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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부탁해요~! 저 이덕화, 믿어주세요
이영진 2008-01-22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 운영위원장 교체를 둘러싼 몇 가지 우려

지난해 첫 번째 축포를 쏘아올렸던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가 신임 운영위원장으로 배우 이덕화씨를 임명한 것과 관련해 영화계 안팎에서 여러 추측들이 제기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행사를 주최하는 서울특별시 중구청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영화제를 개최하기 위해 김홍준 전 운영위원장을 교체했다는 설이 흘러나온다. 반면 이덕화 운영위원장으로의 교체는 영화제의 원활한 진행을 위한 새로운 인사 영입일 뿐이라며 민감하게 반응할 사안은 아니라는 견해 또한 있다. 9월3일부터 11일까지 9일 동안 개최될 제2회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이덕화씨가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 운영위원장이 된 건 지난 1월9일이다. 충무로영화제를 주관하는 서울특별시 중구청은 그로부터 약 1주일 뒤인 1월15일에 보도자료를 내 이 같은 사실을 알렸다. 중구청의 한 관계자는 17일 <씨네21>과의 전화통화에서 “김홍준 전 운영위원장의 개인적인 사정상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김 전 운영위원장이 “안식년이 끝나서 올해부터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일을 해야” 하며 “지난해 말부터 몸이 안 좋다고 했다”면서 “이러한 상황을 감안해 조직위원장 교체가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충무로영화제 사무국의 한 관계자도 “지자체쪽에서 2회 때부터는 일정한 역할분담이 필요하다는 쪽으로 정리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중구청에 따르면, 김홍준 운영위원장은 올해 충무로영화제부터 프로그램을 전담하는 기획위원장직을 맡는다. 하지만 김 운영위원장이 중구청의 이 같은 결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현재 김 전 운영위원장은 가족들이 살고 있는 미국에 머물고 있다. 전화 연락은 불가능한 상태다. 지인들의 말에 따르면, 2월께나 한국에 들어올 예정이다. 중구청 관계자는 17일 전화 통화에서 “김 전 운영위원장이 1월16일 밤에 수락 의사를 밝혀왔다”고 전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16일까지 중구청이 김 전 운영위원장의 답변을 받지 못한 것으로 보도해 이번 운영위원장 교체를 바라보는 의혹의 시선들을 증폭시키기도 했다.

운영위원장 교체에 대한 여러 가지 의혹

하지만 의문점은 여전히 남는다. 무엇보다 김 전 운영위원장이 충무로영화제 총괄 업무를 더이상 하지 못하겠다고 조직위원회나 중구청에 공식적으로 뜻을 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은 프로그래밍만 전담할 테니 2회 영화제를 진행하기 위한 새로운 운영위원장이 필요하다고 김 전 운영위원장이 말한 적이 있느냐고 묻자 중구청 관계자는 “그건 아니라”며 “다만 그러한 (개인적인) 사정을 감안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김 전 운영위원장의 ‘개인적 사정’은 운영위원장 교체에 있어 가장 큰 이유는 아니라는 뜻이다. 게다가 지난해 치른 영화제는 폐막 직후 일부 작품의 상영비율 무시, 단체 관람객 입장 등의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으나 1회 행사치곤 합격점을 얻었다.

