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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과 연민의 굿판, <사이에서>
이영진 2006-09-05

숙명에, 의지와 욕망을 빼앗긴 이들을 위한 동정과 연민의 굿판.

무당이 되려면 작두를 타야 한다. 날선 칼날 위에서 고통을 견뎌야 한다. 영험한 기운을 지닌 존재임을 증명하는 의식이다. 삶과 죽음, 어느 한쪽에도 뿌리내리지 못하는 외줄 운명을 받아들이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약속은 의지나 욕망에 따라 “거부하거나 선택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숙명이다. 그들은 평범한 일상을 원했다. 그러나 숙명은 그들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다른 길을 가도록 용인하지 않았다. 다큐멘터리 <사이에서>는 하늘이 내린 숙명의 지도를 어쩌지 못하고 받아든 무속인들에 관한 이야기다. “내 손으로 직접 삶을 일구어왔다고 생각하는” 감독의 인도에 따라 카메라는 “손에 신이 그려준 운명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만나러 떠난다.

28살의 황인희는 어느 날부터 기이한 경험들을 하게 된다. 남의 앞날을 내다보는 예지력을 보이기도 하고, 갑자기 상체가 마비되는 증상을 겪기도 한다. 그녀의 가족에겐 사고가 발생하고, 그녀가 운영하던 사업체가 망하는 불운까지 겹친다. ‘일종의 징조’라고 여긴 그녀는 엄마와 함께 대무(大巫) 이해경을 찾는다. 이해경은 뚜렷한 병인없이 아파하는 황인희를 받아들이지만, 황인희는 “신이 자신에게 찾아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식들의 반대로 30년 동안 무병(巫病)에 시달리면서도 무속의 세계에 발딛지 못했던 손영희는 50대가 되어서야 이해경으로부터 신내림을 받는다. 한쪽 눈을 실명하게 된 뒤에 천왕신을 보게 됐다는 8살 꼬마 김동빈 또한 이해경을 찾아온다.

<사이에서>를 지배하는 정서는 동정과 연민이다. “난 정말 안 하고 싶었어요. 내림굿할 때도 무당 안한다고 울부짖었으니까.” 무당은 “삶의 조언자”라고 말하는 이해경은 자신에게 찾아든 똑같은 처지의 세 사람을 어루만진다. 급작스럽게 찾아든 신을 원망하며 두려움에 떠는 황인희를 다독이고, 가난과 남편의 폭력에 수차례 자살기도도 했다는 손영희의 토로에 응대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미래에 불안해하는 김동빈의 한쪽 눈망울에 시선을 맞춘다. 그런 이해경의 동정과 연민은 실은 그녀 자신의 가엾은 생을 위무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이에서>는 독특한 극적 구성을 갖고 있다. 직접적인 언급 대신 가슴에 신이 들어선 세 사람과의 인연을 통해 주인공인 이해경의 신산한 생을 조금씩 들추어낸다. 그러면서 관객의 동정과 연민을 구한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숙명을 받아들여야 했던 무당과 현실과 비현실의 세계가 중첩된 무속을 다루긴 하지만, <사이에서>는 <영매-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2003)와는 다른 길을 간다. <영매…>가 사라져가는 민속의 광맥을 쫓아나선 인류학적 탐사에 힘쓴다면, <사이에서>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인간들의 외로움을 캐보는 심리학적 시추다. 이를테면 <사이에서>는 무속 제의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지 않는다. 희미한 전통의 의미에 대해서도 묻지 않는다. 대신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운명의 손을 가진 인간들의 처절한 육성을 조금이라도 더 들으려고 애쓴다. 전반부의 자극적인 굿판이 이질감을 느끼게 하지만 인물들에 대한 동정과 연민이 증폭될수록 거리감은 줄어든다.

무속, 그 자체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하지 않지만 <사이에서>는 동양과 서양의 믿음 체계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배타적인 일자(一者)의 유일한 목소리만을 진실로 인정하고 부정된 나머지는 어떻게든 쫓아내려는 서양의 의식과 달리 <사이에서>는 자신 안에 들어선 타자의 다성(多聲)을 거부하지 않고 어떻게든 받아들여 제 안에 앉히려는 동양 인간들의 몸부림을 클로즈업한다. 인물과 인물, 인물과 관객 사이에 동정과 연민이 가능한 것도 이러한 차이 때문 아닐까.

<사이에서>는 Q채널에서 7년 동안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던 이창재 감독의 작품으로,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돼 주목을 받았다. 해외배급용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달라는 의뢰를 받고 이창재 감독은 팔도 굿판을 돌며 60여명의 무당을 만났고, 결국 “큰 사람의 이야기를 깊게 하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가짜가 자리잡을 수 없는” 황해도 굿을 택한 뒤 만난 대무 이해경은 촬영 동안 적잖이 감독을 괴롭힌 동료였다고 한다. 촬영 전 한달 동안은 카메라 없이 자신을 그저 지켜보기만 하라고 명했고, 굿이 진행되는 과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찍을 때는 버럭 화를 내기도 했으며, 편집 때는 굿을 그저 소재로만 다룰 경우 출연 분량을 모두 회수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감독의 마지막 말처럼 그들의 숙명은 “신의 이상한 의도일까”. 후반부에 카메라는 황인희에게 내림굿을 내린 뒤에 쓰러져 자는 이해경과 내림굿을 받은 뒤에도 자신의 신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황인희를 한데 잡는다. 두 사람 모두 “신도 싫다, 인간도 싫다. 한데 어쩔 것이냐”며 신명에게 모든 것을 내맡기는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한탄의 마음만은 똑같을 것이다. 신의 이상한 의도를 몸으로 겪어야 하는 그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선택과 거부의 권한을 빼앗긴 그들에게 우리의 의지와 욕망은 또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우리와 그들, 사이에는 무엇이 남아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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