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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크뤼거, <친구-신동들>로 베니스 최우수 단편영화상 수상
2001-09-26

‘노바디’, ‘은사자’로 금의환향

올 여름 독일 쾰른예술대학 영화학과를 갓 졸업한 얀 크뤼거 감독이 베니스영화제에서 최우수 단편영화상을 수상하면서 독일영화계의 국민적 영웅으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 9월9일 베니스영화제 시상식에서 은사자상 수상자로 크뤼거가 호명된 것은 올해 행사의 최대 이변으로 간주되고 있다. 첫째 베니스영화제 58년 역사상 독일영화가 사자 트로피를 거머쥔 적이 다섯 손가락으로 꼽고도 남을 정도이기 때문이며, 둘째 크뤼거는 영화제가 진행되는 동안 내내 영스타도 아닌 ‘노바디’ 취급을 받았다. 그나마 독일 참가작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뉴저먼 시네마의 기수 베르너 헤어초크나 얀 쉬테에게 달려가느라고 바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28살의 ‘노바디’ 얀 크뤼거 감독을 찬밥신세로 돌려놓은 사람들을 탓할 수도 없는 것이 최우수 단편영화상을 받은 <친구-신동들>은 올해 초여름 가까스로 대학생 딱지를 뗀 감독의 졸업작품이었기 때문이다. 크뤼거가 21분짜리 단편 <친구-신동들>의 영감을 얻은 건 4년 전으로, 미국 문단의 컬트작가 A. M. 홈즈의 동명소설을 읽고 ‘이런 얘기라면 나도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을 갖게 됐다. 자신의 진로를 찾지 못해 아헨공대에서 공부하던 컴퓨터공학을 때려치우고, 몇년 동안 사회학과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크뤼거는 그 길로 쾰른예술대학 영화학과에 원서를 냈다. 우여곡절 끝에 입학허가를 받은 크뤼거는 이제야 제 물을 만난 듯 영화연출에 빠져들었고, 그 열혈을 쏟아부어 제작한 도그마 형식의 졸업작품 <친구-신동들>로 단박에 베니스 은사자상을 거머쥐는 영광을 안은 것이다.

앞으로도 이런 기세를 계속 몰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크뤼거 스스로도 자신할 수가 없다고 한다. “아무래도 장편영화를 촬영하다보면 이번 작품처럼 도그마 형식을 추구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되도록 카메라 앞에 선 배우들의 그때그때 감정에 따라 작품의 틀이 짜여나가는 열린 형식 도그마를 계속 추구하고 싶다고 한다. 이렇게 뻔히 장사 안 될 작품을 꿈꾸는 크뤼거지만, 그래도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이란 프리미엄이 붙고 나니 근사한 대작 찾기에 혈안인 독일 제작자들까지 구애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수상 뒤 겨우 2주 남짓 사이에 벌써 제작자 두명과 구체적 협상을 가졌다는 크뤼거는 현재 자작 시나리오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베를린=진화영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