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일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군대 시절 친했던 운전병에게 부탁해서 어렵사리 구한 <씨네21>을 몇번이고 읽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이렇게 내가 글을….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오! 컬트’란 이름으로 격주마다 글을 쓰게 되었으니 말이다. 근데 막상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고 자리에 앉으니, 앞이 깜깜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영화감독 한다고 설친 전력에 비해 너무도 모자란 나의 영화적 지식. 영화적 공력 부족. 그러나 어찌하랴? 이게 나인걸.
그래서 그냥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난 그리 대단치도 않고, 그리 특별한 영화를 본 기억도 많지 않다. 다만 좋아하는 영화는 무지 자주 보고, 그 지대한 영향으로 지금까지 영화 하나 붙잡고 살아왔다. 솔직히, 나의 글 실력은 이 글을 읽고 계실 분들이 더 잘 알 것이고, 내 글에서 유명 영화비평가들의 잘 빠진 글을 기대하는 이는 한명도 없을 것이기에 편하게, 아주 편하게 내 인생의 영화들을 하나씩 꺼내어 먼지 좀 털어주고, 구겨진 데 약간씩 펴서 보여주면 될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곤 내 머릿속 추억의 다락방에서 좋은 걸 하나 찾아냈다. 바로 <구니스>.
예전에 대한극장에서 봤을 때 샀던 팸플릿 귀퉁이에 ‘개구쟁이’들이란 뜻으로 해석되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마스카라보다 진한 립스틱을 하고 나왔던 신디 로퍼의 명곡 도 환청처럼 들려오는 듯하고….
1986년 7월19일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개봉한 <구니스>는 흔히 그 시대 모든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모았던 흥행 보증수표 ‘스티븐 스필버그 제공’표 영화 중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 <그렘린>(Gremlins, 1984),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 1985), <피라미드의 공포>(Young Sherlock Holmes, 1985), <구니스>(The Goonies, 1985)로 이어지는 스필버그 ‘presents’표 영화들은 모두 다 스필버그의 지대한 영향 속에서 만들어졌고, 모두 다 관객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피라미드의 공포>는 개인적인 지지작이긴 해도).
나 또한 그 열렬한 광팬 중 하나였고, 누구나 영화에 빠져들면 그 영화 속 상황들을 재현해보고 싶어하듯, 우리집 문을 자동으로 열게 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설계도를 연습장마다 그려대던 것이나 친구들과 함께 ‘게슈타포’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름으로 <구니스>처럼 몰려다니던 것 등이 생각난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여학생들의 시선에서 철저히 외면당하던 아이들로 구성된 우리 ‘게슈타포’는 대형백과사전을 대충 펴서 나온 쪽의 단어 중 멋진 걸로 붙인 이름이었다. 어느날 우리는 불현듯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불우이웃을 돕기로 결정했다. 그건 아마도 <구니스> 속 아이들이 집을 부수고 들어서는 골프장으로 인해서 정든 마을을 떠나야 하는 위기감에 보물선을 찾아 나섰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뭔가 절박한 절체절명의 작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린 동네 놀이터에 모여서 어떻게 돈을 만들지를 궁리했고, 결국 학교 앞 슈퍼에 쌓아놓은 병과 종이박스를 고물상에 팔아 그걸로 불우이웃 돕기에 ‘게슈타포’ 이름으로 성금을 내기로 결정하고 작전에 나섰다. 그러나 그 작전은 조기에 허무하게 종료되고 말았다.
우리 생각에 버리기 위해서 쌓아놓았다고 생각한 병과 박스들은 나름대로 이유있게 재활용하기 위해 보관중이었고, 결국 우리의 작전은 도둑질로 변질돼 우린 졸지에 영화 속 프레텔리스 일당들이 탈옥 뒤 경찰에 쫓기는 영화 초반 장면처럼 슈퍼 아저씨를 피해 손에 박스와 병들을 들고 도망쳐야 했다. 그리곤 다시 놀이터에 돌아왔을 때 우리 손엔 박스 몇개와 유리병 두어개가 전부였다.
결국 우린 그것들을 고물상 아저씨에게 주고서 받은 1천원으로 빵과 우유 하나를 사서 셋이서 나눠먹고는 그날의 임무를 종료했다.
또 한번은 한강을 바라보면서 왜 이곳엔 보물선이 없을까 하는 의구심과 불만감에 한강대교를 자전거로 건너고는, 더 멀리 갔다가 못 돌아올까봐 다시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참 우습기도 하지만, 그때 우린 정말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 진지했다.
그러고보니 영화란 인심이 참 좋은 듯하다. 그 영화를 보고나서의 추억에다가 영화의 영향으로 발생된 사건들의 추억까지 덤으로 주니 말이다. 고교 시절 제2외국어를 스페인어로 선택하게 한 결정적인 계기가 된 영화 <구니스>. 지금도 내 맘엔 아직 보물선 지도에 대한 믿음이 남아 있다. 덤으로 ‘게슈타포’에 대한 추억과 함께 말이다. 민동현/단편 <지우개 따먹기><외계의 제19호 계획> 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