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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킹스 오브 코미디
2001-10-18

(The Original Kings of Comedy)

감독 스파이크 리

출연 스티브 하비, D.L.헐리, 세드릭 더 엔터테이너, 버니 맥

출시 파라마운트

객석 맨 앞줄을 예약해놓고 백인과 흑인이 보여주는 행동의 차이. 백인은 혹시나 누군가 그 자리에 앉아 있을까 노심초사하며 일찌감치 공연장에 도착한다. 흑인은 누구라도 앉지 앉아 있기를 은근히 바라며 뒤늦게 왔다가, 혹시 하나라도 앉아 있다면 너 잘 걸렸다고 쾌재를 부르며 시비를 건다. 백인은 늘 “난 말썽을 원치 않아”(I don’t wanna get in trouble)라고 말하며, 흑인은 언제나 말썽을 기대하며 기웃거린다.

<오리지널 킹스 오브 코미디>는 스파이크 리가 연출했고, 네명의 흑인 스탠드업 코미디언의 공연실황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이런 영화를 아주 재미있게 볼 한국인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러닝타임 거의 전부가 이 흑인 수다맨들의 유머로 채워져 있지만, 번역된 자막만으로 흑인식 속어와 비어로 가득 찬 그들만의 유머를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영화 속 청중의 99%도 흑인이다(드문드문 끼어 있는 백인들이 애처로워보인다). 그들의 유머를 충분히 즐기기 위해선 두 가지가 필요할 것 같다. 현재 TV드라마의 유명 캐릭터들까지 알고 있을 만큼 미국 대중문화에 익숙해야 할 것. 그리고 흑인의 은어에 능통할 것.

하지만 그런 자질이 없다 해도 이 영화는 다른 점에서 흥미로운 데가 있다. 유머의 메뉴가 대부분 흑인과 백인의 차이를 풍자하는 것이기 때문. 미국사회의 흑백 갈등은 경제적 갈등이면서 동시에 문화와 관습의 갈등이라는 것을, 이 다큐멘터리는 걸쭉한 입담으로 일러준다. 요컨대 미국사회의 조금씩 다른 네 가지 시선으로 관찰된 흑인문화 강의록의 자질이 있는 것이다.

몇 가지 예가 더 있다. <타이타닉>은 백인의 영화다. 승객들이 흑인이었다면 배가 얼어붙은 바다로 가라앉고 있는데, 악단이 <주님께 가까이>를 연주하는 일 따위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한몸 얹을까말까한 테이블에 의지한 채 냅킨으로 돛을 삼아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쓸 것이다. 아침에 출근했는데 “당신 해고야”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반응도 다르다. 백인은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라며 항의하든가 아니면 얼굴을 무너뜨리고 절망에 빠진다. 흑인은 이렇게 소리친다. 아니 그렇다면 어제 해고가 결정됐다는 말인데, 왜 어제 밤에 전화해주지 않았어. 괜히 출근한다고 기름값만 썼잖아. 참고로 백인은 기름을 가득 채우고 다니지만, 흑인은 꼭 필요한 만큼의 양만 넣고 다닌다.

스파이크 리는 배타적 흑인옹호론자라기보다는 꼼꼼한 인류학자에 가까운 사람이다. 다만 그의 인류학에는 미국 내 흑인과 흑인문화라는 연구 대상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애정이 담겨 있을 뿐이다. 이 영화는, 적어도 우리 눈에는, 코믹 다큐멘터리라기보다는 스파이크 리의 또다른 인류학적 보고서처럼 보인다. 공연이 진행되는 와중에 청중의 갖가지 표정과 행동을 담아내는 세심한 카메라를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허문영 moon8@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