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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폴라, 새로운 두뇌를 만나다
2001-09-13

코폴라의 차기작 <메가로폴리스>와 스탭 마우로 보렐리

<지옥의 묵시록>이 한창 제작단계에 있을 때 이야기다. 영화의 제작에 몇년을 쏟아붓고 있는 아버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를 보고 어린 딸 소피아 코폴라는 엄마에게 물었다. “아빠의 직업은 뭐야?” 나중에 그 남편의 지루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제작과정을 다큐멘터리 <회상, 지옥의 묵시록>으로 남긴 아내 엘레노어 코폴라의 대답은 이랬다. “아빠는 영화 <지옥의 묵시록>을 만드는 사람이야.” 물론 아빠가 평생 <지옥의 묵시록> 한 작품을 만드는 걸 직업으로 삼았을 리 없다는 것은 그때의 소피아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개봉된 지 22년이 지나 새롭게 만들어진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가 개봉되는 것을 보고 있으면, 그때 엘레노어 코폴라의 말이 그리 틀린 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신이 가진 모든 영화적 재능을 <지옥의 묵시록>에서 소진해버렸기 때문에 그뒤 이렇다 할 걸작들을 선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코폴라의 입장에서, <…리덕스>는 어떠한 전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 지난해 개봉된 SF <슈퍼노바>를 자신의 필모그래피의 새로운 정점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제작사와의 갈등 끝에 결국 감독 자리를 중도하차했던 쓰라린 경험을 가진 상태라서 더더욱 그렇다. 문제는 아무리 좋은 평가를 받는 ‘전기’가 된다 하더라도 <…리덕스>는 ‘새로운 정점’이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 그 점은 누구보다 코폴라가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리덕스>를 들고 칸에 나타났을 때도, 자신의 차기작에 대한 원대한 계획을 설명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또 한편의 진정한 코폴라의 영화를 만들 재능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리덕스>를 통해 확인해보라는 식이었던 것이다.

칸의 기자회견장에서 ‘<지옥의 묵시록>이나 <대부> 시리즈에 비견될 혹은 능가할 규모의 영화’로 코폴라가 소개한 영화의 제목은 <메가로폴리스>. 제목 자체가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를 떠올리는 이 프로젝트는 2002년 상반기 촬영 개시를 목표로 열심히 초반 작업을 진행중이다. <버라이어티>가 ‘전형적인 코폴라 스타일과 새로운 아이디어로 무장한 대작영화가 될 것’이라고 소개한 <메가로폴리스>는 현대의 뉴욕을 무대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하고 사는 미래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한 건축가의 이야기. 제목이 <메트로폴리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처럼, 이러한 설정도 <메트로폴리스>와 유사한 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캐스팅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확정된 것이 없으나 소식통들에 의하면 워런 비티, 캐빈 스페이시 등이 시나리오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코폴라는 러셀 크로, 리암 니슨, 조지 클루니도 캐스팅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메가로폴리스> 프로젝트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 한 가지는 바로 할리우드에서 한창 잘 나가고 있는 컨셉 아티스트이자 스토리보드 작가인 마우로 보렐리의 참여다. 우리에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지만, 마우로 보렐리는 테리 길리엄의 <바론의 대모험>을 통해 할리우드에서 일하게 된 이탈리아 출신의 아티스트다. 그뒤 바로 코폴라 감독과 인연을 맺어 <대부3>의 스토리보드를 그렸고, 1993년에는 자신이 직접 찍은 단편 로 칸에서 단편부문 최고작품상을 거머쥐기도 한 인물이다. 그뒤로는 드림웍스와 엑티비전 등에서 게임 제작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영화의 사전 제작과정에서 컨셉 아티스트 또는 스토리보드 작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중이다.

무엇보다 그의 <메가로폴리스> 참여가 눈길을 끄는 이유는 그의 최근작들이 대부분 시각적으로 훌륭한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코폴라와 작업한 <드라큘라>와 <슈퍼노바>도 그렇지만, <슬리피 할로우>의 나무 묘지, <천국보다 아름다운>의 지옥, <바이센테니얼 맨>의 미래도시 등에 대한 기본적인 컨셉이 모두 그의 손에서 나왔던 것이다. 이 밖에 그가 참여한 영화로는 <고질라> <베트맨 포에버> <사이코> <헌팅> <리틀 부다> <러브 어페어>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들 수 있다. 코폴라가 “아주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영화를 성공적으로 만드는 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영화 자체에 대한 영감을 불어넣는 데도 훌륭하다”고 칭찬하며 <메가로폴리스>의 작업을 맡기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여하튼 <…리덕스>를 통해 영화적 재능이 아직 녹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데 성공한 코폴라의 차기작 <메가로폴리스>는 기대가 되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거장의 숨결이 녹아 있는 SF영화가 한편쯤은 나올 때도 되었다는 생각을 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을 떠난 큐브릭을 대신해 스필버그가 완성하면서 반쪽짜리 영화가 되어버린 와는 달리, <메가로폴리스>가 온전히 코폴라 스타일의 영화로 만들어지길 바라는 것은 비단 몇몇 팬들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 지난 22년 동안 끊임없이 만들어온 <지옥의 묵시록>을 <…리덕스>라는 이름으로 이제야 완성시켰다면, 이젠 정말 새로운 정점을 만들 차례가 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chulmin@hipop.com

마우로 보렐리 공식 홈페이지 http://www.mauroborrelli.com/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 공식 홈페이지 http://www.miramax.com/apocalypse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