중구청이 지난해 12월18일에 제시한 관람객 설문 조사 결과 발표 또한 이를 증명한다. 지난해 10월25일부터 11월2일까지 1회 영화제가 열리는 동안 401명의 관람객을 대상으로 영화제 만족도를 물은 결과, 79.1%의 관객이 2회 영화제에 다시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이들 중 30.8%는 “평소에 보기 힘든 고전영화 관람을 위해” 영화제를 찾았다고 답해 1회 상영 프로그램에 대한 높은 호응을 나타냈으며, 30.9%의 관객은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라고 답했다. 32개국 144편이 상영됐으며 좌석점유율 또한 71%로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짧은 준비기간에도 불구하고 부산, 전주, 부천 등 주로 지방에서 개최되는 국제영화제와 차별성을 획득한 셈인데, 이러한 성과들을 고려하면 2회 영화제를 앞두고 운영위원장을 교체한 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적절한 설명이 뒤따르지 않으니 온갖 소문들이 난무한다. 한 국제영화제 관계자는 “이벤트 중심으로 영화제를 사고하는 중구청쪽에서 지난해 배우들의 카퍼레이드 등을 제안했으나 김 전 운영위원장이 적절치 않다는 문제제기를 해 갈등을 빚었다고 들었다”면서 “이번 운영위원장 교체는 지자체가 입맛대로 영화제를 끌고 가겠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굳이 전문 인력들의 손을 빌리지 않더라도 지자체 차원에서 영화제를 진행할 수 있다고 중구청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서울시에 올해 영화제를 치를 공무원 인력 파견을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지자체가 영화제 본연의 취지를 망각하고 그저 국제영화제 타이틀을 내세운 거창한 지역행사 만들기에 골몰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알려진 정황만으로는 이번 운영위원장 교체를 제2의 부천사태로 규정할 순 없다. 김 전 운영위원장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일했던 충무로영화제 정범 사무국장은 “운영위원장이 바뀌었다고 해서 영화제 컨셉이 갑자기 바뀐다거나 하는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이번 일이 2004년 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파행을 연상시키는 건 사실이다. 부천시는 이사회를 열어 당시 김홍준 집행위원장을 일방적으로 해촉했고, 이 과정에서 집행위원회 소속 영화인들이 “무리한 간섭”이라며 사퇴했다. 이러한 사태의 연속으로 영화인들이 보이콧을 선언했고, 결국 2005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영화인 없는 영화제”라는 비난 속에서 치러졌다.

게다가 우연인지 몰라도 당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조직위원회 또한 해촉 사유에 대해 “김(홍준) 집행위원장이 영상원장을 겸임하게 돼 세계적인 영화제로 발돋움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애매모호한 이유를 댔다. 한국영화감독네트워크 고문 및 영화진흥위원회 부위원장인 이현승 감독은 “다른 국제영화제들과 달리 충무로영화제는 영화제 운영을 위한 집행위원회가 따로 구성되어 있지도 않고 조직위원회 내에 영화제 사무국이 존재하는 이른바 직영 구조”라고 지적한 뒤 “기존 인력들이 프로그래밍을 계속 맡는다고 하나 영화제가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사업 및 행사를 함께 가져가야 하는 것을 감안하면 복잡하게 꼬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영화제 운영을 방해하는 지자체의 간섭

한편, 중구청이 2기 운영위원장으로 이덕화씨를 임명한 것과 관련해서도 말들이 많다. 일단 이씨가 지난 10년 넘게 영화에 출연하지 않았고,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는 영화인들과 거의 교류가 없다는 점을 들어 운영위원장직을 수행하기에 적절한 인사로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중구청의 한 관계자는 “중구청장님과의 개인적인 친분 관계가 작용하지 않았다고 할 순 없으나” 그보다 앞서 “영화계에서는 그분이 여전히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충무로영화제가 기대하는 건 영화인들과의 교류라기보다 재원 확보인 듯하다. 이씨는 대통령직 인수위 사회·교육·문화분과위 자문위원인 유인촌씨와 함께 문화예술계의 대표적인 ‘MB 라인’ 인사다. 중구청의 한 관계자도 “영화제를 잘 치르려면 예산 확보가 관건인데 새 운영위원장에게 거는 기대가 없지 않다”고 말했다. 참고로 중구 의회는 얼마 전 2008년 예산 심의에서 중구청이 제출한 충무로영화제 예산 40억원 중 30억원을 삭감했다.

어쩌면 운영위원장 교체에 대한 우려는 영화제를 준비하는 이들의 말처럼 기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2회 영화제가 아직 본격적으로 치러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렇다 저렇다 논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영화계 안팎에서 여전히 웅성이는 소리를 쓸데없는 음해라고 단언할 수도 없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광주국제영화제, 고양어린이국제영화제 등이 지자체의 무리한 간섭 등으로 인해 한차례 파행을 겪었거나 행사 자체가 폐지되기도 한 전례를 감안하면 더더욱 우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 과거 국제영화제에서 일했던 관계자의 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안정된 국제영화제라고 할지라도 행사 전후로 공무원들 모시기 바쁜 게 사실이다. 워크숍이라고 하는데 실은 접대다. 영화제 예산을 쥐고 있다는 이유로 영화제를 꾸리는 입장에서는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영화제를 둘러싼 잡음들 또한 끊이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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