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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고 노래하라 환락의 제국이여!
2001-10-27

<물랑루즈>로 돌아온 스펙터클의 흥행사 바즈 루어만 (1)

환락의 소굴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압생트 향과 분내가 진동하는 세기말의 물랭루주. 그 입구에 선 흥행사 바즈 루어만(39) 감독은 정중히 허리를 숙인다. 재킷은 이리 주십시오. 자, 들어와서 저희와 같이 놀아보시겠습니까? 아니면 그냥 돌아가시겠습니까? <물랑루즈>의 프로포즈는 화끈하다. 방문을 여는 순간 코앞에서 샴페인이 터질 때 기분이 이럴까. ‘막’이 오르자마자 카메라는 디지털로 재현된 1899년 몽마르트르 골목을 로켓의 스피드로 저공 비행하고, 순진한 젊은이의 모험담이 주단을 굴리듯 펼쳐진다. 꽃술 같은 캉캉 스커트가 그리는 야한 색채의 소용돌이에 넋을 잃는 것도 한순간, 미처 숨을 고르기도 전에 무일푼의 시인과 아름다운 매춘부는 <사관과 신사>의 주제가부터 엘튼 존의 <Your Song>까지 망라한 ‘연가(戀歌) 메들리’에 젖어, 조르주 멜리에스의 달이 내려다보는 지붕 위에서 전설 같은 사랑에 빠진다. <물랑루즈>는 처음 20분 동안 관객에게 그들이 어떤 파티에 초대됐는지 확실히 가르쳐준다. 관객은 결정을 재촉받는다. 유혹에 넘어갈 것인가 아니면 귀퉁이에서 어색하게 술잔만 홀짝일 것인가. 그렇게 어려운 선택은 아니다.

그의 혈관에는 카페인이라도 흐르는 걸까? <물랑루즈>를 지휘한 감독 바즈 루어만은 다름 아닌, 5년 전 마카로니 웨스턴 스타일의 ‘주유소 습격사건’으로 셰익스피어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첫장을 열었던 그 담대한 감독이자 9년 전 <댄싱 히어로>에서 “내 춤을 추고 싶다”고 볼룸 댄서의 입을 빌려 외쳤던 그 당돌한 신인이다. 바즈마크 앤서니 루어만은 그가 만들어낸 ‘야한’ 영화들의 세계와는 한참 멀리 떨어진 호주의 벽촌 헤론스 크릭에서 자랐다. 드레스 가게를 하며 댄스 교습을 겸했던 어머니는 그에게 볼룸 댄스를 가르쳤고, 농장과 주유소를 경영하던 아버지는 영사기를 만질 줄 안다는 이유로 동네 극장을 인수해 TV에서 방영되는 엘비스 프레슬리 뮤지컬에 환호하던 어린 아들이 할리우드 뮤지컬영화와 오토바이영화를 마음껏 볼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소년 바즈 루어만은 관객과 작품 사이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뮤지컬의 특별한 설득력에 감동받았다. 자연스럽게 호주 국립 극예술 연구소에 들어가 배우수업을 시작한 그는 1982년 주디 데이비스와 공연한 <우리들 꿈의 겨울>로 데뷔했지만 오래지 않아 연출에서 더 큰 보람을 찾았다. 1950년대로 시대를 옮긴 푸치니 오페라 <라보엠>, 창작 뮤지컬, 이벤트 연출자로 화려한 재능을 입증한 그의 첫 영화 <댄싱 히어로>는 학교 시절 만든 연극의 각색판. 이 작품에 나타난 예술적 규범과 자유로운 표현 욕구 사이의 갈등은 루어만과 극예술 연구소 친구들을 괴롭히던 현실이었다.

영화 판권을 구하는 제작자에게 루어만은 자신이 감독할 것을 조건으로 걸었고 <댄싱 히어로>는 호주 배급업자의 푸대접에도 불구하고 칸 시사 이후 세계적 성공을 거두었다. 4년 뒤 루어만이 내놓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클레어 데인즈 주연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MTV 스타일의 과감한 채용으로 전세계적으로 1억4천만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렸을 뿐 아니라 본디 선정적 재담과 액션으로 충만한 셰익스피어 극의 ‘섹시한 육체’를 재발견해 찬사받았다.

"쇼는 계속돼야 한다"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 바즈 루어만이 맺은 폭스와 5년 계약의 일환으로 제작된 5500만달러 예산의 뮤지컬영화 <물랑루즈>는 뮤지컬의 유전자를 일정량 포함하고 있던 <댄싱 히어로>와 <로미오와 줄리엣>의 뒤를 이어 탄생한 3악장 알레그로다. 뮤지컬영화의 본향인 백스테이지로 돌아간 <물랭루즈>에서 영화의 내러티브와 극중극 <스펙타큘라 스펙타큘라>의 줄거리는 서로를 거울처럼 마주보고 있으며, 코미디와 비극의 병치, 양식화된 시대착오, 예술가와 흥행주의 갈등 등 뮤지컬 특유의 컨벤션들은 세기말 엑스터시의 전당 물랭루주를 무대로 어떤 유보도 없이 강렬하게 형상화됐다.

혹자는 바즈 루어만이라는 이름에 자동적으로 MTV 스타일을 연상하나, <물랑루즈>를 MTV 스타일 뮤지컬이라 부르는 것은 적당치 않다. 음악에 어떤 이미지를 새기는 MTV 스타일이 시선을 붙잡아두기 위해 동원하는 온갖 현란한 시각효과와 달리 <물랑루즈>는 고전기 할리우드 뮤지컬이 애용하던 수법에 의존한다.완벽하게 통제된 세트와 무대장치 안에서 형형색색 의상과 관능적인 육체가 첨탑과 분수와 불꽃놀이를 만들어낸다. 백스테이지 뮤지컬만이 제공할 수 있는 이런 시각적 아름다움은 음악에 강렬한 이미지를 부여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물랑루즈>에서 울려퍼지는 <Smells Like Teen Spirit>는 그곳의 화려함과 열기를 보여주는 리듬일 뿐이다. <물랑루즈>는 MTV가 보여줄 수 없는 수공업적 스펙터클의 향연을 복원한다. ▶ <물랑루즈>로 돌아온 스펙터클의 흥행사 바즈 루어만 (1)

▶ <물랑루즈>로 돌아온 스펙터클의 흥행사 바즈 루어만 (2)

▶ 포스트모던 혼성 뮤지컬 <물랑루즈>의 족보

▶ 바즈 루어만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