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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단편 16] 채민기 감독의 <5분전>
최하나 사진 이혜정 2007-08-28

미학도들의 취향이 한껏 담긴 귀여운 소품

“5분 남았어요!” 숨통을 턱 조이는 한마디. 답지를 미처 채우지 못한 학생이라면 조바심에 가슴을 졸일 것이요, 출근을 서두르는 직장인이라면 황급히 준비를 마치느라 혼을 뺄 것이다. 한데 이곳은 동화의 세계일까. 그림책처럼 알록달록 꾸며진 방에서 단잠에 빠져 있는 커플의 모습이 세속의 분주함과는 무관한 듯 보인다. 하지만 이곳에도 ‘5분’의 압박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시계 소리에 벌떡 일어난 여자가 남자를 보채기 시작하고, 3분, 2분, 1분, 카운트다운이 심박수를 높인다. 그런데 커플이 문 밖으로 나서는 순간, 깜찍한 반전이 이루어진다. 이들의 핑크빛 보금자리는 알고보니 시계 속의 세계. 문 밖으로 나선 남녀는 이제 또 다른 커플의 단잠에 찬물을 끼얹는 존재가 된다.

“5분 남았어요, 라는 말 자체가 가져다주는 스트레스는 누구나 느끼는 것 아닌가. 사실 내 자신이 게으른 성격이라 그런 상황을 많이 겪기도 했고. (웃음) 그 말 한줄에 착상해 영화가 시작됐다.” <5분전>을 연출한 채민기씨는 홍익대학교 영상영화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이다. 2년 전 수업 시간 조작업을 하던 중 떠올린 아이디어가 발단이 되어 <5분전>이 탄생하게 됐다. “사실 조작업을 했을 때는 다른 조원들이 내 아이디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다른 이야기의 영화를 찍게 됐었다. 그런데 그냥 놓치기 아깝다는 생각이 계속 들어서 결국 종강 즈음 따로 작업하게 됐다.” 공들인 티가 역력한 세트와 소품은 미술에 감식안을 가진 여러 학생들의 손을 빌린 결과. 미대 입시를 거쳐 학부로 입학한 뒤 전공이 갈리는 과의 특성상 조력자들을 구하기 쉽다는 이점이 작용했다. “다 미술을 공부한 친구들이라 감각적인 것을 잘한다. 주인공 남녀를 나타내는 시계나 아치 모양의 문 같은 것들은 프로덕트 디자인을 하는 친구가 직접 만들어준 거다.” 물론 발품이 빠졌을 리 없다. 강렬한 색감이 돋보이는 벽지, 아기자기한 인형과 각양각색의 벽시계 등 동화적 분위기를 돋우는 소품들은 동대문부터 친척집까지 광범위한 헌팅을 통해 조달된 결과다.

본래 광고에 적을 두고 대학에 진학했다는 채민기씨는 “광고과에서 신문광고같이 정지된 것만 작업하는 것”을 보고 “움직이는 걸 하는 게 더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에 영상디자인과(현재 영상영화과)로 살짝 방향을 틀었다. 전공 과목이라는 의무에 매여 수강하기 시작했던 영화가 서서히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하면서 자연히 극장을 자주 드나들었고, “영화가 끝나고 나서 도저히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는” 체험이 이어지면서 영화에 온전히 매혹됐다. “정말 시나리오의 시자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웃음) 우선 단편 작업을 하고, 더 큰 현장에 가서 경험을 쌓고, 그 다음에 졸업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동경과 열정으로 그려졌던 청사진은 하나둘 현실이 됐다. 지난해 휴학계를 내고 <마강호텔> 연출부로 1년여 일하며 “장편영화 제작의 프로세스”를 배웠고, 다시 학교에 돌아온 뒤에는 고난의 경험을 자양분 삼아 졸업 작품의 촬영을 마쳤다. 그 사이 “왠지 다시 보기 창피하다”며 미뤄놓았던 <5분전>의 편집을 마쳤고 수상도 했으니, 그가 세워놓은 계획은 순탄함 이상으로 실현되고 있는 셈이다. “연락이 왔을 때 깜짝 놀랐다. 상상마당 홈페이지에 자주 들어가 우수작으로 뽑힌 사람들을 보며 와, 좋겠다 생각했었는데. (웃음)”

채민기 감독

이제 졸업까지 1학기.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물론 존재한다. “선배들이 취업을 하려면 토익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토익 공부도 했었다. 정말 토할 것 같더라. 근데 그러던 중에 지금 졸업작품의 시나리오가 떠올랐다. 바로 때려치우고 확 돈써서 영화 만들었다. (웃음)” 현재 편집 단계에 있다는 졸업작품은 잠을 머리 속에서 제거하는 수술이 존재하고, 다시 잠에 굶주린 사람들이 마약처럼 잠을 거래한다는 독특한 설정의 이야기다. “최상의 시나리오는 작품이 잘돼서 인정받고, 좋은 장편 시나리오가 있어서 바로 입봉을 하는 건데… 사실 내가 그 정도가 되는지는 모르겠다.” 조심스럽게 마침표를 찍다가도 “다음엔 이 작품으로 인터뷰했으면 좋겠다”는 말 끝에선 파릇한 자신감이 비친다. “영화라는 게 한번 빠지면 정말 헤어날 수 없는 것 같다. 아무리 힘들어도 또 하고 싶고. 이런 게 중독이 아닌가 싶다.” 최동훈 감독이나 장준환 감독처럼 “자기 색깔을 확실하게 표현하는 감독을 닮고 싶다”는 채민기씨, 졸업 뒤의 진로를 놓고 “우울하다”고 말하면서도 입가에서 끝내 미소를 떼어놓지 못하는 것은 꿈에 중독된 자들만이 가진 특별한 징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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