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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없다 (1)
2001-09-19

미국 중산층의 허위의식을 비꼰 독립영화계의 기대주 토드 솔론즈

● 고래로 미국영화에는 절대 표현해서는 안 되는 몇 가지 금기가 있다. 동성애라든가 죽은 동물의 시체를 직접 보여주는 정도는 그 금기의 마지노 선일 뿐이다. 경계의 테두리 바깥에는 흑인 남자와 백인 여자간의 연애는 원칙적으로 그 감정적인 ‘공기’만을 그려낼 뿐이지, 둘간의 정사장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해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 룰이 존재하기도 한다. 포르노가 아닌 이상 소아 성욕을 다루거나 직접적인 사정을 보여주는 것도 반칙 플레이로 치기는 마찬가지이다.

1998년, 토드 솔론즈는 그 모든 금기를 한데 모아 미국 그것도 뉴저지에 있는 한 중산층 가정의 자화상 한가운데로 직격탄을 쏘았다. 그것은 1996년, 그가 선댄스에서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를 연출한 뒤 그랑프리라는 월계관을 받은 직후였는데, 이름도 아이러니한 세 번째 작품 <해피니스>에서 그는 일견 모든 것을 가진 듯 보이는 한 중상류층 가정 안에 도사리고 있는 소아 강간과 폰섹스, 자살, 토막살인 그리고 가족 구성원 사이의 비밀과 거짓말을 다룬다. 항간에는 토드 솔론즈의 차기작이 ‘섹스와 폭력과 누드’가 들어가 있는 매우 상업적인 영화라는 루머가 떠돌았지만, 그는 보기좋게 더욱 직설적이고 더욱 암울해진 ‘인형의 집’을 가지고 우리 곁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그해 칸 영화제는 토드 솔론즈에게 국제평론가협회상을 바쳤다.

토드 솔론즈의 영화를 본다는 것은 물린 자국이 너무 얼얼해서 그 통증조차 느낄 수 없는 독설 한가운데 휘말린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때로 일부 언론은 그의 영화의 본질은 관객에 대한 가학적 피학적 정서이며, 그의 영화는 ‘예술이라는 형태의 학대’라는 역공세를 취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나올 때마다 선댄스와 칸은 열광하고 패트릭 질 같은 이는 어떤 모방도 추종도 하지 않는 미국 내의 유일한 감독이 있다면 ‘그들은 스파이크 존즈와 토드 솔론즈뿐’이라고 치켜세운다. 악동감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차갑고, 사도마조키스트라고 평하기에는 웃음의 균형감각을 지닌 이 뉴저지 출신의 감독은 이미 <아메리칸 뷰티>가 나오기 이전부터, 미국 중산층의 허위의식과 안쓰런 생존본능에 대해 가차없는 냉소를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진정한 지옥은 ‘타인’

대부분의 평론가들은 토드 솔론즈의 영화가 ‘잔인하다’고 평한다. 그러나 그의 영화에 떨어져 나가는 살점이나 고문으로 일그러진 피투성이 얼굴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의 영화들은 낯간지러울 정도로 유치찬란한 분홍과 노랑, 녹색과 연두로 얼룩져 있고, 조명과 심도가 얕은 탓에 등장인물들은 괴물의 심성보다는 소심한 신경증적인 표정을 그대로 노출시킨다.

우디 앨런의 자의식을 극단화한 것 같은 이들은 대부분 타인의 관심에 대한 갈망과 과다한 진정제, 형제간의 경쟁이 극대화된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간다. <인형의 집으로…>의 주인공 돈은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동생 미씨에 대해 살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모든 사춘기 소녀가 그렇하듯 남자친구에 대한 환상에 들뜨고 대부분은 뿌루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어느 한구석 예쁠 것 없는 소녀는 말끝마다 친구들에게 ‘못생겼다’는 말을 듣고 엉뚱한 실패조차 자신의 외모로 돌리는 잔인한 타인들과 맞닥뜨린다. 전형적인 성장영화에 신크림을 듬뿍 얹은 것 같은 <인형의 집으로…>에서 토드 솔론즈는 ‘이 세상에 파괴적이지 않은 사회화가 있는가?’를 되묻는다.

그뒤 그는 <해피니스>에서 관음증적인 상업주의를 걷어버리고 우리가 두려워하는 광기와 사악함이란 괴물을 햇볕에 널어 말렸을 때 막상 어떤 쾌감이 들 것인가 하는 것을 직설화법화해버렸다. “사람들은 내 영화가 잔인하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죠. 난 사람 마음 안에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두 있다고 생각해요. 그때의 유머는 커다란 아이러니죠. 나보코브의 <롤리타>나 프리츠 랑의 <M>에서 그러하듯이요.”

<해피니스>에서는 토드 솔론즈의 의견을 고스란히 반영한 듯, 어디에도 없는 것 같은 행복수색작전에 나서는 기괴한 욕망을 지닌 등장인물들이 총출동한다. 사람들에게 심리적 위로를 주는 정신과 의사이면서 동시에 아들의 친구에게 성적 관심을 갖는 메이플우드 박사(딜란 베이커)나, 툭하면 옆집 여자들에게 음란전화장난을 치는 소심한 엔지니어 앨런(필립 세이무어) 모두 예의바르고 평범한 외관을 가졌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사이코도 전쟁광도 아니며 메이플 박사는 아내의 부탁대로 우유를 사가지고 들어오는 순순한 사람이다. 여기에 뉴저지 중산층 출신인 죠이, 트리쉬, 헬렌 세 자매는 각기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듯 보이지만, 이중 진실로 자신의 정서에 충실한 사람은 없는 것 같다.

