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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프로듀서들, 뭉쳤다
강병진 2007-06-26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발족, 프로듀서 전문성 강화와 처우 개선을 목표로

프로듀서들도 뭉쳤다. 지난 6월18일, 37개 영화제작사에 소속된 101명의 프로듀서들은 서울 센트럴시티 씨너스 8관에 모여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Producer Guild of Korea, 이하 프로듀서조합)을 발족했다. 이들은 이 조합이 단순히 영역싸움을 위한 조직이 아니며 “급변하는 제작환경을 고려하여 최선의 방안을 토론하는 장이자, 개인이 책임질 수 없는 산업 전체의 구조적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중재자, 그동안 개인이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불합리한 계약관행에 공동으로 대처하는 대변인, 그리고 한국영화의 위기를 기회로 극복하는 견인차”의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밝혔다.

프로듀서조합은 감독, 촬영감독, 미술감독, 시나리오작가조합 등에 이어 다섯 번째로 탄생한 영화인의 길드형 조직이다. 프로듀서 조합의 공동대표 3인 중 한명인 안영진 프로듀서는 조합을 결성한 이유에 대해 “위기의식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수익구조의 악화, 제작사 감소, 영화노사협상안 시행에 따른 제작시스템의 변화를 헤쳐나갈 수 있는 혜안과 힘이 필요했던 것이다.

처우개선, 전문성 강화를 목표로 한다

“지난해부터 조합이 힘들면 네트워크 같은 형식이라도 만들자고 했었다. 하지만 저마다 하는 일이 많고 영화제작사나 배급사, 투자사 등과 복잡다단하게 엮인 터라 쉽게 모이기가 힘들었다. 올해 조합이 결성될 수 있었던 데에는 현재 한국영화에 대한 위기의식이 개인적인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인 것 같다.” 난국의 타개를 위해 프로듀서조합이 내세운 첫 번째 목표는 영화노사협상안의 안정적인 정착이다. 프로듀서가 노사협상안을 실질적으로 적용해야 하는 위치인 동시에 그로 인한 부작용들을 처리해야 할 입장이기 때문이다. 또 한 명의 공동대표인 신창길 프로듀서는 “7월1일 이후에는 좀더 정밀한 예산관리가 필요하다. 기획단계에서도 법률적인 문제나 제작사, 투자사와 관련된 부분에서 해야 할 일이 많은데 그런 문제들을 같이 논의해볼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조합의 역할을 기대했다. 뿐만 아니라 프로듀서조합은 불합리한 계약관행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프로듀서들의 처우개선을 또 다른 중장기 목표로 삼았다. 기획개발에는 참여했지만 감독이 교체되면서 함께 퇴출을 당하거나, 영화제작이 중단되면서 일자리를 잃어버린 프로듀서들을 위해 조합 차원에서 사례를 모으고 대응책을 마련할 예정이다. 표준계약서를 마련해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편당 계약관행을 기간제 계약으로 전환하는 것 또한 프로듀서조합이 가진 숙제다. 영화의 기획부터 개봉까지 관리를 맡는 프로듀서의 입장에서 볼 때, 편당 계약은 노동에 대한 적절한 대가를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 발족식에 참가한 한 프로듀서는 “2005년 11월부터 영화제작에 참여한 한 프로듀서는 영화가 개봉하는 올 9월까지 일해서 받아간 돈이 3천만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기간제로 계약한 그 영화의 조감독은 2006년 초부터 올 5월까지 일하면서도 프로듀서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았다”며 “편당 계약이 프로듀서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데 악용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안영진 프로듀서, 신창길 프로듀서와 함께 프로듀서조합의 공동대표를 맡은 안훈찬 프로듀서는 “프로듀서로서 정당한 보수를 받겠다는 것이지 밥그릇 싸움을 하려는 의도는 없다“며 “노사협상안과 보조를 맞춰 의견을 개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변화의 시기에 놓인 한국 영화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프로듀서조합의 핵심적인 목표라면 프로듀서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것은 궁극적인 목표다. 프로듀서조합은 “한국영화에 1회 이상 프로듀서 크레딧을 가진 이”를 비롯해 “기획, 마케팅, 투자 독립제작 영역에서 프로듀서 업무를 하는 이”, “한국영화 크레딧에 1회 이상의 라인 프로듀서 크레딧을 가지고, 프로듀서 업무를 준비하는 이”들을 모두 조합원으로 포함시켰다. 신창길 프로듀서는 “프로듀서가 될 수 있는 경로가 다양해진 현 상황에서 신입 PD들이 먼저 정보의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다”며 “경험 많은 자나 없는 이들이나 함께 정보를 공유하여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시행착오를 줄이려 했다”고 조합원 구성규약의 의도를 밝혔다. 또한 프로듀서조합은 기획력 강화를 위한 연구와 한국영화의 수익구조 개선을 위한 적정 예산규모를 모색할 생각이다. “우리가 제작사 대표가 아닌 이상 극장부율을 놓고 수익구조 개선을 외칠 수는 없다”고 말한 안훈찬 프로듀서는 “제작사쪽에서는 제작비를 줄이자며 인건비 축소만을 요구하지만, 그것은 매우 소극적인 차원의 자구책이다. 아예 적정예산을 산정할 수 있다면 좀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수익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프로듀서라는 크레딧 자체에 대한 개념정립도 전문성 강화 측면에서 꼭 풀어야 할 문제다. 프로듀서조합은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Executive Producer), 라인 프로듀서(Line Producer) 등 프로듀서라는 직함에 붙은 접두어들의 의미를 정립하여 현재 혼용되고 있는 프로듀서의 역할에 전문성을 부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사용자 단체인가 노동자 단체인가

