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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학, 이제 갈 필요 없다!
2001-09-07

시네마테크를 만드는 사람들1- 서울시네마테크

‘서울에 시네마테크를 허하라’는 기치를 높이 세우고 지난해 출범한 서울시네마테크는 유령과도 같은 존재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시네마테크’라 하면 다만 몇십명이라도 엉덩이를 붙이고 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을 지칭하는 것일 텐데, 114에 문의하거나 여기저기 수소문해도 그 소재는 묘연할 뿐이다. 그럼에도 이 유령의 이름은 ‘서울시네마테크, 무슨무슨 영화제 개최’라는 언론의 기사를 통해 심심치 않게 등장해왔다. 실제로 이곳은 지난해 11월 오슨 웰스 회고전을 시작으로, 올해 1월 말 오즈 야스지로 회고전, 3월엔 필름누아르 걸작선, 5월에는 알랭 레네 회고전, 7월엔 마뇰 드 올리베이라 걸작선 및 포르투갈영화 특집을 개최했으며, 최근에도 고전걸작영화를 묶어 상영하고 작품들의 영화사적 의의를 조명하는 영화사 강의라는 이름의 행사를 끝마쳤다.

이같은 왕성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네마테크가 유령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시네마테크 없는 시네마테크’라는 기형적인 구조 때문이다. 사실 이곳이 애초부터 이런 모습으로 출발한 것은 아니었다. 오슨 웰스 회고전을 개최하던 지난해만 해도 서울시네마테크는 서울 정동 스타식스의 한 상영관을 근거지로 삼기로 했었다. 하지만 상업상영관에 시네마테크가 더부살이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였다. 주요 영화의 배급일정을 놓칠 수 없다는 극장의 입장과 일정한 시기마다 행사를 개최해야 하는 시네마테크의 입장은 첨예하게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두 번째 행사부터는 아트선재센터를 임대하는 고육책을 쓰고 있는 형편이다.

“독자적 상영관 확보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서울시네마테크의 대표격인 임재철씨는 이야기한다. 극장 확보는 1년 가까운 기간 동안의 활동을 통해 임씨가 얻은 일종의 화두이자 결론이다. “극장을 갖고 있으면 이곳을 출입하는 시네필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유대관계가 만들어질 것이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고다르와 트뤼포 같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극장 확보는 서울시네마테크가 안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대관료를 절약할 수 있고, 영화 관련 강의 프로그램을 개설하거나 예술영화 시사회를 위해 임대해줄 수도 있어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 아닌게아니라 현재 서울시네마테크가 맞닥뜨린 가장 커다란 문제는 행사를 열 때마다 깊어지는 적자의 폭이다. 창립 초기 후원회원과 일반회원들의 회비 1300여만원은 이미 바닥을 보인 지 오래고, 임재철씨의 사재 2천여만원까지 들어간 상태다. 그도 그럴 것이 한번 행사를 열려면, 대관료와 영사기사비 600여만원, 번역과 자막작업에 200만∼300만원, 필름 운송료 700만∼800만원, 상영료 300만∼400만원 정도가 드니, 입장료 수입과 카탈로그 광고비 정도로 이 비용을 감당하기란 벅찬 일일 수밖에 없다. 극장은 이같은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한 ‘혁명적’ 대안인 셈이다.

임씨가 고민하고 있는 또 하나의 문제는 판권이다. “만약 일본에서 오슨 웰스 회고전을 한다면, 비용도 싸게 들고 수고도 덜하게 될 것이다. 일본업체들이 웰스의 주요 작품 판권을 이미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시네마테크가 영화의 판권을 갖게 되면, 수시로 상영회를 열 수도 있고 지방에서도 영화제를 개최할 수 있게 된다. 임씨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영화수입사를 차리거나 뜻이 맞는 몇몇 영화사와 협력관계를 맺는 방법을 찾고 있다.

임씨를 비롯해 김성욱, 홍성남씨 등 영화평론가 세 명과 한나래 출판사가 주축을 이루는 서울시네마테크가 이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이뤄낸 성과는 대단하다. 1년도 안되는 시간동안 여섯 차례의 행사를 통해 그동안 영화 전문서적에서만 볼 수 있었던 고전 작품들을 생생한 필름으로 선보인 것은 성실성이란 차원을 넘어서는 일이다. 서울시네마테크 사람들이 인건비 확보는 고사하고 빚을 져가면서까지 어렵사리 행사를 치르는 이유는 단순하다. “영화를 공부하기 위해 굳이 유학을 가지 않아도 되는 토대를 닦는 것”이라고 임재철씨는 말한다. "학교의 교육보다는 시네마테크에서 필름으로 고전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유학생이 가질 수 있는 진정한 메리트"라는 임씨의 생각은 스스로의 뉴욕 유학생활에서 얻은 결론이다. 흥행에 도움이 될 만한 일본영화나 현대 시네아스트의 작품보다 고전영화 위주로 행사를 개최한 것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한국 영화팬들은 제목과 감독이름으로 영화에 관한 지식을 쌓아왔다고 본다. 고전에 대한 풍부한 이해가 없다면 토대가 허약해질 수밖에 없다.” 상영권 확보는 까다롭지만, 영화사적 중요성 면에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안토니오니 같은 이탈리아감독 회고전을 주최하려는 이유도 이러한 한국영화계의 ‘토대 강화’와 연관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에 비해 서울시네마테크의 현실은 가난하다. 상영관 공간을 임대하고 130여개의 좌석과 영사기를 놓는 데 필요한 1억여원은 젊은 영화평론가들에겐 높기만 한 장벽이다. 수천억원의 자본을 거느리고 당당히 휘날리는 ‘대박’의 깃발과 초라하기 짝이 없는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깃발이 명확한 대비를 이루는 한국영화계의 현실은 서울시네마테크를 더더욱 유령처럼 보이게 한다.

문석 기자 ssoo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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