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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벌레`가 아니다, 인간인 게다
2001-10-25

<금발이 너무해> 배경인 하버드 법대를 둘러싼 소문과 진실

한번이라도 미국 유학을 생각해본 사람이라면 미국의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발표되는 학교 순위에 관심을 가져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왕 유학을 가려면 해당 분야에서 명성이 높은 학교로 가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비단 유학생들뿐만 아니라, 미국인들도 대학의 순위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미국사회가 우리나라보다 더 심한 학벌주의사회이기 때문이고, 동시에 시간과 돈을 투자한 데 대한 보상을 극대화하길 원하는 철저한 자본주의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회적인 욕구를 대변해 매년 학교 순위를 발표하는 수많은 매체들 중에서, 가장 광범위한 신뢰를 받고 있는 매체로 단연 <U.S. 뉴스 앤 월드 리포트>를 꼽을 수 있다.

그 <U.S. 뉴스…>가 얼마 전 발표한 2002년 미국 대학 종합 랭킹(박사과정 기준)을 보면, 1위는 프린스턴, 2위는 하버드와 예일이 선정되어 전통적인 사학명문들의 굳건함이 잘 드러나고 있다. 한편 3대 핵심 대학원 과정들이라고 불리는 법학대학원 랭킹에는 1위에 예일, 2위에 스탠퍼드, 3위에 하버드를, 경영대학원(MBA) 랭킹에는 1위에 스탠퍼드, 2위에 하버드, 3위에 노스웨스턴을 선정했으며 의학대학원 랭킹에는 1위 하버드, 2위 존스 홉킨스, 3위 듀크를 올려놓았다. 이상의 랭킹들을 보고 있으면, 영화 <금발이 너무해>의 무대가 되는 하버드대학의 명성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쟁쟁한 사학 명문인 예일, 프린스턴, 스탠퍼드, 펜실베이니아, MIT, 듀크 등과의 경쟁이 치열하기는 하지만 공학을 제외한 다양한 분야에서 모두 고르게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측면에서 하버드대학의 입지가 매우 확고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아직도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하버드는 그저 킹스필드 교수가 등장하는 TV시리즈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이나, 에릭 시걸의 소설 <닥터스>의 무대 정도로만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가끔 하버드를 졸업한 혹은 입학하는 한국인의 이야기가 신문에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저 다른 세계의 이야기쯤으로 치부되는 상황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런 면에서 하버드의 대표적인 대학원 과정인 법대를 코미디의 무대로 삼은 <금발이 너무해>는 의도면에서만 보면 어느 정도 신선한 시도로 평가받을 수 있다. 사회적으로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보수적인 집단을 소재로 삼아 코미디를 만든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주 유사한 설정으로 비슷한 시도를 한 예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 주인공은 바로 케이블TV를 통해 방영되고 있는 <앨리의 사랑 만들기>의 주인공 앨리다. 앨리와 하버드의 인연은, 쉽게 말하자면, <금발이 너무해>의 엘르(리즈 위더스푼)와 하버드 관계의 복사판이다. 앨리 역시 어릴 때부터 사랑을 나눈 사이인 빌리가 하버드 법대에 입학하자, 법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데도 따라서 진학한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졸업이 다가오고 빌리가 앨리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변호사의 길을 선택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깨지고 만다. 그런 아픈 경험을 한 뒤 법대를 졸업한 앨리도 결국 변호사가 되고, 동창인 리처드가 운영하는 법률회사에 취직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그 회사에 옛 애인이었던 빌리와 그의 부인이 함께 다니고 있었다는 사실. <앨리의 사랑 만들기>는 그뒤 벌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코믹하게 그려내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중이다.

반면 하버드 법대생의 따뜻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영화도 있다. <러브 스토리>가 그 주인공. 영화는 하버드 법대생인 올리버(라이언 오닐)가 래드클리프대학을 다니던 제니퍼(알리 맥그로)와 만나 사랑을 나누게 되지만 아버지의 반대를 시작으로 아픈 경험을 하게 된다는 내용으로, 당시 미국에 팽배했던 학벌/출신에 대한 차별을 하버드 법대생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그려낸 작품이었다. 그러한 학벌이나 출신에 대한 차별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는데, 그런 상황을 소재로 만들어진 대표적인 영화가 바로 조슈아 잭슨 주연의 <스컬스>다. 노동자 계급 출신으로 학자금 융자를 받아가며 어렵게 아이비 리그 대학을 다녀 4학년이 된 주인공 루크가, 하버드 법대를 가기 위한 백그라운드를 얻기 위해 ‘스컬스’라는 비밀조직에 가담하면서 겪게 되는 잔혹한 경험을 그린 것이 영화의 내용이다.

여하튼 하버드 법대는 이런 영화와 TV 시리즈들을 통해 다양한 시각에서 다루어져왔다. 중요한 것은 하버드 법대를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보든 혹은 질시의 시선으로 바라보든 항상 공부에 매달리는 공부벌레들만이 포착되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물론 대부분의 졸업생들이 미국 내 혹은 전세계에서 기득권 세력의 핵심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인간미 넘치는 이들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금발이 너무해>가 하버드 법대생들에 대한 단순한 선입견을 과장시키면서, 치졸한 수준으로 희화한 점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결국 <금발이 너무해>는 시도가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과물이 기대에 못 미친 안타까운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chulmin@hipop.com

하버드 법대 공식 홈페이지 http://www.law.harvard.edu/

<금발이 너무해> 공식 홈페이지 http://www.mgm.com/legallyblonde

<금발이 너무해> 팬 페이지 www.legally-blon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