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전 순도 100%의 액션영화 한편을 보았다. 여기에는 불순물이 전혀 없다. 오로지 스타일만으로 만든 <익사일>은 넋이 나갈 정도로 매혹적이기도 하고,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터무니없기도 하다. 그게 무엇이든, 극단에 도달하는 순간의 어떤 경지 같은 것이 이 영화에 있다.
<익사일>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명확한 작품이다. 스타는 있고 캐릭터는 없다. 스타일은 있고 플롯은 없다. 카메라는 있고 시나리오는 없다. 동사는 있고 접속사는 없다.
그러면, 이 영화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대체 어떤 내용이냐고? 조직을 배신했다는 죄목을 뒤집어쓰고 피신해 있는 아화의 집으로 옛 친구 넷이 찾아오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먼저 방문한 두명은 그의 안전을 지켜내기 위해서 온 것이고, 나중에 온 두명은 조직의 명령을 받아 그를 처단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 한참 뒤에 아화가 집으로 돌아오자 다섯 사람은 서로 총을 쏘기 시작하지만, 아화의 하소연을 듣고 예전의 우의를 되찾는다. 이들은 팀을 꾸려 현상금이 많이 붙어 있는 마카우의 폭력조직 보스를 죽이려고 하지만, 일이 잘못되어 오히려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
그러나 <익사일>의 스토리를 요약한다는 것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일목요연하게 스토리를 간추리는 일조차 쉽지 않다. 애초에 두기봉 감독의 1999년작인 <미션>의 속편으로 기획되어 인물이나 이야기가 그 연장선상에 놓인 영화지만, 스토리에서 그나마 중요한 것은 서로 총을 겨눠야 할 처지에 놓인 다섯 남자가 한몸이 되어 죽음을 향해 돌진하는 상황뿐이다.
견고한 스타일 사이를 잇는 아교나 본드처럼 이야기를 사용하는 이 작품은, 정말이지, 총격전 직전의 대치장면과 총격전과 총격전 직후의 도피장면만으로 구성된 것 같다.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논리적인 추론 대신 동전을 던져 결정하는 극중 황추생의 행동처럼, 이 영화에서 이야기가 굴러가는 방식은 즉흥적이고 우연적이다.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남자들의 의리를 강조하기 위한 설정들은 작위성이 지나쳐서 실소를 자아내는 부분이 없지 않고, ‘숲속 모닥불 옆에서 불어젖히는 하모니카’와 ‘여럿이 입을 대고 호탕하게 돌려 마시는 양주병’으로 만들어낸 분위기는 그리 밀도가 높지 않으며, 인물들은 생의 의미를 건 내적 결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비장미 때문에 혹은 죽어야 하니까 죽는다.
대신 이 영화에는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액션장면들이 있다. 소년의 마음과 노인의 눈을 함께 갖춘 기타노 다케시적인 인물들이 세르지오 레오네적으로 긴장감 넘치게 상대와 대치하다가 샘 페킨파적인 모습으로 드라마틱하게 총격전을 벌이는 광경들은 DVD를 사서 반복 관람하고 싶을 만큼 매혹적이다. 좁은 공간에서 여러 사람들이 동시에 방아쇠를 당기는 이 영화의 총격장면들은 춤을 추는 듯한 카메라의 동(動)과 회화적으로 꽉 짜인 구도의 정(靜)을 얽어 짜릿한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대사건>의 첫 장면인 롱테이크 거리 총격전이나 <미션>의 쇼핑센터 총격전에서 보여줬던 것 같은 탁월한 액션 시퀀스가 여러 차례 등장한다. 특히 음료수 캔 하나가 떠올라서 바닥에 떨어지는 짧은 시간 동안 모든 인물들이 동시에 총을 난사하는 공멸의 클라이맥스는 아찔할 정도로 우아하고 아름답다. 황추생, 오진우, 임달화 장가휘 등 두기봉 영화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장식했던 배우들이 대거 등장해 홍콩영화 팬들을 기쁘게 한다.
<대사건>과 <흑사회> 시리즈에 더해 <익사일>을 내놓은 두기봉은 더없이 흥미롭다. <대사건>과 <흑사회>와 <익사일>이 서로 전혀 다른 영화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런데, 이런 창의력의 점프는 대체 어떻게 이뤄지는 걸까. 그저 그런 잡다한 영화를 20편도 더 만들고 난 상황에서, 40대 중반에 만든 <미션> 이후 선보이고 있는 괴력에 가까운 창의력은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쉰두살 두기봉은 홍콩영화에 대해 잊고 있었던 설렘을 새삼 흔들어 일깨워주는, 홍콩 장르영화의 현재고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