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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맘보 Millenium Mambo
2001-11-02

거장의 손길

아시아영화의 창|대만|허우샤오시엔|2001년|119분

그의 신작을 두근거림 없이 대하기 힘든 몇 안 되는 감독 가운데 한 사람이 허우샤오시엔이다. 올해 칸영화제에 출품된 <밀레니엄 맘보>는 그의 미학적 여행이 아직 숨가쁜 도정에 있음을 확인시키는 놀라운 작품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스타일의 변화. 움직임 없이 대상을 지긋이 지켜보던 카메라는 원신 원컷 방식을 거의 어김없이 지키면서도 이제 인물의 동작을 따라 부드럽게 움직인다. 움직일 뿐 아니라 흔들리거나, 대상의 곁에 바짝 다가선다. 카메라의 리드미컬한 동선은 그것이 비추고 있는 동시대 타이베이 젊은이들의 가파른 생활 리듬을 영화적 리듬으로 되살려낸다. 허우샤오시엔은 자신의 변모를 이렇게 설명한다. “주변의 젊은이들을 보면서 나는 그들이 겪는 생로병사의 사이클과 리듬이 우리 세대보다 몇배 빠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특히 젊은 여성의 경우 딱 들어맞는다. 꽃처럼 그들은 피자마자 시들어버린다.”

서기가 맡은 주인공 비키는 그런 운명을 예감케 하는 여자다. 그녀에겐 젊은 남자친구가 있다. 남자는 비키에게 집착해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한다. 비키는 은행에 있는 돈을 다 쓸 때까지만 연애를 계속하겠다고 결심하고 포용력 있는 나이든 건달을 만나기 시작한다. 비극적 청춘영화의 설정이지만, <밀레니엄 맘보>는 곳곳에 모순된 것들이 충돌하면서 단선적 감정 전달을 방해하는 이상한 영화다. 이야기는 극히 너저분하고 음울한데 실내는 이상할 만큼 화사하다. 게다가 이야기의 도중에 현실인지 환상인지 불투명한 유바리의 차갑고 깨끗한 공간이 불쑥 끼어든다.

젊은 여성의 내레이션은 이 이야기가 2010년에 2001년을 돌아보는 회상임을 처음부터 알려준다. 미래의 시점으로 현재를 되짚으면서 허우샤오시엔은 시간과 기억을 다시 사고한다. 그는 회고된 시간과 기억이 지니는 어쩔 수 없는 퇴행적 매혹을 순수한 성찰로 탈바꿈시키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 성찰의 끝에는 하얀 눈이 감싸고 있는 영화의 도시 유바리가 있다. <밀레니엄 맘보>는 그렇게 신세대의 근심과 영화의 근심의 순결한 만남을 소망하는 새 천년의 송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