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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의 관점에서 바라본 야만의 문명 <아포칼립토>
박혜명 2007-01-17

일시 1월17일 장소 대한극장 

이 영화 마야문명이 쇠락해가던 때, 전사의 아들로 자란 ‘표범 발’은 아내와 외아들을 두고 부족 동료들과 평화로이 살던 중 타 부족의 기습을 받는다. ‘표범 발’의 부족보다 앞선 문명을 가진 그들은 인근의 또다른 부족까지 공격해, 성인 남녀들을 끌어간다. ‘표범 발’과 그 부족원들은 가뭄과 역병으로 황폐해진 땅을 구원해달라는 그들의 제사에 바쳐질 제물. ‘표범 발’은 부족 땅에 숨겨두고 온 아내와 자식에게 반드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죽음의 제단을 극적으로 탈출한다. 침략자 부족의 장수는 제 아들의 죽음에 복수하기 위해 ‘표범 발’을 집요하게 뒤쫓는다.

100자평 <아포칼립토>는 원시부족의 사냥 장면으로 시작하여, 평화로운 부족이 (마야 문명권의) 지배족들에게 습격당하여, 납치되고 도주하는 장면들로 서사의 몸통을 이루고, 마지막에 서양인의 배가 해안선에 닿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주인공 부족의 원시적 삶과 전투, 그들이 굴비처럼 엮여서 마주하게 된 거대한 ‘마야 문명’, 그리고 다시금 그 침략자들이 마주하게될 ‘서구 문명’을 아이러니하게 겹치면서, 영화는 ‘문명과 야만’에 대한 원형적 질문을 던진다. ‘문명’이란 기실 가장 야만적인 것이 아닌가? 서양문명 뿐 아니라 모든 정복자의 ‘문명’은 결국 폭력과 약탈의 다른 이름이 아닌가? 영화는 이러한 질문을 소위 ‘야만’의 편에서 ‘문명’을 바라보는 구도로 개진한다. 가령 서양인이 미지의 땅에서 야만인의 습격을 받으면서 문명의 씨를 내린다는 (웨스턴, 어드벤쳐) 구도가 아니라, 철저하게 ‘야만인’의 시선으로 침략해 들어오는 ‘문명인’들을 보고 있는 것이다. ‘야만인’의 심장으로 ‘야만인’의 두려움을 느끼면서, 그들과 한몸이 되어 얻어맞고 찢어지고 도망치는 체험. 영화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생생한 화면들로 가득하며, 최고의 박진감은 스크린을 터뜨릴 기세이다. 좀처럼 보기 힘든, 경이로운 영화! 문명이고 야만이고 간에,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보는 호사가적 취미를 위해서라도 ‘보는 것이 남는 장사’인 영화이다. 황진미/ 영화평론가

석기 문명은 청동기 문명에 졌고 청동기 문명은 철기 문명 앞에 굴복했다. 침략과 정복의 역사는 곧 문명 발달의 역사다. <아포칼립토>는 더 나은 문명을 가진 부족이 약한 부족을 침략하고, 침략 부족은 그보다 몇 배 더 앞선 문명(서양 기독교 문명)에 지배당할 운명에 관해 숨막히는 추격과 잔인한 살육 행위로서 이야기한다. 근성과 용기의 주인공 ‘표범 발’은 그 운명으로부터 가족을 지키기 위해 처절한 생존의 싸움을 한다. 기적처럼 살고 살아 부족 땅에 도착하는 남자. 어린 아들을 등에 업고서 지아비 없이 가족을 지키는 여자. 그 중에 태어나는 새로운 생명. <아포칼립토>는 그래서 인간 문명의 야만성을 전시함과 동시에 그 야만성을 품고 태어난 인간의 숭고함 앞에 경탄을 표한다. 주제의식을 과시한 탓에 몇몇 장면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오락영화로 쳐도 <아포칼립토>는 충분히 볼 만하다. 특히 후반부에 무려 30분간 이어지는 추격전의 촬영 솜씨는 왠만한 액션영화들이 다 민망해질 정도로 뛰어나다. 멜 깁슨의 진지한 철학은 빼고 이 말초성과 오락성만 즐겨도 좋다. 박혜명/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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