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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향한 뜨거운 입맞춤
2001-09-19

<마지막 황제> <지옥의 묵시록>의 비토리오 스토라로(Vittorio Storaro)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좁은 영사실 한구석에서 영화를 보곤 했는데 소리가 차단된 영사실에서는 이미지만으로 스토리를 이해해야 했다. 얼마 뒤 아버지가 마당에 구형 영사기를 설치해주셨고 동네녀석들과 찰리 채플린 시리즈를 봤는데, 역시 스크린에 전달된 이미지만이 전부였다. 그때의 기억은 이후 내 삶에 강한 울림을 형성하였다. 영사기사였던 아버지는 내게 자신의 못다 이룬 꿈을 투영하였고, 빛은 어느덧 내 삶을 이끌어나가는 화두가 되었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워런 비티, 이 쟁쟁한 감독들의 작품을 떠올리면 우리는 먼저 강렬하고 거침없는 그들의 영상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리고 그 영상의 배후엔 빛으로 글을 쓰는 촬영감독 비토리오 스토라로의 이름이 어김없이 등장한다는 사실도. <지옥의 묵시록> <레즈> <마지막 황제>로 세 차례 아카데미상 수상, 98년 칸영화제 촬영부문 기술공헌상, 2001년 미국촬영가협회 평생공로상 수상. 1940년 로마에서 태어나, 1970년 영화계에 입문한 뒤 펼쳐진 스토라로의 이력은 아마도 한사람의 촬영감독이 이를 수 있는 성취와 영예의 최대치에 접근할 것이다.

사진사 노릇을 하던 18살의 스토라로는 자신이 이탈리아 영화촬영기술학교에 합격하지 못한다면 평생 작은 사진관에서 운전면허증 사진이나 찍으며 보내게 되리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았다. 입학기준치에는 모자란 나이였음에도 시험에 응시한 그는 자신의 영화촬영에 대한 의지를 피력함으로써 당당히 입학허가를 받는다. 이 시기에 접한 포크너, 카라바조, 모차르트, 렘브란트에 이르는 대가들은 정신적인 스승으로 자리잡아 촬영기술에 국한되지 않고 작품을 해석할 수 있는 안목을 형성해준다.

이후, 자신보다 어린 나이임에도 해박한 지식을 가진 베르톨루치와의 만남으로 그는 본격적인 촬영감독으로의 항로를 내닫는다. <거미의 계략>의 공동 작업 이후 이 둘의 결합은 <순응자>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마지막 황제> <리틀 부다>등의 수많은 걸작을 낳았으며, 평소 존경해오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와의 작업으로까지 이어진다. 기존 할리우드의 촬영방식과는 다른 스토라로의 독특한 색채는 당시 기획에 불과하던 <지옥의 묵시록>의 촬영을 제의 할 정도로 코폴라에게 강한 인상을 안겨주었다. 애초 코폴라는 고든 윌리스와 <대부>에서부터 함께 호흡을 맞춰온 터라, 스토라로는 일시에 그 제의를 거절한다. 한번 같이 작업을 한 감독과 스탭은 그에게 서로 설명이 필요 없는 하나의 언어를 가진 공동체라는 원칙이 확고했기 때문이다. 그는 윌리스가 자신보다는 그가 이 영화의 촬영에 적임자라 생각해서 제의했다는 입장을 재차 밝힌 후에야 비로소 작업에 참여할 것을 결정했다고 한다.

그의 작업은, 분리되어 있지만 하나의 존재인 빛과 어둠을 탐구하는 과정이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서 폴과 잔느가 춤추는 장면은 빛으로 통일된 색채를 부여하려는 스토라로의 이같은 의도가 잘 드러난다. 무도장의 불빛이 발하는 짙은 선홍색은 열정과 환상에 쌓인 인물들의 심리상태를 나타내며, 다양한 빛의 속성을 고려한 조명과 셋트의 구성은 탱고의 선율과 조화되어 강렬하게 관객에게 각인된다. 한올한올 빛을 꿰어 맺어진 화면들은 촬영 전 셋업에만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는 불평을 자아낼 정도로 치밀하며 꼼꼼하게 구성된 그의 노력의 결과물이다.

<레즈>와 <딕 트레이시> <불워스>로 스토라로와 호흡을 맞춘 워런 비티는 “만일 그가 장님이 된다고 해도 그와 함께 작업할 것이다”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그에게는 촬영기술로 이룩할 수 있는 이상의 것을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최첨단 기술인 유니비지움을 개발해내고도 한편으로는 할리우드 현상소의 신형고속기계 대신 로마 현상소에서의 예전 방식을 고수하는 그의 고집은 촬영가도 음악가나 미술가처럼 하나의 창조자임을 일깨워주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최근 그는 자신이 지금껏 연구해온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저서를 출판하고, 후진을 양성하는 등 촬영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을 과시했다. 빛을 향한 뜨거운 입맞춤을 하는 그에게 카메라는 인간의 감정과 사고를 그려내는 펜이자 조화와 리듬을 갖추는 삶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이화정/ 자유기고가 zzaal@hanmail.net

필모그래피

<사구>(Dune, 2000) 존 해리슨 감독

<미르카>(Mirka, 1999) 라키드 벤하즈(Rachid Benhadj) 감독

<탱고>(Tango, 1998) 카를로스 사우라 감독

<불워스>(Bulworth, 1998) 워런 비티 감독

<택시>(Taxi, 1996) 카를로스 사우라 감독

<리틀 부다>(Little Buddha, 1993)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

<마지막 사랑>(The Sheltering Sky, 1990)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

<딕 트레이시>(Dick Tracy, 1990) 워런 비티 감독

<뉴욕 스토리>(NewYork Stories, 1989) 우디 앨런, 프랜시드 포드 코폴라, 마틴 스코시즈 감독

<터커>(Tukur: The Man and His Dream, 1988) 프랜시스 코드 코폴라 감독

<마지막 황제>(The Last Emperor, 1987)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

<사막 탈출>(Ishtar, 1987) 일레인 메이 감독

<피터 대제>(Peter the Great, 1986) 마빈 J. 촘스키, 로렌스 실러 감독

<레이디호크>(Ladyhawke, 1985) 리처드 도너 감독

<마음의 저편>(One From the Heart, 1982)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레즈>(Reds, 1981) 워런 비티 감독

<루나>(La Luna, 1979)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 1979)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1900, 1976)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Last Tango in Paris, 1973)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

<가정부 이야기>(Malizia, 1973) 살바토레 삼페리 감독

<신봉자>(The Conformist, 1971)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

<거미의 계략>(La Strategia del Ragno, 1970)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

<Giovinezza, Giovinezza>(Youthful, Youthful, 1970) 프랑코 로시 감독

<수정 깃털의 새>(L’Uccello Dalle Piume Di Cristallo, 1969)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