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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여황의 일상 훔쳐보기 <더 퀸>

고집불통 여왕, 끝까지 왕실 속 썩이는 다이애나, 속타는 블레어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명제에 대다수의 현대인들은 동의한다. 그러면서도 한정된 영역들에는 여전히 특권적 지위를 부여해놓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정치적, 경제적 자유와 평등의 원칙들이 적용되지 않는 것을 용인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유럽의 왕실, 그중에서 현재까지도 상대적으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곳이 영국 왕실이다. <위험한 관계>에서 귀족사회의 추악한 욕망 게임을 파헤치고, <그리프터스>에서 거미줄처럼 엮인 범죄의 연결고리들을 포착했던 스티븐 프리어스는 신작 <더 퀸>을 통해 영국 왕실을 조망한다. 그는 현대인들이 왕실에 접근할 때 품게 되는 일종의 동화 같은 환상은 멀찌감치 치워두고, 지금 살아 숨쉬고 있는 영국 왕실의 ‘사람들’에 렌즈를 들이민다.

이 영화에서 ‘더 퀸’이 지시하는 대상은 1952년 즉위한 이래 50년이 넘도록 여왕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엘리자베스 2세(헬렌 미렌)다. 현재 영국은 왕실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들이 지불해야 하는 막대한 비용과 시대에 맞지 않는 왕실의 권위적 행태로 인해 왕실의 존속 여부에 대해 비판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개혁적인 성향의 노동당 당수로서 총리가 된 토니 블레어(마이클 신)는 자신의 취임인사를 발표하기도 전에 다이애나비의 사망에 대한 애도문부터 발표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다이애나비의 급작스런 사망 소식으로 영국 국민 전체가 슬픔에 잠기고, 버킹엄 궁 앞에는 애도의 꽃다발이 끝없이 쌓인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다이애나를 좋아하지 않았던 여왕은 국가수반으로서 품위유지와 손자들에 대한 배려를 이유로 그녀의 죽음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다이애나의 죽음 이후 장례식이 치러질 때까지 토니 블레어가 눈물도 없는 비정한 왕실을 비난하는 성난 국민들과 자신의 고집을 굽히지 않으려는 여왕 사이를 동분서주하며 갈등을 조율했던 실화가 이 영화의 기본 줄거리다.

실존 인물과 실제 사건을 극화할 때는 물론 언제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지만, 대상이 왕실이라면 제작진의 긴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크리라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간의 우정과 정치적 관계를 다룬 TV영화 <더 딜>(The Deal)을 비롯해 사실과 허구 사이를 오가며 이야기를 짜나가는 데 이미 익숙했던 작가 피터 모르간은 수많은 인터뷰와 고증을 통해 <더 퀸>의 각본을 완성했다. 한국 관객은 이 작품을 통해 다소 생소한 영국 왕실의 관습이나 여왕과 총리 사이의 권력관계를 엿볼 수 있다. 피터 모르간에게 골든글로브를 비롯한 많은 영화제의 각본상을 안겨준 탄탄한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스티븐 프리어스는 실존 인물에 대한 과장없는 묘사와 내각과 왕실의 미묘한 심리전을 그려냈다.

화려한 왕실의 인테리어나 귀족들의 호사스러운 생활을 기대하고 <더 퀸>에 접근한다면 분명 실망할 것이다. 그런 것을 원한다면 국적불명의 앤티크들이 넘쳐나는 <궁S>를 보거나, 나름대로 정치적 올바름을 가지려고 애쓰지만 기본적으로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충족시켜주는 데 충실한 <프린세스 다이어리> 시리즈를 보는 편이 훨씬 낫다. 이 영화에서는 오히려 버킹엄의 화려한 뒤편에 감춰진, 의외로 소박한 여왕의 일상을 훔쳐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덜컹거리는 지프차를 손수 몰거나, 평범한 아줌마 같은 차림으로 사냥개들과 산책을 하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렇게 온갖 품위와 예의를 지키는 듯하면서도, 냉정하고 고집스러운 여왕의 모습은 헬렌 미렌의 뛰어난 연기로 현실감과 생명력을 얻었다.

사실 더이상 왕실이 존재하지 않는 <더 퀸> 속의 갈등은 그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여왕과 국민 사이를 갈라놓고 있는 ‘권위와 전통’의 문제는 우리에게도 생각해볼 지점들을 제공한다. 분명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상적인 ‘퀸’이 되기를 원하고, 국민은 이상적인 퀸의 상징적 군림을 원하지만 실제로 ‘이상’이 작동되는 방식은 매우 상이하기 때문에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지도자에게 바라는 상(像)이 세대와 정치적 성향의 차이에 따라 혹은 지방색에 따라 정신없이 충돌하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그것을 조율해줄 블레어 같은 인물이, 아니 그런 의지를 가진 인물이 존재하긴 하는 것일까? 이 영화에 그의 존재를 이상화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민중과 왕실을 줄타기하는 그를 보고 있으면 ‘대화’나 ‘조율’이라는 것이 불가능한 우리의 암담한 정치판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것은 이 영화의 발목을 잡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는 분명 정치영화로서 갖추어야 할 날카로운 비판정신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신랄한 풍자의 대상이 되어왔던 대통령들과 달리 역시 ‘더 퀸’은 불가침 영역 속에 나름의 품위를 지키며 끝까지 고고하게 남는다. 그래서 영국에서 여왕의 권위가 얼마나 건재한가는, 영화 속 꼬장꼬장한 엘리자베스 2세의 자태보다 이 영화가 견지하는 시각을 통해 더 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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