프로듀서들이 조합을 결성한 것을 두고 일단 영화계 일각에서는 환영의 손짓을 보내고 있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의 장동찬 사무처장은 “노사협상안 시행과 관련한 변화에 프로듀서들이 새로운 초석이 되어줄 것이다. 제작가협회와 프로듀서의 교류 또한 필수적인데, 조합이라는 틀 자체가 시너지를 극대화할 것”으로 기대했다. 한국영화감독조합 공동대표인 정윤철 감독 또한 발족식에 참여해 “프로듀서의 세대교체 측면에서 볼 때 긍정적이다. 비대해진 제작시스템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프로듀서조합의 역할이 매우 중요할 것”이라고 격려했다. 하지만 또 다른 일각에서는 프로듀서조합의 정체성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전국영화산업노조의 최진욱 위원장은 “프로듀서조합을 사용자 단체로 봐야 할지 노동자 단체로 봐야 할지 애매모호하다. 노사간의 중재자 역할을 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프로듀서는 사용자쪽 입장에서 만들어진 역할”이라고 말했으며 한 투자사 대표는 “영화제작 시스템이 극단적으로 세분화되는 흐름에서 프로듀서들이 기존처럼 현장의 수장으로서 모든 걸 관리하는 형태를 굳히려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프로듀서조합쪽은 산적해 있는 여러 고민거리 중 일부분이라는 입장이다. 신창길 프로듀서는 “프로듀서라는 역할 자체가 애매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생겨난 반응 같다”며 “조합 내부에서 의견수렴을 거쳐 입장을 정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현장의 수장이라고 하지만 아직 현장은 감독과 제작사, 투자사의 의견에 좌지우지되는 게 많다”고 덧붙인 그는 “현재 한국은 할리우드보다 프로듀서의 역할이 더 약화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로서는 방침만 있을 뿐 구체적인 계획안이 없는 상황이지만, 조합이란 틀을 짠 이상 프로듀서들이 제작현장에서 좀더 강한 목소리를 낼 것이라는 점은 자명한 부분이다. 그들이 과연 한국 영화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귀추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프로듀서의 열할 규정이 선행돼야 한다”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공동대표 신창길 프로듀서

-영화노사협상안의 안정적인 시행을 조합의 첫 번째 목표로 정했다. 어떤 방안을 가지고 있는지. =아직은 막연하다. 제작자들이 저마다 요구하는 게 다르다. 정해진 예산만 맞춰달라기도 하고, 아예 줄여달라고 하기도 하고 돈은 얼마를 쓰든 감독의 요구에 맞추라는 제작자도 있다. 프로듀서의 역할을 먼저 확실히 규정해야 현장의 변화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프로듀서 입장에서는 제작비가 누수되는 곳이 어디인지 빨리 알아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예산관리뿐만 아니라 스탭들의 임금 정산에서도 프로듀서들끼리의 논의와 정보공유가 필수적인데, 조합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프로듀서의 처우개선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할 방침인가. =프로듀서의 입장을 강하게 요구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여러 이유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 프로듀서들끼리 그런 경험이라도 공유하면서 새로운 방법들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프로듀서조합의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있다. =프로듀서도 저마다 처한 위치가 다르다. 제작사 직원이기도 하고 프리랜서이기도 하고 아예 독자적으로 제작사를 차린 대표 겸 프로듀서도 있다. 각자의 여건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어떤 쪽만을 대변한다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다른 영화인 단체에 비해서 뚜렷한 경향을 집약하기 어려운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일단은 조합의 내공과 조직력을 강화한 뒤에 프로듀서의 역할과 의무, 책임범위를 규정해야 입장이 정리될 것 같다.

-본인이 생각하는 프로듀서조합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프로듀서조합은 노조처럼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는 단체가 아니다. 아마도 완벽하게 사용자 단체로 규정되진 않을 것 같다. 저마다 여건이 다르다고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프로듀서들은 제작사에서 급여를 받는 입장이다. 아마도 그런 관점에서 처우와 권한보호, 책임부분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력이 점점 세분화되고 있는 현장에서 프로듀서의 역할을 더욱 강하게 가져가려는 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프로듀서가 현장에서 예산을 관리하고 일정을 통제한다고 하지만 독자적으로 이루어지는 건 없다. 이미 계획된 목표를 따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제작사나 감독의 요구와 어긋나게 갈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조합의 목적은 입지를 굳힌다는 게 아니라 프로듀서의 전문성을 강화하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