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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얇게 음악은 풍성하게, 그것이 뮤지컬의 마술”
2001-10-27

바즈 루어만 인터뷰

<물랑루즈>는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가.

기본적인 착상은 어떤 장소에서 비롯됐다. 그 장소는 이를테면 스튜디오54(반문화의 표상이던 뉴욕의 나이트클럽) 같은 곳이다. 그곳엔 싸구려 대중문화에 중독된 연예인들과 유명인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젊은 연인이었고 규칙을 깬다. 여자는 사랑에 빠진다. 경험하고 싶지 않은가. 당신의 꿈속에 존재하는 나이트클럽이 물랑루즈인 것이다. 물랑루즈는 돈 많은 자, 권력을 가진 자와 젊은이와 미녀와 무일푼인 자가 한데 어울리는 곳이었다. 물랑루즈는 밥 딜런이나 에미넴에 비견될 만한 그들 시대의 록스타들, 전위적이고 흥미로운 예술가들의 세계였다.

오페라를 연출해본 것이 이번 영화에 어떤 영향을 줬나.

난 늘 뮤지컬과 음악을 사랑했다. 난 어디라고 말해도 아무도 모르는 정말 작은 촌동네에서 자랐다. 우리 집은 주유소와 농장을 갖고 있었는데 석유를 대주던 사람이 심장마비로 죽는 바람에 잠시 극장을 소유하기도 했다. 그런데 음악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오페라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 거기엔 내가 정말 사랑하는 어떤 것이 있었다. 자세한 전후과정을 생략하자면 그다음 난 연극과 오페라를 만들었고 영화로 건너뛰었다. 난 항상 상상했다. 지금 이 시대에 맞는, 현대적인 방식으로 음악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영화언어란 어떤 것일까, 누군가 그걸 이루는 걸 꿈꿔왔다. 그렇다면 <물랑루즈>는 어떤 영화인가? 어떤 사람들은 이 영화가 오페라부파가 아니라 뮤지컬이라고 말한다. 또 어떤 이들은 이 영화를 포스트모던 뮤지컬 혹은 포스트모던 오페라라고 부른다. 어쨌든, 아주 간단한 스토리지만 그걸 음악극화할 때 반향이 일어나고 복합성이 생긴다. 거기서 앙상한 이야기를 살찌우는 마술이 일어난다. 우리는 음악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오랜 시간과 노력을 쏟았다. 그러므로 이건 오페라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오페라의 정의를 뭐라고 내릴 것이냐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전체 대사를 노래로 부르는 걸 말하는가? 노래가 일부만 조각조각 나뉘어 들어가도 오페라인가? <마적>을 오페라가 아니라 쇼라고 부를 것인가? <오페라의 유령>은 어떤가? 이것은 오페라인가? 내 생각엔 이런 문제에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요점은 음악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물랑루즈>를 만든 계기는? 다른 영화들에서 영감을 얻지는 않았나.

다른 영화는 아니다. <댄싱히어로>부터 <물랑루즈>까지 세편의 작업은 어떤 공통된 생각과 원칙이 무르익어 나온 것이다. 첫째는 신화적인, 아주 간단한 스토리이다. <댄싱히어로>는 억압을 극복하는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이고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회와 갈등관계에 놓인 사랑이다. 연인들이 자리잡은 세계는 아주 멀리 있는 창조된 세계다. 불가능한 장벽을 극복하고 해피엔딩에 이르는 밝은 세계를 그릴 필요는 없었다. 내가 다루고자 한 것은 내적 성숙에 관한 신화이다. 이상주의자인 한 젊은이가 지하세계에 들어선다. 그는 죽음, 이뤄질 수 없는 관계,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 등을 느끼면서 어른이 된다. 이야기를 만들어낸 출발점은 그런 것이었고 그 다음은 세팅하는 것이었다. 보헤미아에 대해 공부한 적 있는 나는 전에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오페라 <라 보엠>을 연출한 적이 있다. 우리는 70년대 스튜디오54 같은 1999년의 보헤미아를 <라 보엠>에서 경험했다. 그리고 1900년이 시대적 배경으로 채택됐다. 그 시기는 현재의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19세기로 돌아갈 것인가, 20세기로 전진할 것인가 사이에서 격동이 있었고 엄청난 기술적 변화가 있었다. 나는 그 시기에 대해 조사했고 파리에 갔다와서 플롯을 짜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고 다른 버전의 이야기가 여러 번 나왔다. 여주인공에게 아기가 있었다거나 등장인물들이 모두 모르핀 주사를 맞는다든가 하는. 어쨌든 다음 과정은 간단한 이야기를 뮤지컬로 변모시키는 것이었다. 이 영화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에 플롯을 끼어맞춘 영화로 보일 텐데 사실은 정반대다. 드라마틱한 순간에 어울리는 노래를 선곡하는 과정은 아주 신중하고 냉정한 일이었다. 그것은 대단히 집약적인 노동이었고 단지 일이었다.

몇 가지 다른 장르에서 따온 음악적 요소를 뒤섞은 것은 의도적인 것이었나.

단순한 한 가지 원칙이 있었다. 음악은 지난 100년간 존재했던 것이어야 한다는. 과거를 그리면서 요즘 음악을 사용하는 건 아주 오래된 아이디어다. 1900년이 시대배경인 <세인트 루이스에서 만나요>에서 주디 갤런드가 부른 40년대 히트곡 <트롤리 송> 같은 게 대표적인 예다. 그녀는 지금 팝음악에서 벡이 부르는 노래에 비견될 만한, 당시 라디오 방송에 자주 흘러나오던 노래를 부른다. 과거의 인물과 장소를 이해하기 위해 현대적인 음악을 쓰는 것이다. 우리는 그걸 더 밀고나갔을 따름이다.

