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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단편 20] 신재영 감독의 <정서적 싸움>
정재혁 사진 이혜정 2007-12-13

아주 전투적인 영상 실험

어, 이 영화 세다. 폭력에 폭력이 이어지고 욕설이 욕설을 덮는다. 상영횟수는 무려 8723번. 100~200회 사이를 맴도는 상상마당 온라인 상영관의 대다수 작품 중에서 <정서적 싸움>은 독보적인 인기작이다. 덧글로 달린 감상평도 유난히 많다. 학교를 배경으로 왕따를 당하는 병민과 이들을 괴롭히는 학교의 일진 관명, 덕균, 홍래, 구영의 관계가 주된 스토리지만, 대사의 90%는 욕, 장면의 절반은 폭력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치열한 싸움터에 나와 있는 느낌이 들 정도다. 하지만 어딘가 심상치 않은 건 카메라의 앵글. 뻗은 주먹과 주먹에 맞아 흔들리는 주둥이의 움직임이 둔중하지만 섬세하게 떨린다. 핸드헬드와는 다른 느낌이다. <정서적 싸움>은 연출을 맡은 신재영 감독이 직접 조립한 카메라로 찍었다. 배우의 인중, 주먹의 끝에 CCD 카메라를 달고 액션의 합을 맞췄다. “<달콤한 인생>에서 이병헌이 어깨에 카메라를 걸고 촬영한 장면이 있잖아요. 그것처럼 배우의 호흡을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전달하기 위해 생각한 거죠.” <정서적 싸움>은 그의 말대로 학교란 공간과 그 안의 관계를 카메라를 움직여, 시선의 전환으로 잡아낸 영화다.

영화의 폭력은 신재영 감독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어릴 때 전학을 많이 다닌 그는 “학교마다 어쩔 수 없는 텃새”를 경험했고, “이상하게 싸움을 많이 하게 됐다”. “싸움을 잘한 건 아니고요(웃음), 제가 심보가 나빠서 한대 맞으면 꼭 한대를 때려야 하는 성격이에요. 먼저 때리진 않지만 꼭 누가 절 건드려서 싸움이 됐죠.” 그는 이번 영화의 액션도 직접 지도했는데, 고등학생 때 배운 유도 경력과 어릴 적 맞은 경험이 거칠고 잔인할 만큼 사실적인 액션을 완성했다. 다소 비열한 폭력 상황은 병민을 궁지로 몰아가고 영화는 거침없이 숨을 내뱉으며 주먹을 휘두른다. 영화의 후반부 일진의 괴롭힘은 정서의 복수로 주춤하는데, 신재영 감독은 카메라의 조립으로 의도했던 폭력에 대한 시선의 차이를 극적으로 드러낸다. “정서는 외로운 아이예요. 그런데 싸움을 통해 존재를 알리려고 하죠. 그걸 친구의 개념으로 말하기도 하고. 하지만 병민은 전혀 다른 시점에서 상황을 봐요.” 관명, 덕균, 홍래, 구영 목덜미에 있는 문신과 정서가 팔에 그리는 문신, 복수 뒤에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과 유리를 깨는 병민 등. 기호와 은유를 통해 이야기를 상징화하려는 감독의 의도는 잘 표현되진 않지만, <정서적 싸움>은 이야기 방식을 카메라의 화법으로 고민했다는 점에서 강렬한 인상을 주는 영화다.

정지 컷을 연속으로 회전시켜 지미집 카메라의 효과를 만들었던 전작 <배설의 경계>처럼 신재영 감독은 기술적인 아이디어에 발빠르게 움직인다. 현재 미디액트에서 기자재 관련 일을 하고 있는 그는 떠오르는 특정한 이미지를 형식적인 실험으로 풀어나간다. 현재 준비하고 있는 작품 <자의적 싸움>은 반도체용 카메라를 안전모에 부착해 찍을 예정. “기자재를 원래 잘 알았다기보다는 새로운 앵글을 생각하면서 기자재를 고민하는 것 같아요. 그런 다음에 거기에 맞는 이야기를 붙이고요.” <정서적 싸움>을 준비하면서는 카메라 렌즈 공장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가 영화를 구상하는 방식은 “시라는 단편영화”에 새로운 언어를 찾아주는 식이지만 그 과정은 매우 전투적이다. 떠오른 생각이 있다면 불가능도 가능하게, 직접 발로 뛴다. 그것이 때로는 정적인 기묘함(<배설의 경계>)으로, 때로는 강렬한 떨림(<정서적 싸움>)으로 완성된다. 뒤늦게 영화란 꿈을 찾아 이제 8편의 단편을 완성한 신재영 감독. 그의 ‘싸움 연작’이 계속될수록 새로운 영상의 실험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