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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심있는 다큐멘터리 <비상>
김수경 2006-12-06

한국 축구를 사랑하는 당신이라면 객석에서 불이 켜지는 순간 울게 될지도 모른다.

“공을 보지 말고 사람을 봐라.” 수비를 맡으면 누구나 하는 말. 국내 최초 K리그 다큐멘터리 <비상>도 공보다는 사람을 좇는다. <비상>은 창단 2년차 시민구단, 리그 최약체, 1군 주전 선수 15명(보통은 35~40명), 스타 플레이어 부재라는 악조건을 딛고 2005년 리그 통합 우승, 챔피언 결정전 준우승의 기적을 일궈낸 인천 유나이티드FC의 뒷모습을 비춘다. 피로로 인해 실명의 위협에 시달리면서도 모든 시합에 나서는 센터백 임중용, 자신의 이메일을 읽으며 통곡하는 어린 딸의 얼굴 한번 보기 어려운 12년차 왼쪽 수비수 김학철, 아이를 셋이나 출산하는 아내 곁을 한번도 지키지 못한 중앙 미드필더 서동원, 경기가 끝날 때마다 선수들에게 머리 숙여 인사하고 서포터들에게 절을 하는 장외룡 감독의 얼굴은 훌륭한 축구경기와 인간극장의 감동을 뛰어넘는 삶의 열정과 긴장이 서려 있다. 성경모 골키퍼가 숙소에서 후배 미드필더 최효진, 김치우와 나누는 대화나 약아빠진 라돈치치를 질타하는 주장 임중용의 성난 모습은 코미디영화를 능가하는 일상적 유머를 전해준다.

<비상>은 뚝심있는 다큐멘터리다. 외인구단처럼 승승장구하는 인유의 업적을 찬탄하기보다는 목표를 겨냥하고 준비했던 혹독한 과정에 <비상>은 눈길을 준다. 토털사커의 아버지 리누스 미셸이 말했듯이 “우승은 어제 내린 눈일 뿐”이다. 연습구장이 없어서 매번 다섯 시간을 차로 이동해야 하는 사정, 의무실과 로커룸에서 보이는 만신창이가 된 몸뚱이들, 저가 할인항공권 때문에 비행기를 기다리며 공항에서 잠든 선수들의 피곤한 정경에는 ‘직업인’ 프로축구선수의 고된 일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기막히게 촬영된 <비상>의 경기장면만큼 경기장의 숨결을 생생히 담아낸 사운드도 인상적이다. 몸과 몸이 부딪치는 파열음과 숨가쁜 호흡, 상황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선수들의 상소리와 탄식은 과거의 축구영화에서는 보지 못했던 진경이다. 피치에 쓰러진 임중용에게 헐레벌떡 달려가는 권혁진 팀닥터를 보여주는 장면에서 <비상>의 사운드는 진가를 발휘한다. “어깨, 허리”라는 짧은 말을 반복하는 그들의 심각한 대화와 경기장의 웅웅거리는 주변음이 맞물려 피치의 고통과 우정이 동시에 객석으로 전해진다. 그것은 한국에 포백을 처음으로 안착시켰던 발레리 니폼니시 감독이 말하던 “축구팬뿐 아니라 경기를 뛰는 선수들도 항상 만족을 느끼는 축구”를 위한 아름다운 질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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