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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탭의 전문화, 아직은 논쟁중
김수경 2006-10-24

10월10일 열린 ‘영화제작 스탭의 합리적 구성 방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 핵심 쟁점들

직무분석이 드디어 현장 영화인들과 만났다. 지난 10월10일 대학로 아르코 미술관 세미나실에서 ‘영화제작 스탭의 합리적 구성 방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꼬박 반나절 동안 진행된 이 자리에서는 직무분석에 대한 현장의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안정숙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현재 단체협상을 진행 중인 한국영화제작가협회 교섭단 차승재 대표와 최진욱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이 나란히 축사를 전하며 공청회는 시작됐다. 연구원들은 발제를 맡고, 분야별로 나눠진 주제별 토론은 모두 현장 영화인들이 담당했다. 두 차례 기획리포트로 연재된 직무분석의 마지막 편이 될 이 기사는 공청회의 핵심 쟁점들을 다룬다. 전문 조감독 도입을 중심으로 한 연출·제작의 전문화, B카메라팀의 적극적 활용을 통한 촬영·조명의 탄력적인 인적 구성과 촬영기간 단축, 그리고 현장편집을 둘러싼 논의가 그것이다.

전문 조감독 도입, 얼마나 현실성 있는가?

공청회 사회를 맡은 영화평론가 김영진은 “대부분 한국 사람들은 수직적 구조에 강한 욕망을 보인다. 과연 촬영현장에서 백발이 성성한 경험 많은 조감독을 볼 수 있을지 궁금하다”라고 했다. 직무분석이 목표로 삼은 수평적인 인적 구성을 위해서는 감독과 헤드급 팀장을 제외한 스탭들이 자신의 직무를 ‘승진을 위한 과정’이 아닌 ‘목적’ 혹은 ‘생업’으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전문 조감독을 도입하고 제작팀장을 기획재정, 현장제작, 로케이션으로 특화시키는 제안도 그러한 취지에서 비롯됐다. 연출부와 제작부 업무가 중복되는 국내 영화현장의 현실을 감안하면 전문 조감독의 도입과 제작부 개선안은 맞물릴 수밖에 없다. 연출부가 로케이션에 참여하고, 제작부장이 현장진행에 엮이는 현실을 바라보며 전문 조감독의 도입 여부는 오랫동안 논의거리였다. 감독보다 프로덕션 경험이 많은 조감독은 일본, 미국, 중국에서는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영화를 사실상 지배하는 감독을 꿈꾸는 연출부 중에 과연 조감독을 직업으로 삼고 만족할 사람이 있겠냐”고 현장 영화인들은 반문한다. 현재로서는 없다. 하지만 그것은 상승 욕구보다는 열악한 처우 때문이다.

김경형 감독은 “전문 조감독이 감독 수준의 연출적 전문성을 의미한다면 감독을 하고, 현장관리나 프로덕션의 전문성을 말한다면 프로듀서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전문 조감독의 실체는 무엇인가?”라고 발제자들에게 되물었다. 이현승 감독은 “회차가 70∼80회에 육박한다. 기간제 계약이 아니라 작품당 계약으로 인해 발생하는 상황이다. 단체협상이 마무리되면 시간당 급여를 주고 정해진 시간만 작업해야 한다. 오늘 못 찍으면 예전처럼 내일 찍을 수 없다. 이것을 현재 수직적 연출, 제작부 구조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감독이 되지 못하면 영화판을 떠나야 하는 구조에서도 현장진행을 잘하는 친구들이 많다. 전문 조감독이라는 직업 자체에 만족하고 자기 능력을 갈고닦기를 원하는 사람은 현재도 분명히 있다”라고 답했다. 토론자로 나선 노비스 노종윤 대표는 “지금은 보통 네편 정도 작업하면 PD가 된다. 더 빠른 경우도 흔하다. 개인적 경험으로는 예닐곱편을 해야 원활한 업무수행이 가능한데 산업적 성장으로 인해 프로듀서들의 전문성이 축적되지 않고 있다. 전문 조감독보다는 라인프로듀서의 전문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단체협상을 진행 중인 영화노조와 제협의 합의가 곧 가시화되면 전문 조감독이나 제작팀 분화의 필요성에 직면할 것이다. 전문 조감독이든 전문 라인프로듀서든 한쪽이 먼저 개선안을 수용한다면 다른 파트도 동일하게 전문화의 길을 따르게 될 가능성이 크다.

B카메라팀 활용 필요, 기간제 임금지급 선행돼야

연구는 전문 스탭의 도입과 함께 인턴팀과 그립팀을 통한 탄력적 인력 구성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기존 수직적 구조에서 일하던 막내급 스탭들은 더 불안정한 고용 상태로 내몰리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방청석과 토론자들 사이에서 제기됐다. 단체협상에서 최저임금제, 노동시간 산정이 의무조항으로 타결되리라는 예상을 곁들이면 프로덕션 상황도 만만치 않다. 촬영·조명 현장인력들은 B카메라팀의 적극적 활용으로 활용해 고용불안도 해소하고, 제작시스템의 합리화도 꾀할 수 있다고 예상한다. 박현철 촬영감독은 “미국은 주연배우 등장시 대부분 B카메라를 동원한다. 준비만 완벽하다면 서너달 동안 촬영할 기간을 한두달 안에 해결할 수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B카메라팀을 운용하는 일이 효율적 촬영의 핵심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작비가 높아지고, 노동환경이 엄격해지면 촬영회차를 줄이는 것이 최상의 대안이다. 제작 파트도 이에 동의한다. 김의석 제작실장은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촬영장비나 운용에 대한 정확한 계획이 산출되고 전문화된 B카메라팀의 활용도가 높아진다면 제작 전반에 효율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B카메라팀의 운용은 촬영팀의 인력 축소에 대한 제안과도 연관된다. 연구진은 수직적 구조를 포커스풀러, 클래퍼, 로더 3인 체제로 전문화하고 그립과 인턴을 투입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김영철 촬영감독은 “현실적으로 그 인원으로는 많아진 카메라와 렌즈 박스를 정리하기도 부족하다. 현장에서 시간을 소비하는 것은 촬영뿐 아니라 세팅과 정리라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단순히 인원 축소라는 방향보다는 탄력적 운용으로 인적 구성에 유연성을 부여하는 일이 해결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유연한 인적 구성을 위해서는 기간제 계약이 필수다. 박현철 촬영감독은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좋은 퀄리티로 일하는 것이 결국 목표다. 기간제로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장편집의 정체성이 애매하다

