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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조르주 클루조의 스릴러 <디아볼릭>
2001-09-13

살인, 그녀들의 사랑

Les Diaboliques 1955년, 감독 앙리 조르주 클루조 출연 시몬 시뇨레 <EBS> 9월15일(토) 밤 10시(사진 이메일 포워딩)

흥미로운 일화 한 가지. 한 남자가 히치콕 감독에게 어느날 짧은 편지를 썼다고 한다. “선생님, 제 딸아이가 <디아볼릭>이라는 영화를 보더니 욕조에 몸을 담그길 두려워합니다. 게다가 감독님의 <싸이코>까지 보고 나선 아예 샤워도 무서워하고요. 어떻게 하죠?” 히치콕의 답변이 걸작이다. “음, 딸아이를 세탁소로 보내면 되겠군요.” 이 일화는 앙리 조르주 클루조 감독의 <디아볼릭>이 스릴러물의 고전이 될 자격을 충분히 갖췄음을 암시한다. 생전의 히치콕 감독이 내심 클루조 감독을 라이벌로 여겼다는 사실 역시 유명한 일화. 클루조 감독은 프랑스 스릴러물의 거장으로 불리긴 하지만 그가 장르영화만 유별나게 고집했던 것은 아니다. 앙드레 바쟁으로부터 격찬을 끌어낸 바 있으며 화가 피카소의 작업과정을 그대로 옮긴 다큐멘터리 <피카소의 비밀>(1956) 등, 그의 작품세계는 폭넓다. 클루조 감독의 <디아볼릭>은 공개 당시 그리 평가가 좋았던 편은 아니다. 프랑스 비평가들은 이 영화에 대해 평이한 장르물이자 단순한 스튜디오 생산물 정도로 폄하하기도 했다. 오히려 <디아볼릭>은 미국에서 반응이 좋았으며 클루조 감독의 이름을 할리우드까지 알린 대중적인 성공작으로 기록된 영화다.

영화는 두명의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다. 한때 수녀였던 여린 성격의 크리스티나는 남편의 구박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작은 학교의 교장 노릇을 하는 미셸은 아내 크리스티나에게 폭행과 욕설을 일삼는다. 그런데 미셸의 정부 노릇을 하면서 그를 크리스티나와 ‘공유’하던 니콜이 한 가지 제안을 한다. 그를 살해하자고 유혹하는 것. 두 여성은 미셸을 욕조에서 익사시킨 뒤 시체를 학교 수영장에 던져버린다. 시간이 흐른 뒤 그의 시체가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자, 남편의 시체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 크리스티나는 불안감에 몸을 떤다.

<디아볼릭>은 매우 간결하면서 명료한 스릴러물이다. 사건의 진상은 명백하다. 범죄를 공모한 여인들은 아무런 자책감도 느끼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지만 이후 형언할 수 없는 공포를 마주하게 된다. 과연 시체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죽은 자가 무덤에서 살아나기라도 한 것일까? 카메라는 특정 인물의 시점을 빌리지 않고, 영화 내내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면서 인물들에게서 일정한 거리를 둔다. 클루조 감독은 인물 ‘시점’을 경유하면서 영화적 서스펜스를 창조하곤 했던 히치콕 감독과는 다른 연출방식을 선호했는데 같은 이유로 영화 결말의 반전은 좀더 충격적이다. 어두운 밤, 욕조에서 시체가 서서히 상체를 일으키는 장면은 영화가 흑백임에도 상당히 오싹하게 느껴진다. 참고로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된, 그리고 원작의 묘미를 어떤 부분은 고스란히 인용했으며 또한 훼손하기도 했던 제레미아 체칙 감독의 <디아볼릭>(1996)과는 다소 상이한 결말이기도 하다. 혹자는 클루조 감독의 영화에서 프랑스 자연주의 소설이나 유럽 공포물의 근원인 그랑기뇰 연극의 영향을 발견하기도 한다. 주제와 표현방식에 비관적인 태도와 과격한 서스펜스를 도입했다는 얘기다. 여기에 한 가지 첨언하자면, <디아볼릭>은 클루조 감독이 장편영화를 통해 일관되게 관심을 표명한 주제를 노출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도덕적으로 단죄할 만한, 다시 말해서 깊은 죄의식을 지닌 인물이 거대한 공포를 몸에 휘감게 되는 과정을 영화로 옮겨놓은 것이다. 그 끝엔 처참한 파멸이 기다리고 있을 따름이다. 어찌보면 무척 염세적인 결론이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sozinh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