스토리는 다른 데서 따온 게 아니라 창작한 것인데.

그렇다. 하지만 이건 기본적이고 근원적이며 대중적인 19세기 유산과 관련이 있다. 우리는 에밀 졸라의 <나나>, 뒤마의 <춘희>, 오페라 <라 보엠> 등을 검토했다. 이것은 포스트 모던 <라 보엠>, 포스트 모던 <라 트라비아타>일 수 있다. 구조는 따왔지만 스토리는 고유한 창작품이다. 그리고 여기엔 위험부담이 있다. 아다시피 오페라와 뮤지컬의 기본적인 룰은 관객이 스토리를 안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끝날지 알기 때문에 뮤지컬은 플롯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플롯에 공명하는 소리와 사운드의 복합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이 관객이 호응하게 만드는 방법이지만 관객은 여전히 “음, 난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다 아는 걸”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 뻔한 플롯이 을 통해 전달되면 관객은 “젠장, 정말 멋진 아이디어인 걸”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것이 관객이 영화에 참여하는 메커니즘이다.

로트렉은 어떤 캐릭터인가? 로트렉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떤 것이었나.

로트렉은 팝아트의 선구자였고 1890년대의 앤디 워홀이었다. 그러므로 어떤 역할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문제는 그가 영화에서 어떤 기능을 수행할 것인가였다. 고전적 문법대로 말하면 그는 슬픈 어릿광대이고 버스 차장 같은 인물이다. 그가 약물중독자였고 잘생긴 젊은이들을 사귀어서 그들을 분신삼아 여자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는 건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하이코미디로 다루었다. 존 레기자모는 손꼽히는 캐릭터 배우이고 자기 배역을 훌륭히 소화했다.

배우들은 어떻게 뽑았나? 캐스팅 전에 그들이 노래를 잘한다는 걸 알았나.

몰랐다. 노래를 잘 부르는 배우들이 누구누구라는 구분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사실 많은 배우들이 직접 노래를 부르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싶어하고, 뻔한 배역에서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내가 이번 영화에 맞는 배우들을 고르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나는 여러 곳에서 수많은 배우들을 만났고 그들이 노래를 할 수 있는지 테스트했다. 니콜 키드먼은 적역이었다. 나는 그녀와 10년 전에 일한 경험이 있었다. 그녀는 흔히 예상하는 니콜 키드먼과 달리 매우 쾌활했고 난 그녀가 스크린에서 대성할 거라는 걸 알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마를렌 디트리히나 마릴린 먼로를 연상시키는 면을 갖고 있었다. 난 자신의 목소리로 감정을 실어나를 수 있는 남자배우도 찾아야 했다. 이완 맥그리거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머큐쇼 역으로 오디션을 본 적 있는 배우였다. 당시는 <트레인스포팅>에 나오기도 전이었다. 그가 진짜 로맨틱한 영웅으로 나오는 건 이번 영화가 처음일 것이다. 어느날 이완 맥그리거가 노래하는 걸 들려줬을 때 엘튼 존이 말했다. “세상에, 그는 진짜 가수야”라고.

주연들이 직접 노래하지 않는 방식을 고려하진 않았나.

그러지 않았다. 그간 <물랑루즈>는 뉴욕, 칸, LA 등에서 상영됐다. 만약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더빙했다면 지금과 같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으리라 확신한다. 그 점에 관해선 확실히 단언할 수 있다.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당신이 사용한 노래들의 판권섭외 과정을 설명해달라. 어려운 점은 없었나? 너무 비싸지는 않았나.

‘All you need is love’ 같은 가사 한 대목에 50만달러를 내라는 식의 요구는 없었다. 희소식을 전하자면 내가 작업한 모든 뮤지션들, 데이빗 보위를 비롯해 돌리 파튼, 엘튼 존 등 모두가 뮤지컬에 자기 노래가 들어가는 걸 반가워했다. 그들의 노래가 들어가는 건 그들 스스로 뮤지컬을 쓴 셈이 되는 것이니까.

그들이 상당한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그렇다. 아주 적은 돈을 썼을 뿐이다. 비틀스 노래 한곡을 쓰는 데는 25만달러에서 100만달러에 달하는 돈이 들지만 우리는 그런 식으로 돈을 줄 수 없었다. 우리는 단지 30초나 15초를 쓰는 식으로 작업했고 판권료로 총 100만달러를 썼다. 다들 우리에겐 파격적으로 낮은 금액을 책정했다. 판권회사들은 우리가 노래를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한다는 걸 알고 관대해졌다. 우리는 아주 운이 좋았다.

당신이 원한 모든 걸 영화에 쏟아넣었다고 생각하나? 아쉬운 점은 없나.

내 영화 가운데 어떠한 것도 내가 원한 그림의 50% 정도다. 모든 걸 다시 찍었으면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선이 있는 것이고 우리는 그 선을 넘었다. 위대한 결과가 아니라도 의도대로 만들어졌다면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무한한 시간과 자본이 주어진다면 누구나 미켈란젤로가 됐을 것이다. 정리/ 남동철 namdong@hani.co.kr

이 인터뷰는 ‘themovieclicks.com’, ‘<BBC> 온라인’, 방송홍보용 인터뷰 자료 등을 재구성한 것임.▶ <물랑루즈>로 돌아온 스펙터클의 흥행사 바즈 루어만 (1)

▶ <물랑루즈>로 돌아온 스펙터클의 흥행사 바즈 루어만 (2)

▶ 포스트모던 혼성 뮤지컬 <물랑루즈>의 족보

▶ 바즈 루어만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