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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날들 Happy Time
2001-11-02

거장의 손길

아시아영화의 창|중국|장이모|2000년

데뷔 초기 강박적으로 형식미에 몰두했던 장이모 감독은 1990년대 중반부터 방향을 틀어 혼돈의 중국사회에 희망은 어디 있는가라는 화두에 매달려왔다. 그의 지식인적 태도는 때로 순진한 계몽주의의 경계를 슬쩍 밟기도 하지만, 잘 짜여진 이야기에 힘입어 묵직한 호소력을 발휘해왔다.

<행복한 날들>에서 장이모가 탐구하는 건 무능한 주변인의 삶이다. 정년 퇴직한 라오 차오는 뚱뚱한 여인에 홀딱 빠져 청혼한다. 그러나 라오 차오가 큰 호텔의 지배인인 줄 알고 있는 탐욕스러운 여인은 지참금으로 5천위안을 요구한다. 라오 차오는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버려진 버스를 간이 여관으로 개조한다.

그러나 버스가 폐차처리되면서 이 계획은 무산되고, 오히려 여인의 눈먼 딸이 짐으로 남는다. 여인에게 딸을 호텔에 취직시키겠다고 약속했기 때문. 눈먼 소녀를 속여 안마사로 취직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일이 라오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전혀 어울릴 것처럼 보이지 않던 두 사람과 라오의 동료들이 이후에 보여주는 따뜻한 연대야말로 <행복한 날들>의 정서적 무기이며, 장이모가 발견한 희망의 불씨다. 잔재미와 약간의 감동이 있지만, 전작들에 비해선 캐릭터의 개연성이 적어 다소 심심한 느낌도 든다.