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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적 흥행, 게임의 규칙을 뒤흔들다
2001-10-12

<조폭 마누라> 예상 뒤엎은 흥행폭풍, 부정적 영향 우려 목소리 높아 (1)

추석연휴 극장가에서 본 풍경 하나, 깻잎머리 소녀 둘이 극장 앞 광고판을 보며 무슨 영화를 볼까 고르고 있다. <조폭 마누라> 포스터를 본 소녀가 말한다. “야, 이거 정말 아무 생각없이 만든 영화같애.” 옆에 있던 친구 왈 “그래, 그럼 재미있겠다. 이거 보자.” 풍경 둘, 최근 몇년간 매진사례가 별로 없던 스카라극장에서 <조폭 마누라>는 추석연휴 마지막날인 10월3일 3, 4, 5회 매진이 나왔다. 오랜만에 극장에 나온 40대 부부는 “이대로 그냥 돌아갈 순 없다”며 “입석이라도 보겠다”고 말한다. 영화를 보기 위해 기다리는 관객에게 오뎅을 팔던 아줌마의 말씀, “정말 명절 분위기 나네. 스카라극장 앞에서 이렇게 장사 잘되긴 처음이야.”

<조폭 마누라>, 최단기간 전국 100만 동원기록

올 추석 화제의 중심은 단연 <조폭 마누라>였다. 이 영화는 개봉 5일 만인 10월2일 전국 100만명을 돌파, <친구>와 <엽기적인 그녀>가 보유했던 최단기간 전국 100만 동원기록을 하루 앞당겼다. <조폭 마누라>는 추석연휴 6일간 전국 144만8천명, 서울 39만3천명을 동원했다. <조폭 마누라>가 이정도 폭발력을 보이리라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다. 제작자인 현진영화사 대표 이순열씨도 “예상못한 결과라 혼란스럽다”고 말할 정도다.

<조폭 마누라>의 흥행은 같은 날 개봉한 <봄날은 간다>와 비교할 때 더 도드라져보인다. 언론의 호평을 받으며 흥행성공을 예감케 한 <봄날은 간다>는 6일간 서울 19만7900명, 전국 41만6천명을 동원, 관객 수에서 <조폭 마누라>의 절반에 못 미쳤다. 웬만큼 <조폭 마누라>의 흥행을 예상한 이들도 두 영화에 몰린 관객 수가 이렇게 큰 차이를 보일 줄은 몰랐다. 개봉 전 예매기록부터 <조폭 마누라>가 앞섰다고 하지만 관객반응은 <봄날은 간다>쪽이 훨씬 좋기에 이런 흥행결과는 ‘이변’처럼 보인다.단적인 예로 PC통신과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온 감상평들은 <조폭 마누라>에 대한 실망감을 표현한 게 “만족한다”는 평보다 많다. 영화 속 등장인물의 입버릇을 닮아서인지 특히 <조폭 마누라> 홈페이지 게시판은 함부로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인신공격이 대단하다. 찬반의견이 극단적으로 나뉘어 누군가 <조폭 마누라>를 지지할라치면 “너 알바(영화사에서 고용한 아르바이트생) 아니냐. 이것도 영화냐”는 협박조 답장이 바로 올라오고, “재미없다”는 감상은 “넌 영화볼 자격이 없다. 영화 자체를 보지말라”는 무지막지한 말로 공박당한다.

최근 개봉작 가운데 찬반격돌이 가장 심하며 표현수위도 거칠기 이를 데 없는 특이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반면 <봄날은 간다>를 본 관객평은 대체로 호의적이고 점잖다. 영화에 대한 공감을 표현한 의견이 많고 허진호 감독의 전작 와 비교한 글도 자주 눈에 띈다. 이런 관객반응은 <조폭 마누라>의 놀라운 초반 흥행세가 오래가지 못한 채 <봄날은 간다>가 영화적 힘을 발휘할 것이라는 견해에 설득력을 부여하지만 아직은 최종 흥행기록을 점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금융자본에 휘둘리는 시장점유율 40%

장기적인 흥행결과는 두고볼 문제지만 확실히 <조폭 마누라>의 성공은 영화계에 적지 않은 파문을 던지고 있다. 그간 호평을 얻지 못한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경우가 적지 않지만 <조폭 마누라>는 극의 완성도, 배우의 흡인력, 영화의 규모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모두 ‘개봉 6일간 전국 144만’이라는 결과와 쉽게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지금 한국의 영화시장이 중대한 변화를 겪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한 제작자는 <친구> <신라의 달밤> <엽기적인 그녀> <조폭 마누라>로 이어진 올해 흥행작의 경향을 “위험하다”고 단언한다.

“오우삼, 서극, 임영동 등이 이끈 홍콩영화 전성기는 한달에 한편씩 찍어대는 왕정 감독의 코미디와 더불어 몰락했다. 갑작스런 호기를 맞은 한국영화가 지금 보이는 모습은 왕정 감독 시대의 홍콩영화계를 연상시킨다. <조폭 마누라>의 엄청난 흥행은 한국영화 급락의 징후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것은 현재 한국영화계를 움직이는 돈이 대부분 수익률 외에 아무것도 관심없는 금융자본이기 때문이다. <조폭 마누라>처럼 완성도는 떨어져도 기획아이디어 하나로 승부수를 던지는 영화가 이정도 흥행을 기록한다면 아류작에 돈이 몰릴 것이고 뭔가 색다른 시도를 하는 영화들이 들어설 입지는 그만큼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시장점유율 40% 시대를 맞은 최근 한국영화계는 지극히 불안하다. “시장점유율이 획기적으로 늘어난 것은 그간 한국영화를 안 보던 사람들이 한국영화를 찾는다는 뜻인데 새로 한국영화에 끌린 관객이 어떤 성향이냐는 건 중요하다. <조폭 마누라>류의 영화에 몰리는 관객만 늘었다면 영화산업은 단기적 호황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극단적인 비관론을 피력한 이 제작자는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 두렵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상업영화의 테두리에서 어느 정도 품위를 지키고 영화산업의 미래를 걱정하며 영화를 만드는 ‘생각있는’ 제작자들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얘기이다. ▶ <조폭 마누라> 예상 뒤엎은 흥행폭풍, 부정적 영향 우려 목소리 높아 (1)

▶ <조폭 마누라> 예상 뒤엎은 흥행폭풍, 부정적 영향 우려 목소리 높아 (2)

▶ 예상 깨고 `대박` 터뜨린 영화들

▶ <조폭 마누라> 제작자 현진영화사 대표 이순열

▶ 영화 글쟁이 박평식, 최근 흥행작들을 보고 탄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