토드 솔론즈는 공포와 유머라는 동전의 앞뒷면을 써서, 내면의 여러 가지 공포들이 싸우는 심리적 스펙터클을 겹겹이 쌓았다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어느 순간 블랙유머의 틈으로 진실을 방출시킨다. 소금같이 따가운 이 수법 때문에 관객은 대사만으로도 경악하는데, 가수 지망생이며 심약한 죠이가 러시아 출신 운전사에게 사랑을 빙자한 사기를 당했을 때, 정말 자신의 친구를 강간했는가 물어보는 아들의 울음에 ‘그렇다’고 순순히 대답하는 아버지의 눈물은 차마 외면하고 싶은 어떤 순간이기도 하다.

내용에 대한 묘사는 없고 그저 대화뿐인 이 장면은 가차없는 심리적 직면의 순간이자 유일한 진심의 순간이라서, 그 순간 그들은 악인이나 희생양이 되기보다 다시 평범하지만 취약한 사람이 되는 보기드문 회복의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토드 솔론즈는 연민이나 희망의 최음제를 타지 않고도 충분하게, 우리의 진정한 지옥은 ‘타인’이며, 이제 와서 가족의 가치가 그토록 중시되는 까닭은 애당초 가족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임을, 그 진실을 어디까지 견딜 수 있나 짓궂게 물어보는 것이다.

데뷔에서 <인형의 집으로…>까지

지금은 독립영화의 기수처럼 생각되는 토드 솔론즈도 한때 잘 나가는 메이저 영화사 곳곳에서 스카우트 세례를 받고 주류 영화 안에 머물던 영화청년이었을 때가 있었다. 1959년 생으로 뉴욕대 영화과 시절 감독과 배우를 겸하며 만들었던 자전적인 영화 <나는 어떻게 뉴욕의 이스트 빌리지의 문화적인 풍경 안에서 주목받는 예술가가되었던가>를 발표한 뒤, 그는 일약 쓸 만한 할리우드가 점찍은 신인감독의 총아로 떠올랐던 것. 이후 <인형의 집으로…>처럼 역시 굼뜬 10대의 자화상인 단편 <스카트의 마지막 총성>으로 그는 콜럼비아와 20세기 폭스의 격렬한 스카우트 전쟁의 표적이 된다.

두 메이저 사이의 줄다리기에 신물이 나고 영화도 별다른 진척이 없자 폴리그램의 지원으로 <공포, 근심 그리고 우울>로 원치 않던 데뷔전을 치른 때가 1989년. 그러나 호사다마라던가. 제목처럼 ‘공포, 근심, 우울’은 이후로 오랫동안 토드 솔론즈의 곁을 떠날 줄 모르는 악운이 되어갔다. 솔론즈는 이 영화에서 재능이 고갈되고 위기에 빠진 한 뉴욕 예술가의 음울한 자화상을 직접 연기하고 연출했는데, “마치 번개를 맞은 것 같아. 난 얼간이가 되었어”라는 첫 대사는 단지 대사만이 아니게 되었던 것이다. 언론은 우디 앨런의 블랙코미디를 그대로 따라한 것 같은 <공포, 근심 그리고 우울>을 질타했고, 영화는 단 일주일 동안 극장에 걸리다 사라져갔다. 동시에 할리우드의 감독 리스트에서도 그의 이름은 사라져갔다. 그동안, 자그마치 5년 동안, 그는 러시아 이민자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생계를 이어간다.

이후 다시는 주류 영화에 발을 디디지 않으리라 맹세하면서, 자신의 첫 작품이 마지막 작품이 되지 않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그는 1995년이 돼서야 마침내 수년 전 썼던 먼지 쌓인 스크립트를 꺼내 들었다. <인형의 집으로…>는 이렇게 해서 토드 솔론즈의 가까운 친구들의 도움으로 무명의 배우를 써서 단 30만달러에 완성된다.

물론 토드 솔론즈조차 이 매력없고 뿌루퉁한 10대의 초상화인 <인형의 집으로…>가 사람들의 관심을 끄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칸이나 베니스에서 무반응이던 <인형의 집으로…>는 토론토영화제에서부터 관객의 거센 호응에 휩싸이더니, 마침내 비주류 정신을 표방한 선댄스영화제와 딱 맞는 궁합으로 그랑프리를 거머쥐기에 이른다. 이렇게 하여 선댄스의 비호를 받은 토드 솔론즈는 이전까지와는 반대로 승승장구하는 ‘행복한’ 감독의 길을 걷고 있다.

토드 솔론즈의 중산층 3부작이라 할 수 있는 <인형의 집으로…> <해피니스> <스토리 텔링>은 교양있고 예의바른 미국 중산층의 박피를 벗겨, 그곳에 얼마나 추하고 일반적인 욕망의 진물이 기생하고 있는가를 들추어낸다. 뉴저지의 평범한 유대인 가정에 태어나 아직도 양상추와 베이컨 샌드위치를 먹고, 빼도 박도 못하는 철저한 유대식 교육을 받았다는 솔론즈는 한 인터뷰에서 “뉴저지는 세상에서 가장 따분하고 추한 동네에요”라고 일갈하면서 자신의 출신성분을 못마땅해한다.

▶ 가족은 없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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