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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지만 강직한, 사회적 기도, <방문자>

거칠지만 강직한, 사회적 기도.

간략하면서도 단호한 제목이 암시하듯 <방문자>에서 중요한 사건이 되는 것은 방문이다. 누가 누구의 방문을 받는 것인가. 그 방문은 왜 일어나야 할 일인가. 이 영화는 방문을 통해, 만남을 통해 어떤 간곡한 결론에 도달하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종류의 기도인가.

방문을 받는 자는 호준(김재록)이다. 무슨 일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영화과 시간강사인 호준은 아내와 이혼한 뒤 혼자 자취 생활을 시작한다. 학생들의 겨울방학 동안 일시 실업자가 되는 그가 일상을 보내는 방법은 극단적이다. 인터넷의 야한 사이트를 뒤지거나, 출장 마사지사를 불러 욕정을 처리하고 쌍욕을 하며 내쫓거나, 산보를 하다 말고 갑자기 욕설과 괴성을 내지르는 식의 막가는 행동이 한축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지식인적 삶에 대한 애착을 보인다. 예술영화 보기를 삶의 당위로 여기며, 그래서 심지어는 죽을지도 모를 순간에조차 영화제목을 읊조리거나, 가게 여주인에게 난데없이 파스빈더 영화를 소개하는 과장됨을 보인다. 더러는 택시 합승으로 만난 지독한 보수주의 기득권층과 격투도 마다않는 과격주의자다. 그는 분명 어딘가 고장나 있는 지식인이다. 그에게 지금 없는 건 가정이고, 그것이 그의 결핍인 것 같지만, 더 들여다보면 그는 이미 이전부터 길을 잃은 사람처럼 보인다. 호준의 일상을 쫓다보면 웃음이 나올 때가 있는데, 그건 양면적인 호준의 모습이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불일치하며 자아내는 반응이다. 야유와 응원을 동시에 받을 만한 호준은, 그리고 그를 볼 때 나오는 웃음은, 유쾌한 것이라기보다 씁쓸한 것이다. 그것은 고장난 자의 불만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기 때문이다.

계상(강지환)이 그런 호준을 방문한다. 계상은 여호와의 증인이다. 그에 관해 영화는 후반부에 이르기 전까지 많은 것을 알려주지 않는다. 계상은 호준에 비해 훨씬 더 평면적인 인물인데, 그러니까 감정을 떠나보낸 자의 얼굴을 내내 하고 있다. 전도를 위해 계상이 호준의 집을 찾았다가 욕실에 갇혀 산소 부족으로 죽어가는 호준을 구해주는 것을 계기로 둘은 친해진다. 두 사람은 영화를 함께 보고, 형 동생 하며 속내도 털어놓는다. 호준의 일상에서 시작한 영화는 계상과 호준의 관계로 나아간다. 처음에는 둘 사이의 주도권을 호준이 쥔 것처럼 보이지만, 관계는 점점 계상을 통해 교훈을 얻는 호준의 자기 문답의 형태로 옮겨간다.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총을 쥐기를 거부하는 계상이 법정에 서서 군대 가기를 거부하며 긴 진술을 펼치고, 호준은 그의 진술에 마지막 일어설 힘을 얻는다.

만약 실생활에서라면 두 사람의 인연은 이렇게 질기고 깊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현실에 닳아빠진 영화과 시간강사는 여호와의 증인의 전도를 기피할 것이며, 여호와의 증인이라고 해서 비뚤어진 지식인과 어울리는 것이 그리 마땅치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맺어진다. 영화는 두 사람 사이를 기어이 이어준다. 눈에 보이는 이해의 매개를 앞세워서가 아니라, 그렇게 이어놓고 나서야 이해의 매개를 생각해볼 수 있다고 역으로 강조한다. 이 관계 설정은 그러므로 사실 근거를 통한 것이 아니라, 메시지의 의지를 실현하는 방법이다. 한 사회에서 서로 먼 거리에 있는 혹은 실제라면 영원히 다른 삶의 층위에서 살아갈 것 같은 사람들을 연결함으로써, 그 간극을 뛰어넘어버림으로써, <방문자>는 신념과 행동의 문제를 제기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신동일 감독의 두 번째 영화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 나오는 대사지만, 그 믿음은 <방문자>에도 있다. 물론, 거기에 도식적인 면이 없지 않다. 메시지 전달 의욕은 뚜렷한 대립각을 선호하고 있고, 그 대립각은 강력하지만 그만큼이나 도식적인 관계 내지는 배열을 만들어내고 있다. 어떤 결정론적인 구조에 빚지고 주제를 거는 건 언제나 위험천만한 일이다. <방문자>는 그 도식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다.

그럼에도 호준과 계상의 만남은 희망의 가능성을 품게 해달라는 영화적, 사회적 기도다. 믿음이 오그라든 자에게 믿음이 강성한 자가 방문하는 이야기가 <방문자>다. 영화는 두 사람의 만남을 통해 제3의 희망을 보고 싶어한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계층이 다를 뿐 둘 “모두 아웃사이더”다. 그러나 결국은 믿음을 가진 아웃사이더가 그 믿음의 흔적을 오래전에 저버린 아웃사이더에게 내리는 정성 지극한 산상수훈이다. 계상은 결국 방문의 목적을 이룬 셈이지만, 그 전도의 내용은 종교적 설파가 아니라 너의 신념을 회복하라는 사회적 입장에 대한 종용이 된다. 계상은 감옥에 들어가고, 호준은 가정과 함께 감정의 온기를 되찾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반공 표지판을 땅에 묻어버리고 밟는 누군가의 맨발은, 그러므로 도로 자기의 길을 찾은 호준의 신체일 가능성이 크다. 2005년에 완성된 <방문자>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나의 친구, 그의 아내>로 호평을 얻은 신동일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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