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개파 중간 보스 인구(송강호)는 전원주택으로 이사가 청과물 도매업이나 하면서 지내고 싶어한다. 친구 현수(오달수)의 조직과 충돌하는 것까지 감수하면서 아파트 시공사업권을 따낸 인구는 한밑천 장만해 은퇴할 꿈에 부풀지만, 보스 노 회장의 동생인 노상무(윤제문)가 이권을 탐내 그 앞길을 가로막는다. 게다가 가족문제도 있다. 아내 미령(박지영)은 손을 씻겠다는 약속을 십년 동안 지키지 못한 남편에게 실망해 친정으로 떠나버리고, 10대인 딸 희순도 깡패인 아빠를 부끄러워한다. 인구는 가족을 되찾고 손을 씻기 위해, 무엇보다 살아남기 위해, 도시를 헤매며 분투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삶은 조금씩 무게를 더해간다. 스무살 무렵 인구는 거칠고 사나워서 세상이 두렵지 않은 젊은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흔한살 먹은 인구는 피곤한 남자일 뿐이다. 그는 오래되어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아파트에 살면서도 아들을 유학보내고, 조그만 가게라도 장만하기 위해 사람을 패고, 파멸을 바라보면서도 인정을 버리지 못한다. 아내가 구박하는 것처럼 그는 이제 “싸움도 못한다”. <우아한 세계>는 그러한 피로로 가득 찬 영화다. 싸늘한 로맨스 <연애의 목적>으로 데뷔한 한재림 감독은 한강에 뛰어들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서든 버티거나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중년 깡패의 난감한 삶을 타협없이 드러낸다. 폭력을 업으로 삼기에 깡패가 좀더 극적인 상황에 처해 있기는 하지만,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계속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삶은 가혹하다.
<우아한 세계>는 누구나 알고 있고 겪고 있는 잔인한 삶에 하나를 더한다. 기어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더라도 그것은 이미 무용한 것이 되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인구는 널찍하고 물도 잘 나오는 집으로 이사를 하지만, 그 집은 이제 단순한 건물일 뿐이다. 온기가 없이 비빔면 면발만 불어가는 텅 빈 거실일 뿐이다. 그러므로 홀로 TV를 보며 그 면발을 씹는 인구의 모습은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시무룩하고 초라하지만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못하는 송강호의 고단한 얼굴, 웅얼거리듯 스쳐가는 낮은 목소리. 그것들은 마음을 스산하게 할 뿐만 아니라 육체마저 피로로 몰아넣는다. <우아한 세계>는 조폭을 숭배하거나 희화화하지 않는데도, 어떤 극적인 설정보다 강하게 감정을 이입하도록 만드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