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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길 위에서 얻은 교훈
오정연 2007-07-13

호치민에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 후회했다. 거대한 찜통 같은 그곳은 인간의 서식지가 아니었다. 길을 건너는 데는 10분이 걸렸다. 신호등이 없는 커다란 사거리로 몰려들어 갈지자를 그리며 스쳐가는 오토바이 부대는 길 한복판의 행인을 보고도 멈출 줄 몰랐다. 도와주겠다며 말을 걸고는 자신의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가라는 말로 대화를 마무리하는 베트남 사람들도 짜증스러웠다. 무엇보다도 당혹스런 건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현지인들의 질문 세트였다. 어디서 왔어요? 나이가 몇이에요? 결혼했어요? 예외없이 이어지는 과격하고 무례한 첫인사. 첫인상이 좋지 않았다.

호치민의 여행자 거리에서 저녁을 먹다가 두 말레이시아 아저씨와 합석했다. 객지에서 고향 사람을 만났다며 서로를 반가워하는 두 사람 덕에 공짜 맥주를 얻어먹을 수 있었고, 1년째 베트남 정부를 위해 일하고 있던 그중 한명은 “다른 동남아 사람들보다 공격적이지만 그만큼 화끈한” 현지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짱의 해변에서는 파라솔 대여업을 하는 가족과 친해졌다. 29살 먹은 큰아들은 언제나 휴가 같은 자신의 일상이 만족스럽다고 했다. 대학생인 둘째아들의 영어숙제를 대신 해주고, 녀석이 팔고 다니는 그림 한장을 받았다. 만족스러운 거래였다. 북부 국경지대 사파의 호텔 프론트에서 일하는 투안은 휴일도 없이 한달 내내 일하고 받은 돈 100달러로 동생의 대학등록금을 대고 있는데, 오토바이 부상으로 잠시 쉬고 있는 가이드 일을 다시 시작하고 싶어했다. 그와 함께 올려다본 하늘에는 쏟아질 듯한 별이 가득했다. 네덜란드에서 온 딕과 샌더 부자(父子)는, 암스테르담은 진짜 네덜란드가 아니라며 반드시 자신들이 사는 마을에 놀러오라고 권유했다. 베트남 산림청과 일하는 네덜란드 출신 지질학자 할아버지는 국적과 민족에 따라 사람을 분류하는 나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낯선 곳에서의 일반화는 더욱 위험하다고. 지난 9월 세계여행을 시작한 두명의 호주인은 앞으로도 4개월의 여정을 앞두고 있었다. 각각 변호사와 체육관 강사였고 “현재 백수”인 그녀들에게선 오랜 여행객 특유의 열린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타이에서 온 10년차 직장 동료 랙과 순은 늘 DSLR 카메라를 목에 걸고 연방 셔터를 눌러댔다.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밤을 기념하기 위해 찾은 하노이의 라이브바는 웬일인지 썰렁했다. 맥주 한잔을 비우고 나서려는데, 하노이에 체류 중인 미국인 영어강사 존이 만류했다. 베트남 국립 관현악단원의 현악 4중주 공연이 자신의 후원으로 곧 시작된다고. 귀에 익은 클래식 선율이 두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팍팍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나를 위해 베트남이 마련한 마지막 깜짝 선물 같았다.

베트남에서 길을 건너는 첫 번째 기술은 ‘멈추지 않고 똑같은 속도로 계속해서 걸어가는 것’이다. 그러면 오토바이며 자동차들이 알아서 보행자를 피해가는 것이 그들 사이의 룰이었다. 무턱대고 나이를 물어보는 것은, 높임말과 낮춤말이 엄격한 베트남어의 특성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속성이었다. 웃으며 확실하게 거절을 표하는, 오토바이 택시 기사 대처법도 터득했다. 이 모두를,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배웠다. 떠나지 않았으면 만나지 못했을 인연, 웃으며 질문하고 대답하지 않았으면 알지 못했을 사연, 내가 먼저 궁금해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사정. 여행길에 챙겨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타인에게 말거는 기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