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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한국형 표준 가능한가?
강병진 2007-11-06

영진위 ‘디지털 시네마 가이드라인 Ver.2.0’ 발표… 문제점은 아직 남아있어

디지털 시네마에도 KS마크가 가능할까. 지난해 12월, ‘디지털 시네마 가이드라인 Ver.1.0’을 발표한 영화진흥위원회가 10월25일, ‘가이드라인 Ver2.0’을 발표했다. 영진위가 지난 2005년부터 디지털 시네마에 대한 한국적 표준을 마련하기 위해 연구한 가이드라인이 한 차례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DCI(Digital Cinema Initiatives, LLC)가 내세운 디지털 시네마 기준이 세계적인 표준으로 자리잡아가는 과정에서 한국적인 표준마련의 가능성과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단순히 말하자면, 굳이 이런 수고를 할 필요가 있냐는 이야기다.

디지털 시네마에 일정한 표준이 요구된 것은 장비들간의 호환성 문제 때문이었다. 지난 1999년 미국에서 처음 디지털 영사기가 발명되었고, 이후 여러 장비업체들의 자유경쟁을 통해 발전한 디지털 시네마는 업체들간의 배타적인 호환처리로 여러 문제를 발생시켰다. A사의 디지털카메라로 촬영된 영화는 B사의 영사기로 상영할 수 없다거나, 상영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작업을 거쳐야 하는 등의 문제였다. 이후 여러 스튜디오들이 주축이 되어 장비업체들과 협의를 했고, 디지털 시네마의 표준마련을 위해 설립된 기구가 DCI였다. 일종의 조인트 벤처형태인 DCI는 2005년 7월, 나름의 기준안을 만들었다. 디지털 영사기의 규격과 용량, 그외 여러 규정들을 문서화한 이 기준안은 이후 미국의 영화방송표준기관인 SMPTE(Society of Motion Pictures and TV Engineers)에 상정되어 95% 이상이 받아들여졌고, 이는 다시 국제표준기관인 ISO를 통과했다. 즉, 디지털 시네마에 대한 국제적인 표준은 현재 마련된 상태인 것이다.

이미 미국식 표준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상황

남이 만들어놓은 기준이지만, 기준이 있으면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그럼에도 굳이 한국적인 표준 마련을 위해 영진위가 연구를 시작한 것은 매우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영진위 디지털 시네마 연구사업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영상전략팀 이재우 연구원은 “DCI의 표준이 우리에게 편하면 좋은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게 우리에게 편한지 아닌지는 누군가 확인을 해야 하는 문제였다”고 말했다. 영진위는 지난 2005년 8월 디지털시네마추진위원회와 소위원회, 그리고 산업협의체를 만들어 DCI의 기준을 검증했고 가이드라인 Ver.1.0을 내놓았다. 이 과정에는 CGV와 롯데, 메가박스를 비롯해 전국극장협회, 서울시극장협회 그리고 전송망 사업자인 KT와 CJ파워캐스트, 동영 등이 참여했다. 또한 DCI의 기준에는 디지털영화가 후반작업을 마친 뒤 상영 직전까지의 단계만 다루는 것도 이유가 됐다. 영상파일을 압축하고, 암호를 넣고, 다시 암호를 푸는 과정에 관한 기준만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추진위원회가 마련한 가이드라인에는 DCI의 기준에 더해 영사환경에 관한 기준이 첨가됐고, 전송에서는 약 10%, 영사에서는 20% 정도의 내용이 삭제되거나 덧붙여졌다.

하지만 가이드라인 1.0과 품질관리 매뉴얼 1.0이 발표된 지 1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디지털 시네마의 한국적 표준안에 대한 실효성은 아직도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우선 가장 큰 우려는 한국적인 표준을 마련한다고 해도 현재 상황은 미국의 DCI가 내세운 디지털 시네마에 대한 기준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모 후반작업 업체의 한 관계자는 “배급사에서도 요즘은 해외배급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DCI 규정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메가박스 내의 영사기술과 시설을 관리하는 오퍼레이션 프로그램팀의 신사도 팀장도 “가이드라인 1.0의 내용은 이미 현장에서 오고 가는 개념들을 정립한 것일 뿐 사실상 업무에 직접적으로 반영하여 시도해볼 수 있는 부분은 없었다”고 말한다. 또한 신사도 팀장은 “현재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들 가운데 외화 대 한국영화의 비율이 50:50인 상황에서 한국적인 표준만을 내세우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은 그림”이라고 덧붙였다.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 외에 영진위의 사업방향에 이의를 제기하는 의견도 있다. 지난 10월30일,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소속 위원인 민주노동당 천영세 의원은 당일 열리는 국정감사를 앞두고 “영진위가 단순히 기술자문만 할 것이 아니라 디지털 환경 내에서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배급사와 망사업자간의 협약으로 상영관의 디지털화가 추진된 할리우드와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망사업자가 극장간의 직접협약을 통해 진행시키고 있기 때문에 “디지털 제작환경으로의 전환이 거대 망사업자 중심으로 이루어져 독과점이 심화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수직계열화 문제가 가속화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천영세 의원쪽은 “그럼에도 영진위의 디지털 시네마 협의회는 민간기업의 투자 리스크를 축소시켜주는 역할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수출시 호환성 문제, 인터넷 사업자 독과점 가속화 우려