촬영기간 단축과 관련된 주된 화두 중 하나는 현장편집이다. 요즘 현장에서 현장편집은 양날의 검이다. 현장경험이 부족한 감독과 스탭들의 안전판인 현장편집은 반대로 촬영시간을 지연하고 회차를 늘리는 주범으로 지목받는 경우도 곧잘 생긴다. 곽경택 감독의 <친구>를 통해 처음 국내에 도입된 현장편집은 현재는 전체 촬영장의 80% 이상에서 사용 중이다. 토론자 조원희 현장편집기사는 “신인감독이 연출하는 작품이 많은 제작 상황, 스탭들의 전문성 부족이 낳은 특이한 직종”이라고 표현했다. 연구는 현장편집을 편집팀 영역으로 포함할 것을 제안했으나 현장편집 종사자와 편집감독들은 업무 특성이 다르다고 말한다. 조원희 기사가 “프로덕션 기간에만 참여하는 현장편집은 일종의 감독 버전 편집본을 만든다. 물론 최종편집을 거치면 결과물도 남지 않기 때문에 책임소재나 퀄리티의 여부를 판별하기도 애매하다”라고 밝혔다. 방청석의 최재근 편집감독은 “감독 버전의 편집을 한다지만 현장편집과 후반편집 사이의 퀄리티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 업무 영역이 다르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도 사실 감독과 밀접한 의사소통을 하는 역할 탓에 현장편집은 편집자 지망생과 감독 지망생의 중간쯤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

결국 “평균 3년을 버티다가 충무로를 떠난다”는 대부분의 영화인력을 안정화하려면 투자사와 제작사의 ‘결단’이 필요하다. 종합토론에 참여한 김영철 촬영감독은 “헤드급이 되지 않더라도 현장에서 적절한 대접을 받으며 일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평균적인 예산의 영화에 2억원을 다섯명의 핵심적인 스탭에게 더 주는 일”을 제안했다. 그가 지적한 다섯명의 스탭은 라인프로듀서, 전문 조감독, 포커스풀러, 개퍼, 붐맨이다. 이 다섯 스탭은 현재 충무로에서 유능한 인력을 구하기 힘들다는 위치와 정확히 일치한다. 실제로 직무분석을 추진한 실무추진단도 비슷한 방식의 시범사업을 고민한 바 있다. 김영철 촬영감독은 “스탭의 전문성과 처우개선은 닭과 달걀의 관계가 아니다. 처우가 선결되면 헤드급 스탭이 아니라 그 직무의 전문가가 되려는 사람은 분명 나타난다”고 단언했다. 전문 인력이 땅에서 솟아날 리가 없다면, 목표를 만들어주고 기존 스탭을 유도하는 것이 현실적인 해결책일 것이다.

인턴제와 그립제 시행하려면?

각종 인증제도, 고용상의 보완 필요

신설이 제안된 인턴제와 그립제는 역시 공청회에서 논란이 됐다. 김의석 실장은 <사생결단>을 통해 경험했던 지방대 학생들의 인턴 고용 사례를 밝히며 “메이저 제작사에서 한달 정도 매뉴얼을 전달하고 교육을 가지며, 지속적인 산학협동의 모델을 체계화할 것”을 제안했다. 김민오 미술감독은 “인턴제가 또 다른 악습을 이어가는 사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대승적으로 공공기관에서 보증하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점제로 운영하는 방식이 필요할 것”이라고 의견을 제시했다. 한편 김영철 촬영감독은 “현재 스탭들은 영리하기 때문에 인턴제가 악용되는 방향으로 고착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 교육이나 전공 선택 같은 순기능을 더 높이 사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승 감독은 “미국감독조합이 운영하는 DGA프로그램처럼 사후 철저한 경력인증과 엄정한 심사과정을 거치는 방법으로 인턴제를 현실화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대부분 현장인력들도 인턴제와 교육 제도의 연동을 관건으로 지적했다.

그립제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박현철 촬영감독은 “그립은 현실적으로 이미 현장에 존재하는데 정확히 명명되지 않았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방청석의 안형진 PD는 “고용에 대한 대안이 추가되어야 한다. 그립제도가 영화인력의 비정규직 확대로 이어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직무상으로는 키 그립제가 맞지만 고용상의 보완이 필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민오 미술감독은 “키 그립의 인솔 아래 그립팀을 구성하고 지시를 받는 구조보다는 미술, 조명 등 각 팀에 그립을 고용하는 형태가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업무 영역이 세분화될수록 그립제도에 대한 필요성과 구체적인 기준의 확보는 촬영현장의 시급한 현안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