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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가고 싶다
2001-11-01

<코렐리의 만돌린> 무대 된 세팔론섬의 역사

영화 <지중해>를 보면서 저런 상황이 정말 2차대전 중에 일어날 수 있었을까? 라는 궁금증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한적한 섬에 주둔한 이탈리아 병사들이 한가로이 섬 주민으로 동화되어가는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혹 저곳이 천국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하게 될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영화광들은 극장을 나서며 언젠가 그 섬에 한번 가봐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마련이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직접 실행에 옮긴 <조선일보>의 영화담당 기자가 ‘그리스 에게해의 아주 작은 섬 미기스티는 웬만한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 어떻게 가야 하는지는 물론, 그 섬이 실재 존재하는 섬인지조차 확인하기 어려웠다… 유토피아로 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는 말로 자신의 기행문을 시작해야 했을 정도로, 미기스티라는 이름의 그 섬은 그다지 잘 알려져 있는 섬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에게해에 있는 약 1450여개의 섬들 중에는 어마어마한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는 크레타섬이나 로도스섬처럼 세계적인 관광지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리스를 사이에 두고 에게해의 반대쪽 지중해에 위치한 섬들은 세계인들로부터 그나마 미기스티가 받았던 관심 정도도 받지 못해 왔다. 이번에 개봉된 존 매든 감독의 영화 <코렐리의 만돌린>의 무대가 된 세팔론섬이 그 대표적인 경우. 물론 1823년 영국의 시인 바이런이 세팔론을 여행하고 나서 ‘내가 시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에서 본 그 하늘 때문이었다’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오래 전부터 유럽인들 사이에선 어느 정도 명성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그런 아름다움에 도취된 사람들보다는, 섬의 지정학적인 위치상 중요성 때문에 기원전 2세기경 로마로부터 시작해 수많은 정복자들이 먼저 세팔론섬으로 모여들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정복의 역사 중 가장 중요한 대목은 이 섬이 약 300년간 이탈리아의 통치하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본국인 그리스가 터키의 이슬람 제국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던 것과 달리, 세팔론섬이 기독교 문명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데 1864년 다른 이오니아의 섬들과 함께 이탈리아에서 그리스로 반환되면서 섬의 운명이 꼬이기 시작했다. 20세기 초 국왕이 추방되고, 터키와 전쟁이 발생하고, 공화정이 선포되고, 다시 왕당파가 정권을 잡는 그리스 내부의 복잡한 정치적 문제가 끊이지 않는 동안, 파시즘을 앞세운 독일, 이탈리아, 불가리아 그리고 그들을 견제하는 영국 중심의 연합국들이 동시에 세팔론을 비롯한 이오니아 군도에 눈독을 들였던 것.

물론 그런 사실을 눈치챈 그리스 정부는 어떻게 해서든 본토와 부속 섬들의 중립을 유지하려 했지만, 그 노력은 1939년 무솔리니가 알바니아를 침공하면서 수포로 된다. 알바니아를 손쉽게 정복했다고 생각한 무솔리니가, 바로 그리스로 쳐들어왔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예상을 뒤엎고 무솔리니의 군대가 오히려 그리스군에 밀려 알바니아 국경 안쪽으로 후퇴했었다는 사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중립’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리스는 당초의 목표와는 달리 영국의 편이 되어 영국군의 그리스 내 주둔을 허락한다. 하지만 영국의 정규 군대가 그리스에 입성하기 직전인 1941년 4월6일, 독일은 그리스와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한다.

결국 3주 만에 그리스는 독일에 항복을 하게 되고, 전 지역이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불가리아에 나뉘어 통치를 당하게 된다. 이때 세팔론을 비롯한 이오니아 군도는 당연히 이탈리아의 통치 지역으로 포함되게 된다. 그렇게 <코렐리의 만돌린>에 등장하는 것처럼 그 섬에 이탈리아 군대가 주둔하고, 독일군 간부들이 감찰을 위해 파견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뒤 약 2년간, 영화 속에서처럼 섬을 점령한 이탈리아군과 섬의 원주민들 사이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무엇보다 섬 자체가 이탈리아의 문화권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43년 무솔리니 정부가 물러나고 이탈리아가 공식적으로 연합군에 항복을 하고부터 상황은 꼬이기 시작한다.

전쟁을 계속하고 있던 독일의 막강한 힘 때문에, 세팔론을 비롯한 이오니아섬들을 영국이나 새로운 이탈리아 정부가 쉽게 처리하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반면 독일은 그 섬에 주둔하던 이탈리아 병사들에게 본국 송환을 조건으로 무기 반납을 요구했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탈리아 병사들과 전투를 시작했다. 그렇게 1943년 9월 세팔론섬에서 벌어진 이탈리아 병사들과 독일군과의 전투는, 당연히 엄청난 지원부대를 동원할 능력이 있던 독일의 승리로 돌아갔다. 끔찍한 것은 그 승리 이후, 독일군이 무려 8천명에서 1만명의 이탈리아 군인들을 몰살시켰다는 것. 그 몰살에서 살아남은 이탈리아 군인은 단 34명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당시의 처절함을 잘 보여준다.

여하튼 영화 <코렐리의 만돌린>은 그러한 복잡했던 2년 동안 세팔론섬에서 벌어졌을, 혹은 벌어졌을 법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물론 과장과 모순이 많은 영화이기만, 자칫 세계사에서 사라질 뻔한 중요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화는 충분한 가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박광수 감독의 <그 섬에 가고 싶다>나 앞서 언급한 <지중해>를 이 영화와 비교해보는 것은 참 재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특히 <지중해>와 이 영화를 통해 2차대전 당시 그리스를 둘러싸고 생겨난 국가간의 묘한 정치적인 갈등이 어떻게 우회적으로 표현했는가를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한다.<코렐리의 만돌린> 공식 홈페이지 http://www.captain-corellis-mandolin.com/

이오니아 군도 홈페이지 http://www.ionion.com/index.htm

세팔론 홈페이지 http://agn.hol.gr/hellas/cephalon/cephalon.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