하철에서 제작발표회를 하는 게 가능하긴 할까. 도시철도공사와 협의 끝에 나온 후보지는 고속터미널역과 이수역. 7호선이 생기면서 환승 공간에 제한구역 같은 공간이 있는 고속터미널역으로 낙점할 무렵이었다. 갑자기 도시철도공사에서 녹사평역을 제안했다. 돈을 많이 들여 새로 지은 녹사평역을 일반인들의 결혼식장으로 쓸 수 있도록 하는 계획을 갖고 있던 터였기 때문. 첩첩산중이라, 다음은 지하철역에서 제작발표회를 하기 어렵겠다는 공사의 폭탄선언이 이어졌다. 결국 최수영 실장과 신범수씨가 담당자를 출근 전부터 기다려 매달린 결과 행사 이틀 전 허가가 떨어졌다. 애초 생각처럼 두 배우에게 턱시도와 웨딩드레스를 입힌 화사한 그림은 아니었지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등장한 두 배우와 라이코스 회원을 대상으로 6일간 공모한 하객 수십명, 온라인 중계를 맡은 인터넷 방송국 크레지오와 각종 언론매체 및 관계자들이 참여한 결혼식은 성황을 이뤘다. 어수선한 분위기를 다 수습할 순 없었대도, 독특하다는 인상으로 ‘도대체 어떤 영화기에’ 하는 호기심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물론 당일 신도림역에서의 크랭크인과 함께, 4개월간 죽어라 지하철역 안팎을 오가는 고생문의 시작에 불과했지만.

미션5 홈페이지를 게임장으로 ‘절라 잼있는’ 애피타이저

현재 게시판에 오른 글만 3만건 이상인 엽기걸닷컴(yeopgigirl.com). 태생부터 유난히 인터넷과 긴밀한 영화인 만큼, 최수영 실장은 처음부터 홈페이지에 욕심을 냈다. 보통 홈페이지처럼 돈을 적게 들이거나 협찬으로 만들 게 아니라 확실히 보여주자 생각에 1천만원 상당의 예산도 미리 확보했을 정도. 하지만 전문 디자인 회사에서 뽑은 견적은 수천만원대. 결국 ‘실력있는 개인’을 찾아 직접 인터넷 서핑에 나선 기획팀은 설은아씨를 발견했다. 플래시에 능한 웹아티스트로 알려진 설은아씨는, 텍스트 위주인 기존 홈페이지와 달리 역동적인 이미지로 끌고 가려는 기획팀의 구상에 더없이 적역이었다. 플래시 에피소드, '엽기적'이란 글자를 찾아 누르거나 공으로 벽돌을 깨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줄거리 소개 등 '엽기걸닷컴'을 게임장처럼 꾸미는 것은 난제가 아니었으니까. '인터랙티브'한 홈페이지는 방문자들에게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오픈한 지 이틀 만인 6월8일부터 이미 하루 150건 이상, 개봉 직후부터는 무려 800건이 넘는 글이 게시판에 올라왔다. 초기에는 “넘 예뻐요” 하는 찬사와 두 스타에 대한 팬들의 지지 및 문의가 압도적이더니, 급기야는 “우리가 홍보요원으로 나서자”는 ‘자발적 홍보’가 시작됐다. 영화와 배우들의 매체 노출을 제외하면, 개봉 뒤 가장 중요한 마케팅은 홈페이지의 존재 자체일 것이다. 6번 봤다, 심지어 23번이나 봤다는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명장면 뽑기, 타임캡슐 나무를 비롯한 촬영장소 탐방, 견우의 ‘십대 수칙’을 비롯한 대사 외우기, O.S.T 등 갖가지 감상과 자발적인 이벤트, 문답을 나누는 게시판은 영화에 대한 관심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며 홍보의 장으로 제몫을 다했다.

글 황혜림 기자 blauex@hani.co.kr·이영진 기자 anti@hani.co.kr·사진 오계옥 기자 kla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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