그렇다면 가이드라인 2.0은 1.0이 야기한 우려들을 불식시킬 만큼 업그레이드된 걸까. 우선 영진위 또한 가이드라인 1.0에 대한 여러 지적을 인정하고 있는 분위기다. “1.0은 골조를 다지는 데 주력한 느낌”이라는 이재우 연구원은 “그래도 의의를 찾자면 할리우드의 기준안을 단순히 번역한 게 아니라 의견수렴을 통해서 받아들였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할리우드와 달리 디지털카메라나 디지털 영사기를 제조하는 업체가 없는 우리나라로서는 실질적인 기준안을 만들고 그것을 표준으로 내세우기가 어려운 실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할리우드의 기준을 따를 수밖에 없는 현 상황에서 한국적 기준과의 충돌을 우려하는 시각에 대해서는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중국의 경우에는 극장에서 디지털영화를 상영하는 기준과 각 지역의 이동상영관에서 상영하는 기준이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도 할리우드영화를 상영할 때와 한국영화를 상영할 때의 기준을 다르게 설정해도 된다고 본다. 다만, 그럼에도 이런 연구를 하는 것은 할리우드의 기준을 검토하면서 우리는 한국적 상황을 추가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영진위는 디지털 시네마 사업이 거대기업의 독과점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뚜렷한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디지털 시네마 연구에서 KT와 CJ파워캐스트, 동영 등 망사업자들의 참여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공공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영진위는 가이드라인 2.0과 함께 발표된 디지털 시네마 품질관리 매뉴얼 2.0에 저예산 디지털영화 제작에 관한 매뉴얼을 추가했다. 일반적인 상업영화만큼의 퀄리티는 포기할 수밖에 없지만, 저예산 제작시스템 안에서 큰돈을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디지털 색보정과 DI작업의 사례와 팁을 제공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저예산영화 부분의 업그레이드는 가이드라인의 실효성이 상업영화계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상황에서 등장한 영진위의 자구책일 가능성이 높다. 영진위도 이제 더이상 ‘의미있는 출발점’이라는 의의만을 강조할 때는 아닐 것이다. 출발선을 떠난 지 오래인 만큼, 이제는 가속도를 붙여야 할 때다.

영화진흥위원회 영상전략팀 이재우 연구원

“우리가 IT선진국인데 굳이 미국 기준 따를 필요 있나”

-처음 미국 DCI의 기준과 우리나라의 상황을 비교할 때, 안 맞는 것은 무엇이었나. =대표적인 것이 극장환경이었다. 예를 들어 미국은 영사실 운영인력이 6, 7명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2, 3명에 불과하다. 영화를 상영하는 과정을 관리하는 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겠더라. 또한 영상을 전송하는 과정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가 IT쪽으로는 선도적 입장이었기 때문에 굳이 그들의 기준만 따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가이드라인 작업에 많은 국내 업체들이 참여했다. 그들의 기준도 서로 다르지 않나. =전송 부분의 가이드를 만들 때 KT와 CJ파워캐스트의 기준이 달랐고, 그들과 DCI의 기준에도 차이가 많았다. 하지만 표준이란 건 기술과 경쟁 이전에 마련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두 회사와 DCI의 기준을 놓고 한줄씩 검토하면서 서로 부합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았다.

-연구사업의 실효성을 의심하는 의견이 많은데. =사실 우리로서도 걱정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것은 현재 상황이 그럴 뿐이다. 한국에도 디지털 장비를 만드는 업체가 나타나 함께 협의를 한다거나, 가이드라인을 받아들이기 쉬운 저예산 디지털영화들이 활성화된다면 여러 결과물들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당장에 그런 일이 없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가서 표준을 마련해야 된다는 의견이 많아질 때, 가이드라인이 초석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영화진흥위원회의 디지털 시네마 사업은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Ver2.0에서 저예산 디지털영화의 품질관리 매뉴얼을 추가한 것처럼 기술과 상영의 턱을 낮추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다. 영사예술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프로그램과 디지털 시네마의 품질을 측정할 수 있는 표준시사실을 마련했다. 또한 독립영화전용관 등 다양성 영화들을 상영하는 극장을 중심으로 DLP를 보급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