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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의 어두운면을 보여주는 쇼 <드림걸즈>

주류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는 흑인 디바들의 눈물겨운 여정. 그녀들이 열창하는 ‘노래는 나의 인생’

올해 골든글로브 최다부문 수상작인 <드림걸즈>는 25년 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동명의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다. 빌 콘돈은 60년대를 풍미했던 여성 그룹 ‘슈프림스’의 활약상을 영화에 맞게 다시 각색했고 뮤지컬 음악을 맡았던 헨리 크리거는 기존의 곡들에 4개의 곡을 새로 추가했다. 여기에 삼인조 여성 그룹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는 스타, 비욘세 놀스와 <레이>에서 레이 찰스로 환생했던 제이미 폭스가 가세했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드림걸즈>는 ‘뮤지컬영화’다. 그 말은 60년대 미국 쇼 비즈니스계의 명암을 그린 이 영화의 관건이 (아이러니하게도) 얼마나 화려한 쇼를 제공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시카고>의 감옥처럼 특정한 공간적 성격에 기대지 않고 자못 심각했던 당대의 사회적 배경을 자신의 무대로 열어둔다. <시카고>가 최고의 쇼를 보여주기 위한 한편의 쇼였다면, <드림걸즈>는 그 쇼의 어두운 이면을 보여주는 쇼로 자신의 위치를 정립한다. 일면 모순적으로 보이는 이러한 주제의식은 볼거리와 서사가, 혹은 뮤지컬과 사회가 어떻게 서로에게 개입하는지를 제시하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 <드림걸즈>에는 그 가능성이 있지만, 거기까지 나아가지는 않는다.

‘슈프림스’는 디트로이트 출신의 메리 윌슨, 플로렌스 발라드, 다이애나 로스로 이루어진 실존했던 여성 그룹이다. 고등학생이었던 이들은 모타운(Motown)의 설립자인 베리 고디 주니어에 의해 데뷔하자마자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그러나 다이애나 로스의 압도적인 인기로 인해, 그룹의 이름은 ‘다이애나 로스&더 슈프림스’로, 나아가 다이애나 로스의 탈퇴로 이어지게 된다. <드림걸즈>에서 비욘세 놀스가 연기한 디나 존스는 다이애나 로스를, 제이미 폭스가 연기한 커티스 테일러 주니어는 베리 고디 주니어를 반영한 캐릭터로 보인다. 영화는 그 둘을 한축에 놓고, 외모나 음색, 성격 면에서 디나와 정반대되는 에피 화이트(제니퍼 허드슨)와 커티스와 충돌하는 가수 제임스 썬더 얼리(에디 머피)를 다른 축에 위치시킨다. 처음에 이들은 거의 동등한 위치에서 시작하지만 쇼 비즈니스 세계의 상업적 문법에 따라 전자는 승천하고 후자는 몰락한다. 그러나 그 과정은 개인적 재능이 아닌, 남성 중심적이고 백인 중심적인 업계의 생리에 따라 진행된다. 이를테면 디나의 아름다운 외모, ‘보편적인’ 목소리, 고운 심성은 사실, 백인과 남성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외형적 조건과 음색, 순응적인 성격에 다름 아니다. 커티스의 비즈니스 전략도 마찬가지인데, 그는 메시지나 예술성이 아닌 오직 상업성에 의거해 음악과 가수를 선택한다. 그래서 영화가 후반으로 갈수록, 인물들이 부르는 노래는 블루스, R&B, 로큰롤의 거친 색채를 제거하고 매끈한 디스코풍에 가까워진다. 영화적 맥락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이 심심한 음악은 영화의 흐름이 중반을 넘어서부터 급격히 늘어지는 데 한몫한다.

격동의 60년대, 그것도 흑인들의 문화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시대의 역사를 영화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흔적은 곳곳에서 보인다. 이를테면 마틴 루터 킹의 연설을 담은 레코드판을 보여주거나 디트로이트 폭동 장면을 삽입하거나 흑인음악의 역사를 가로챈 백인들을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비판하는 식이다. 커티스가 자동차 딜러를 그만두고 비열한 제작자가 되기로 한 궁극의 이유도 이러한 백인들에 대한 복수심에서 출발한다. 몇 차례, 흑인들의 분노나 사회에 대한 발언이 노래 속으로 스며들지만, 전반적으로 사회적 현실은 그저 하나의 배경이 되어 뮤지컬과 병렬한다. 주류 엔터테인먼트 시장에 대한 환멸이 당대 역사에 대한 시선으로 연결되지 못한 것은 지나친 기대일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아쉬운 대목이다.

영화 속 디나와 에피의 대립되는 이미지와 행보는 이들을 연기한 비욘세 놀스와 제니퍼 허드슨의 이력, 대중적 인지도의 실제 간극과 만나 묘한 상호작용을 일으킨다. 그러나 미국의 수많은 평론가들이 극찬하듯, 제니퍼 허드슨의 표현 능력은 영화 속 에피의 초라한 모습과 달리 비욘세를 압도한다. <뉴욕타임스>의 A. O. 스콧은 이 영화가 콘돈의 <갓 앤 몬스터> <킨제이 보고서> <시카고>(각본에만 참여)에서처럼 명성과 욕망의 교차점, 즉 성적 열망과 공적인 인정욕구가 뒤섞이는 지점에 위치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본다면, 에피는 그 위치에 대한 가장 극명한 형상화이며, 제니퍼 허드슨은 매순간 거의 절규하듯, 에피의 내면을 뱉어내고 또 뱉어낸다. 그중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은 그녀가 커티스와 팀 멤버들에게 버림받고 <And I’m telling you I\'m not going>을 부를 때이다. 모두가 떠난 텅 빈 무대에 서서 노래로 우는 그녀의 모습은 발톱을 잃고 피눈물을 흘리는 한 마리 독수리처럼 보인다. 그러니 이 절정의 무대 이후(커티스가 그녀를 쫓아낸 뒤), 영화의 긴장이 풀리고 그 공백이 비욘세의 완벽한 미모로도 채워지지 않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자연스러운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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