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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들, 주목!
2001-10-25

비디오카페

외국에 가지 않는 한, 절대 볼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되는 영화들이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이나 <시계태엽장치 오렌지> 정도는 ‘삐자’로는 볼 수 있어도 <배리 린든>은 볼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옛말로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얼마 전 DVD로 스탠리 큐브릭 걸작선이 출시되면서 <배리 린든> <로리타>는 물론 <스탠리 큐브릭의 인생과 영화>라는 다큐멘터리까지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어제는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 또 있었다. 새로 출시된 영화들 중 <펄프 픽션, 또다른 이야기>란 제목과 우마 서먼과 헤어스타일만 같은 뚱뚱한 여자가 사탕을 물고 있는 재킷이 나의 시선을 고정시킨 것이다. 97년 즈음, 패러디영화들이 대중적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무렵, <펄프 픽션>을 패러디한 <플럼프 픽션>(Plump Fiction)이란 영화가 존재했었는데, 그 영화를 내가 이 나라 한국에서 보게 되리라곤 감히 생각지 못한 것이다.

내가 이렇듯 호들갑을 떤다고 해서 이 영화가 결코 걸작은 아니다. 패러디의 황제 레슬리 닐슨이 출연하는 영화도 아닌데다 블록버스터영화의 명장면을 패러디하지도 않는다. 그저 <펄프 픽션>의 기본적인 플롯에 <저수지의 개들>을 참조하고, ‘걸리버 스톤’(?)의 ‘Natural Blonde Killer’를 보여주며 허무한 웃음을 줄 뿐이다. 게다가 인디영화계에서 벼락부자가 된 몇몇을 조롱하는 메시지까지 담고 있다.

이 영화를 수입하는 사람도 누군지 궁금하지만, 이 영화를 빌려가는 사람들도 유심히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나의 소망은 이 영화의 존재를 식별할 수 있는 마니아들이었으면 하지만, 오늘 대여된 3편 모두 ‘신프로만 나오면 무조건 보는 아저씨’들의 손에 간택되었다. 내일 또 그 영화를 보고 난 그들의 푸념을 들어야 한다. “무슨 영화가 이래?”이주현/ 비디오카페 종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